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수출물가 3.7% 하락…3년8개월 만에 최대 낙폭, 교역조건은 역대 최대 개선
원·달러 환율 한 달 새 6.1% 급락하며 유가 상승분 상쇄 반도체 수출가격은 계약통화 기준 오히려 상승…"업황 피크아웃 아니다"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지난달 국제유가가 크게 뛰었음에도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원화 기준 수출물가가 3년8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한국은행이 15일 발표한 '2026년 8월 수출입물가지수 및 무역지수(잠정)'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물가지수(원화 기준)는 183.23(2020년=100)으로 전월(190.32) 대비 3.7% 하락했다. 이는 2022년 12월(-6.1%)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 수출물가는 올해 5월까지 11개월 연속 오르다 6월(-0.1%) 하락한 뒤 7월(0.9%) 반등했지만, 한 달 만에 다시 내림세로 돌아섰다. 다만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42.4% 오르며 12개월 연속 상승세는 이어갔다.
하락을 이끈 건 단연 환율이었다. 지난달 원·달러 평균 환율은 1406.30원으로 전월(1497.43원)보다 6.1% 급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월평균 두바이유는 배럴당 76.75달러에서 88.75달러로 15.6% 올랐다. 국제유가가 뛰었는데도 환율 하락 폭이 이를 압도하면서, 원화로 환산한 수출 가격 전반을 끌어내린 셈이다. 품목별로는 국제유가 상승 영향을 받은 석탄·석유제품(0.3%)만 소폭 올랐을 뿐, 화학제품(-5.3%), 운송장비(-5.4%),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3.1%) 등 주요 공산품이 일제히 하락했다.
다만 환율 효과를 걷어내고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환율 변동 영향을 제거한 계약통화 기준 수출물가는 오히려 전월 대비 2.2% 상승했다. 이흥후 한은 물가통계팀장은 "8월 반도체 수출가격은 원화 기준으로는 하락했지만, 환율 효과를 제거한 계약통화 기준으로는 상승했다"며 "견조한 반도체 수요가 유지되면서 수출가격의 상승 흐름이 지속되고 있어 원화 기준 수출물가 하락을 반도체 업황의 피크아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수입물가지수도 156.31로 전월(160.14) 대비 2.4% 하락하며 지난 6월 이후 석 달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다. 국제유가 상승 영향으로 원재료는 1.5% 올랐지만, 환율 하락 효과가 더 크게 작용하면서 화학제품(-6.1%)·1차금속제품(-4.2%)을 중심으로 한 중간재(-4.0%)와 자본재(-4.2%), 소비재(-4.4%)가 일제히 내렸다. 다만 전년 동월 대비로는 15.6% 오르며 두 자릿수 상승률을 유지했다.
이런 흐름 속에 무역지수와 교역조건은 오히려 뚜렷한 호조를 보였다. 수출 가격이 수입 가격보다 상대적으로 더 크게 오르면서,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1988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 폭으로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와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수출 호조에 힘입어, 8월 ICT 수출은 599억8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62.6% 증가했고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사상 처음 60%를 넘어섰다.
한편 9월에는 국제유가 급등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물가지수에 반영될 전망이다. 이흥후 팀장은 "9월 11일까지 원·달러 환율은 3.7% 하락했다"고 밝혀, 이달에도 환율 하락이 유가 상승분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을지가 다음 달 수출입물가지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