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 인정한 카드업계 존폐 리스크…스테이블코인發 최대 5조 매출 증발 가능

가맹점 수수료 절감액 = 카드사 매출 감소액…작년 전체 감소분의 11배 규모 전업카드사 대부분 이미 대응 착수…생존 건 인프라 선점 경쟁

2026-09-11     박금재 기자
스테이블코인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신용카드 결제를 대체할 경우 카드업계가 연간 최대 5조원 넘는 매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국회에서 나왔다. 정부 차원의 정책 논의로 다뤄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카드산업의 핵심 수익 기반을 흔드는 존폐 리스크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9일 '스테이블코인의 금융시장에 대한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원화 코인이 신용카드 결제를 대체하는 상황을 가정해 비용 절감액을 추산했다. 국내 지급카드 이용 규모를 기반으로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과 스테이블코인 결제 수수료율, 신용카드 대체율을 다르게 조합한 결과 절감액은 연간 3700억원에서 최대 5조1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보다 수수료가 싼 코인 결제가 늘어날수록 가맹점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이 '가맹점의 절감액'이 그대로 '카드사의 매출 감소액'과 같다는 점이다. 카드사의 핵심 수익원은 가맹점이 결제 건별로 지불하는 수수료인데, 그 자금이 더 저렴한 스테이블코인 결제로 옮겨가면 카드사 입장에서는 고스란히 매출이 빠져나가는 셈이 된다. 정부나 국회 입장에서는 '가맹점 부담 완화'라는 긍정적 정책 효과로 볼 수 있지만, 카드업계 입장에서는 정확히 같은 크기의 손실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 규모가 카드업계에 미칠 충격은 최근 흐름과 비교하면 더 뚜렷해진다. 앞서 8개 전업카드사의 가맹점수수료 수익은 지난해 한 해 동안 4427억원 감소했는데, 이 수치만으로도 업계 안팎에서 상당한 우려가 나왔었다. 그런데 이번 국회예산정책처가 제시한 최대치(5조1500억원)는 이 기존 감소분의 11배가 넘는 규모다. 카드업계가 이미 수수료율 인하 압박과 조달금리 상승, 연체율 관리 부담으로 수익성이 눌려있는 상황에서, 결제 시장 자체가 재편될 수 있다는 훨씬 근본적인 위협이 추가된 셈이다.

다만 이런 대체가 당장 현실화될 가능성은 변수가 많다. 예정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보유·사용에 이자성 보상을 지급할 경우 은행 예금이 코인으로 옮겨가는 이탈 현상이 빨라질 수 있다고 짚었는데, 이는 금융당국이 스테이블코인 확산 속도 자체를 신중하게 조절할 유인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스테이블코인 도입 초기에는 은행 또는 은행권 중심 컨소시엄에 발행을 제한적으로 허용한 뒤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관련 규제 틀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지니어스법'을 통해 발행 인가, 준비자산 1대1 보유, 이용자 상환청구권 등을 규정했고, 유럽연합은 2023년 '미카법'으로 암호자산 전반에 포괄적 규제를 도입했다. 국내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가상자산 2단계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이며, 지난 7월 기준 관련 제정안 9건이 발의된 상태다. 예정처는 준비자산을 발행액의 100% 이상 보유하도록 하고, 광범위하게 쓰이는 코인을 '중요 스테이블코인'으로 지정해 금융당국의 시장안정화 체계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결국 관건은 카드사들이 이 구조적 위협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인데, 실제로 국내 전업카드사 대부분이 이미 어떤 형태로든 대응에 착수한 상태다. 신한카드는 아톤·블록오디세이 등 국내 블록체인 기업과 솔라나·파이어블록스 등 글로벌 웹3 기업, 비자·마스터카드까지 끌어들여 블록체인 기반 P2P 결제, 디지털자산 지갑 연동 결제, 스테이블코인 담보 신용결제 등 6대 핵심 과제의 개념검증(PoC)을 마쳤다. KB국민카드는 솔라나·안랩블록체인컴퍼니와 협력해 지갑 생성부터 결제 승인, 정산까지 전 과정을 검증하며 하이브리드 결제 모델에 무게를 싣고 있다.

삼성증권·삼성SDS·삼성카드 등 삼성 계열 3사는 지난 5월 공동으로 두나무 지분 4%(6128억원)를 매입했다. 하나카드 역시 하나금융그룹 차원에서 지난 3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 계열사, 크립토닷컴과 협업해 국내 결제 마케팅을 추진한 바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앞서 5월에도 하나은행을 통해 두나무 지분 6.55%(약 1조33억원)를 인수해 4대 주주로 올라선 바 있어, 그룹 차원에서 디지털자산 분야에 다각도로 접근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카드도 2월 이큐비알홀딩스와 디지털자산 월렛·지급결제 플랫폼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자사 앱에 스테이블코인 결제 기능을 도입할 계획이다. BC카드는 코인베이스와 달러 스테이블코인 USDC의 국내 결제 도입을 위한 실증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 6월에는 비자·블랙록이 주도하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 '오픈 스탠다드'에도 KB국민카드·삼성카드·현대카드·BC카드·NH농협카드·하나카드·우리카드 등 국내 카드사 대부분이 이름을 올리며, 사실상 업계 전체가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경쟁에 뛰어든 모습을 보였다.

이런 움직임은 카드사들이 스테이블코인을 '위협'인 동시에 '기회'로 접근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기존 가맹점 수수료 기반 수익 모델이 잠식될 위험이 있는 만큼, 아예 그 결제·정산 인프라 자체를 카드사가 선점해 새로운 수수료 체계를 설계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다만 대부분의 카드사가 아직은 개념검증이나 초기 협업 단계에 머물러 있어 실제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국회예산정책처가 제시한 최대 5조원대 매출 잠식 시나리오가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현실화될지는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의 구체적 내용과 시행 속도에 달려 있다. 결국 어느 카드사가 이 인프라 경쟁에서 먼저 실질적인 서비스 상용화에 도달하느냐가, 스테이블코인이 본격화될 경우 각사의 생존 여부를 가르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시장에 본격적으로 침투하면 카드사들이 지금까지 누려온 가맹점 수수료 기반의 사업 모델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5조원이라는 수치가 당장 현실화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결제 시장의 주도권이 이동할 경우 카드사 입장에서는 단순한 수익 감소를 넘어 사업 구조를 다시 짜야 하는 수준의 변화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스테이블코인을 얼마나 빨리 결제 인프라 안으로 끌어들이고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어내느냐가 카드사들의 생존 경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