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수익률 1위인데 상장폐지...자금 쏠림에 소형 ETF 생존 부담
[녹색경제신문 = 나희재 기자]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투자자 자금은 일부 인기 상품에 집중되면서 소형 ETF의 생존 부담이 커지고 있다. 최근 한 달 전체 ETF 수익률 1위에 오른 반도체 ETF조차 충분한 자산을 확보하지 못해 이달 말 상장폐지를 앞두고 있다.
8일 녹색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KIWOOM K-반도체북미공급망’의 최근 한 달 수익률은 32.20%로 국내 상장 ETF 가운데 가장 높았다. 지난 7월 반도체주 급락 이후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관련 종목이 반등하면서 단기 성과는 빠르게 개선됐지만, 상품 자체는 이달 말 상장폐지를 앞두고 있다.
키움투자자산운용은 지난달 24일 해당 ETF의 투자신탁 임의해지를 결정했다. 설정 후 1년이 지난 상품의 신탁원본액이 한 달간 50억원을 밑돌면서 자본시장법상 해지 가능 요건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이후 반도체 ETF가 급등했지만 자산 규모는 충분히 회복되지 못해 7일 기준 순자산은 46억600만원에 머물렀다.
SK하이닉스와 ISC, 피에스케이홀딩스, 티씨케이 등 북미 반도체 공급망 관련 국내 기업에 투자하는 이 ETF는 오는 23일 매매거래가 정지되고 28일 상장폐지될 예정이다.
소형 ETF의 퇴출은 올해 들어 이어지고 있다. 한국거래소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달 27일까지 집계된 상장폐지 또는 상장폐지 예고 ETF는 22개다. 이 가운데 15개가 신탁원본액이나 순자산총액 등 자산 규모 미달을 이유로 시장에서 빠져나갔다. 같은 기간 새로 상장된 ETF는 127개에 달했다. 새로운 테마와 전략을 앞세운 상품이 빠르게 공급되는 동시에 투자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상품의 구조조정도 빨라지고 있는 셈이다.
시장 전체 규모와 비교하면 소형 ETF가 처한 상황은 더욱 두드러진다. 국내 ETF 순자산은 지난해 말 약 297조원에서 올해 6월 말 512조원까지 불어나며 사상 처음 500조원대를 넘어섰다. 증시 조정으로 8월 말에는 450조1193억원으로 내려왔지만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여전히 150조원 이상 커진 규모다.
문제는 늘어난 자금이 모든 상품에 고르게 유입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8월 ETF 시장 전체 순자산 증가분 가운데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차지한 비중은 66.2%였으며 상위 5개 운용사 비중은 87.9%에 달했다. 대표지수나 반도체·미국 대표지수 등 이미 규모와 거래량을 확보한 상품으로 자금이 집중되는 동안 비슷한 테마를 내세운 소형 ETF는 자금 확보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결국 ETF 시장의 외형 확대와 개별 상품의 생존은 별개의 문제로 볼 수 있다. 특히 비슷한 테마 상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는 최근 수익률뿐 아니라 순자산 규모와 거래대금, 거래량, 호가 스프레드 등을 함께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수익률 1위를 기록한 ETF마저 퇴출되는 이번 사례가 소형 테마 ETF의 치열해진 생존 경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ETF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투자자 자금은 결국 인지도가 높고 거래가 활발한 일부 상품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유사한 테마형 상품이 늘어난 상황에서는 단기 수익률이 좋아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순자산과 거래 기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상품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