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美 메모리 생산 '우회로' 찾나…인텔 오하이오 팹 주목
인디애나 후공정 이어 오하이오 생산 검토…인텔 유휴시설 활용 美 메모리 공급망 앞단까지 확대 가능성…양사 이해관계 맞물려
[녹색경제신문 = 정창현 기자] SK하이닉스가 미국 내 메모리 생산을 추진하면서 인텔의 오하이오 생산시설을 활용하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신규 팹을 짓는 대신 인텔의 기존 프로젝트를 활용해 미국 현지 생산 요구에 대응하면서 투자 부담을 낮추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7일 업계 및 외신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인텔과 미국 내 메모리 생산을 위한 협력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인텔이 오하이오주에서 추진해온 생산시설 일부를 임차하는 방안과 SK하이닉스·인텔·주요 클라우드 기업이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번 협상에서 주목할 부분은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새로운 메모리 팹을 직접 건설하지 않고 인텔이 이미 추진하고 있는 생산시설을 활용할 가능성이다.
미국 내 메모리 생산은 SK하이닉스에 상당한 비용 부담을 안길 수 있다. 미국은 인건비와 건설비가 높은 데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공급망 상당 부분이 아시아에 집중돼 있어 현지 생산비가 한국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인텔의 오하이오 생산시설을 활용하는 방식은 SK하이닉스가 미국 생산 확대에 필요한 초기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방안으로 평가된다.
SK하이닉스의 미국 사업은 이미 HBM 후공정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약 4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HBM 어드밴스드 패키징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2029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는 이 시설은 한국 등에서 생산한 D램을 가져와 HBM으로 가공하는 후공정 시설이다. 여기에 오하이오에서 메모리 칩 생산이 추가될 경우, 미국에서 메모리 생산과 후공정을 연결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긴다.
이번 협력의 배경에는 양사의 이해관계가 있다. 지난 2022년 인텔은 오하이오에 최대 1000억달러를 투자해 대규모 반도체 생산단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생산 일정이 지연되면서 현재 완공 시점은 2030년 이후로 늦춰진 상태다.
SK하이닉스가 이 시설 일부를 임차하거나 합작법인을 통해 활용하면 인텔 입장에서는 대규모 투자가 진행된 오하이오 프로젝트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별도의 신규 팹을 처음부터 건설하는 데 따른 부담을 낮출 수 있고, 인텔은 생산시설을 외부 사업과 연결할 수 있다. 미국 정부 역시 자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주요 클라우드 기업까지 합작법인에 참여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확대에 따라 메모리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대형 수요처가 생산단계에 참여한다면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고객 측 이해관계도 결합될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압박도 변수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 2일 반도체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미국에서 생산할 경우 관세 부담을 피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미국 시장 진입에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인텔의 기존 시설을 활용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적은 부담으로 미국의 투자 압박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다.
다만 이번 협상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미국에서 메모리를 생산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어떤 메모리를 생산하느냐'다.
범용 메모리 생산과 첨단 D램·HBM 생산은 기술적 중요성이 다르다. 특히 첨단 메모리가 대상이 될 경우 국내에서 보유한 국가 핵심 기술의 해외 생산과 기술 보호 문제가 함께 제기될 수 있다. 앞서 산업통상부는 "미국 내 생산 여부는 기업의 재량"이라고 하면서도 "국가 핵심 기술과 관련된 경우 산업기술보호법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만일 첨단 D램이나 HBM 등 핵심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라면 기술 이전과 해외 생산에 따른 보호 조치까지 함께 검토해야 하는 사안이 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인텔 오하이오 팹을 활용할 수 있다면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미국에 새로운 생산시설을 처음부터 구축하는 것과는 투자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며 "다만 기존 시설을 메모리 생산에 맞게 전환하는 데 필요한 장비와 공정 구축 비용, 생산 효율 등을 따져봐야 해 실제 사업성이 확인되기까지는 상당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SK하이닉스 측은 "사업상 다양한 투자 및 인수 기회를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현재 확정된 내용은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