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폐쇄적 인선 막아야”…금감원, CEO 승계 ‘기록’ 따진다
자추위 후보군 관리·검증 부실, 자회사 임추위 권한도 제한적 5대 은행장 임기 12월 31일 종료...연말 인선 시즌 앞두고 부담 가중 금감원, 1월부터 지배구조 선진화 TF 운영...폐쇄적 인선 관행 손질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국회서 계류...당국 모범관행 점검으로 선제 대응
[녹색경제신문 = 박지안 기자] 연말 금융지주 계열사 CEO 인사를 앞두고 금융당국이 후보군 선정부터 압축, 검증·평가에 이르는 승계 절차 전반의 투명성과 공정성 강화를 주문했다.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의 후보군 관리와 검증이 미흡하고 자회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의 역할도 제한적이라는 판단에서다. 금융지주들은 상시후보군 구성과 갱신, 단계별 평가 기준, 이사회·위원회의 논의 및 의사결정 근거를 기록으로 남겨 절차적 정당성을 입증해야 할 부담을 안게 됐다. 5대 은행장 임기가 오는 12월 31일 일제히 종료되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은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TF) 논의를 바탕으로 폐쇄적 인선 관행과 형식적인 후보군 관리 문제를 점검할 전망이다.
16일 녹색경제신문의 취재에 따르면 이 원장은 전날 임원회의에서 “연말까지 은행장을 포함한 다수 금융지주 자회사 CEO 경영승계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라며 “대부분 지주회사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가 수립한 자회사 CEO 승계절차가 미흡하고, 자회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의 역할도 제한적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상시후보군 형식적 관리”…압축·검증 불투명 관행 도마
금감원이 지적한 문제는 구체적이다. CEO 자격요건이 명확한 평가 기준 없이 추상적으로 정의됐고, 후보군을 좁혀가는 단계마다 충분한 검증기간을 보장하지 않은 사례가 확인됐다. 상시후보군을 형식적으로 관리하거나 후보군 압축과 검증 과정을 불투명하게 운영하는 관행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 원장은 후보군 선정과 검증·평가, 관련 기록 관리 등 승계 절차 전반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보 명단과 최종 선임 결과뿐 아니라 후보가 상시후보군에 포함된 경위, 압축 단계별 평가 기준, 이사회·위원회의 논의 및 의사결정 근거까지 체계적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미다.
금감원의 지적은 금융지주와 자회사 간 CEO 승계 과정에도 적용된다. 금융지주 CEO 승계는 통상 지주 이사회 산하 자추위가 후보군을 관리·압축한 뒤 최종 후보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은행장을 비롯한 자회사 CEO 인선에서는 지주 자추위와 자회사 임추위의 역할 분담이 핵심이다.
금감원은 일부 금융지주에서 자회사 임추위의 권한과 참여가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지주 자추위가 자회사 CEO 상시후보군 현황을 자회사 임추위와 공유하거나 후보 추천권을 부여하는 방식도 제한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회사 임추위가 후보군 관리와 추천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절차를 정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관행이 제시한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모범관행은 CEO 후보군을 상시 관리하고 비상 상황을 포함한 승계 계획을 마련하며, 후보군 선정과 검증의 객관성을 높이는 데 방점을 둔다. 그러나 실제 운영에서는 현직 CEO 중심의 후보 관리나 단기간의 압축 심사로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배구조 선진화 TF 운영…연말 인선 앞두고 점검 강화
금감원은 이러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올해 1월부터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금융회사 CEO 선임 과정의 폐쇄성을 줄이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특정 계파나 친소관계에 따라 후보가 부상하는 인선 관행을 차단하고, 객관적인 자격요건과 독립적인 이사회 검증을 기반으로 한 승계 체계를 정착시키겠다는 취지다.
이번 발언은 TF 논의를 연말 금융권 인사 시즌에 맞춰 감독 현장에 적용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금융지주들은 앞으로 후보 선정과 검증 과정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각 단계의 판단 근거를 기록으로 남겨 절차적 정당성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연말에는 주요 은행장 인선이 몰려 있다.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 NH농협은행장 등 5대 은행장의 임기가 오는 12월 31일 일제히 종료된다. 금감원장의 이번 메시지가 현직 연임과 후임 인선의 향방을 직접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 금융지주가 후보군 관리와 검증의 ‘기록’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하느냐가 이번 승계 시즌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한편 금융권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입법 논의는 아직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횟수를 제한하거나 연임 시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지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실질적인 심사는 아직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법률 개정이 지연되는 사이 금융당국은 모범관행 이행 점검과 이사회 책임 강화를 통해 금융회사 인선 관행을 바꾸려는 모습이다. 앞으로 금감원은 현직 CEO의 연임 여부나 최종 후보자의 개인 이력만이 아니라 외부 후보를 포함한 후보군의 구성과 갱신, 후보별 평가의 객관성, 단계별 검증 절차와 회의록 등 관련 기록의 충실성까지 살필 방침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지주 회장 인선에서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온 데 이어 연말 금융지주와 은행권 CEO 인사에서도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며 “과거에는 실적과 경영 연속성이 연임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었다면, 앞으로는 세대교체와 조직 변화, 미래 성장전략 등 다양한 요소가 인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럴 때일수록 후보군 구성부터 평가 과정까지 객관적인 근거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며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기조에 맞춰 승계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