[정은보號 잔여임기 5개월①] 성과보다 '밀어붙이기'만 남았나

역대 최대 실적에도 경영평가 S→B...인사 놓고 거래소 노조와 충돌 전산 안정성 우려 속 거래시간 연장 추진...증권업계 ‘고자세’ 불만 사무금융노조 “임기 내 업적 쌓기”...ETF 확대도 운용업계 우려에 제동 제도 개편 성과에도 임기 막바지 ‘밀어붙이기’ 논란 짙어져

2026-09-18     정수진 기자
정은보

[녹색경제신문 = 정수진 기자]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임기가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취임 이후 대체거래소(ATS) 출범에 대응하고 상장폐지 제도를 강화하는 등 굵직한 시장제도 개편을 이끌었고, 지난해 거래소는 역대 최대 수준의 실적도 거뒀다.

하지만 임기 말 평가는 엇갈린다. 전산장애와 인사 문제를 둘러싼 내부 불만에 이어 거래시간 연장 과정에서는 촉박한 일정과 전산·인력 부담, 유동성 분산 등 각종 우려가 제기됐지만 한 차례 연기 끝에 예정대로 시행했다. 이를 두고 증권업계에서는 거래소의 '고자세'에 대한 불만이, 노조에서는 시장의 우려보다 임기 내 성과를 앞세운 '업적 쌓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역대 최대 실적에도 경영평가 S→B…인사 놓고 노조와 충돌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 이사장의 임기는 내년 2월14일까지다. 2024년 2월 취임 이후 약 2년7개월 동안 넥스트레이드(NXT) 출범에 따른 경쟁체제 전환과 상장폐지 제도 강화, 거래시간 확대 등 시장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 개편을 잇달아 추진했다.

실적도 크게 개선됐다. 지난해 한국거래소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5772억원으로 전년 대비 52.8% 증가했고 당기순이익은 7089억원으로 67.1% 늘었다. 증시 활황과 거래대금 증가 등에 힘입어 역대 최대 수준의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경영평가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경영실적 평가에서 거래소는 B등급을 받아 전년 S등급보다 두 단계 내려갔다. 이에 임직원 성과급도 기본급의 200%에서 100%로 줄면서 내부에서는 불만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인사에서도 한 차례 큰 충돌을 겪었다. 거래소는 지난 5월 한구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를 파생상품시장본부장에 선임했다. 한국거래소 노조는 한 본부장의 파생상품시장 실무 경험 부족 등을 문제 삼아 강하게 반발했고 첫 출근을 저지했다. 이후 노조는 부산경실련과 함께 선임 과정에 대한 공익감사도 청구했다. 현재 한 본부장은 파생상품시장본부장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전산장애 등 거래소 본연의 시장 운영 안정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에서 기존 시스템의 안정화보다 새로운 제도 확대에 속도를 내는 데 대한 내부 비판도 있다. 시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전산시스템 보완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거래시간 연장 등 외형적인 제도 확대와 성과에 치중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거래시간 연장 놓고 '고자세' 비판…노조 "임기 내 업적 쌓기"

이 같은 논란은 거래시간 연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더욱 커졌다. 거래소는 NXT와의 동등한 경쟁환경 확보와 해외 투자자의 접근성 제고 등을 이유로 거래시간 확대를 추진했다.

증권사들은 연초 거래시간 연장 계획이 나온 직후부터 전산시스템 개발과 테스트, 추가 인력 배치 등에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며 부담을 호소했다. 안정적인 시스템 구축과 충분한 테스트를 위해서는 1년 이상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결국 시행일은 당초 6월29일에서 9월14일로 한 차례 연기됐지만, 정 이사장은 추가 연기에는 선을 긋고 예정대로 시행을 추진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거래시간 연장을 위해 증권사들은 전산과 인력 문제를 모두 맞춰야 했다"며 "충분한 조율보다는 거래소가 추진하면 증권사들이 따라가야 하는 식의 고자세로 받아들여진 부분이 있어 업계 불만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의 비판은 더 직접적이다. 시장 참여자의 준비와 충분한 검증보다 시행 속도를 우선했고, 이 과정에서 정 이사장의 임기 내 성과를 만들려는 의지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남현 사무금융노조 부위원장은 "거래시간 연장은 업계에서 준비기간과 전산·인력 부담 등을 지속적으로 우려했음에도 정은보 이사장이 강하게 추진한 사안"이라며 "업계에서는 임기 중 성과를 만들려는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정책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초 거래시간 연장이 시장 접근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취지였더라도 실제 시행 과정에서 예상했던 부작용이 확인되고 있다면 그대로 확대하기보다 제도를 보완하거나 거래시간을 조정하는 방안까지 검토해야 한다"며 "호가가 얇아지는 구간과 가격 왜곡 가능성 등이 나타나는 만큼 추가 확대에 앞서 현재 제도의 부작용을 먼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거래소.

ETF까지 넓히려던 거래시간 확대…운용업계 우려에 제동

거래시간 확대를 둘러싼 논란은 상장지수펀드(ETF)로도 이어졌다. 거래소는 당초 ETF를 애프터마켓 거래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했고 지난달까지도 자산운용사들의 참여 신청을 받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운용업계에서는 장 마감 이후 실시간 추정순자산가치(iNAV) 산출과 유동성공급자(LP)의 적정가격 산정, 기초자산의 낮은 유동성에 따른 괴리율 확대 가능성 등을 우려했다. 결국 지난 14일 애프터마켓 출범 대상에서 ETF·ETN은 제외됐다.

ETF 거래시간 확대 자체를 접은 것은 아니다. 거래소는 당분간 시장 상황을 지켜보면서 업계와 논의를 이어가고 관련 여건이 갖춰지면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정 이사장 임기 동안 시장 경쟁체제 전환과 상장폐지 제도 강화, 역대 최대 실적 등 눈에 보이는 성과는 적지 않았다. 문제는 임기 말 이 같은 성과보다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충돌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산 안정성에 대한 내부 우려가 남아 있는 가운데 새로운 제도 확대에 속도를 냈고, 거래시간 연장은 연초부터 증권업계가 전산·인력 부담을 제기했지만 한 차례 연기 후 시행했다. ETF 거래시간 확대 역시 운용업계의 우려가 커지자 출범 직전 대상에서 빠졌다.

특히 거래시간 연장은 정 이사장이 추가 연기 가능성에 선을 그으며 강하게 추진한 대표적인 정책이다. 이 과정에서 증권업계에서는 거래소의 '고자세'라는 불만이, 노동계에서는 '임기 내 업적 쌓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굵직한 제도 개편과 역대 최대 실적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임기 막바지에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밀어붙이기' 논란이 짙어지는 모습이다.

한편 거래소는 업계와의 의견 차이가 정책 추진 과정에서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시장관리자로서 지켜야 할 규정과 정책 방향이 있는 만큼 증권사·운용사 등 업계와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이 같은 의견 차이는 이전부터 존재해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