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농협 8곳 중 5곳 ‘부실우려’…행정수도 특별법만으론 못 메우는 ‘경제 체력’
전국 지정률 4.2%인데 세종은 62.5%…세종중앙농협 영업손실 205억 인구 39만·GRDP 17조원으로 17개 시·도 중 경제규모 최하위 국가주도 도시 성장 이면에 상가 과잉·PF 부실…“자족경제 함께 키워야” 행정수도특별법 연내 처리 추진…재정특례만큼 기업·일자리·지역금융 체질개선 중요
[녹색경제신문 = 한순구 기자]
행정수도 완성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는 세종시에서 지역농협의 집단 부실이라는 또 다른 경고등이 켜졌다.
전국 1106개 지역농협 가운데 부실우려조합으로 지정된 곳은 46곳이지만 세종은 전체 지역농협 8곳 중 5곳이 포함됐다. 전국 평균 지정률은 약 4.2%인데 세종은 62.5%에 달한다.
세종은 중앙부처와 국책기관 이전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한 계획도시다. 그러나 지역농협 부실의 배경에 상가·오피스 개발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브리지론 등의 손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를 단순한 농협 경영 실패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수도라는 제도적 지위와 정부 투자가 도시의 외형을 키웠지만 이를 뒷받침할 민간 기업과 일자리, 상권, 지역 금융 등 자족경제 기반은 상대적으로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문제다.
특히 정치권이 행정수도특별법의 연내 처리를 추진하고 있지만 특별법 제정과 중앙정부 기관 추가 이전만으로 세종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국 4.2%인데 세종은 62.5%…한 지역에 부실 집중
농림축산식품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기준 전국 1106개 지역농협 가운데 46곳이 부실우려조합으로 지정됐다.
부실우려조합은 2021년 1곳에서 2022년 4곳, 2023년 7곳, 2024년 30곳, 지난해 52곳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세종에서는 세종중앙농협과 세종강남농협, 세종전의농협, 세종연서농협, 동세종농협 등 5곳이 포함됐다.
손실 규모도 크다. 세종중앙농협은 올해 7월 말까지 205억3600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부실우려조합 가운데 가장 손실 규모가 컸고, 세종강남농협도 80억1800만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세종강남농협은 앞서 2024년과 지난해 2년 동안 약 23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조합원에 대한 출자금배당과 이용고배당도 하지 못했다.
세종지역 농협 절반을 훌쩍 넘는 곳에서 동시에 건전성 문제가 나타났다는 점은 개별 조합 경영진의 실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행정도시인데 왜 무너졌나…‘농업’ 아니라 신도시 부동산 대출
세종 농협의 경영난은 농업 관련 경제사업 부진보다는 신용사업에서 발생한 손실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세종 농협은 농산물 판매와 농자재 공급 등 경제사업에서는 수십억원의 이익을 냈지만 부동산 관련 대출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면서 전체 실적이 적자로 돌아섰다.
2010년대 중후반 세종 신도시 개발이 활발하던 시기 일부 지역농협이 상가·오피스 개발 관련 브리지론과 공동대출을 취급했지만 이후 금리 상승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성이 악화되면서 대출 회수가 어려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세종의 상가 문제는 오래된 현안이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서 세종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024년 2분기 25.7%로 당시 전국 평균 13.8%의 두 배에 가까웠다. 행복청과 세종시, LH도 세종 상가 공실의 원인으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높은 소비 유출 등을 지목하고 상업용지를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대책까지 추진해왔다.
백기영 유원대 도시지적행정학과 교수도 세종 상권의 높은 초기 분양가격과 수요 대비 과도한 상업시설 공급, 신도시 특유의 더딘 상권 형성을 공실 장기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신도시 성장 기대에 맞춰 공급된 상업시설과 개발대출이 실제 민간 소비와 기업 수요보다 빠르게 늘었다면 부동산 경기가 꺾이는 순간 손실이 지역 금융기관으로 집중될 수 있다.
세종지역 농협 사태가 이 같은 ‘도시형 상호금융 부실’의 한 단면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광역시급 행정조직인데 인구 39만…경제규모는 전국 최하위
세종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수치도 있다.
지난 8월 말 세종시 주민등록 인구는 39만738명이다. 광역자치단체이지만 인구만 놓고 보면 서울의 자치구 한 곳과 비교할 수 있는 규모다. 서울 송파구 인구 64만9212명보다 약 26만명 적다.
경제 규모는 더 작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세종의 명목 지역내총생산(GRDP)은 약 17조원으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작았다. 같은 해 서울의 명목 GRDP는 약 575조원이었다.
세종이 국가 행정기능을 담당하는 광역자치단체라는 위상과 실제 민간경제 규모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는 셈이다.
세종시 스스로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지난 7월 취임한 조상호 시장이 첫 번째 지시사항으로 선택한 것이 ‘행정수도 완성’이 아니라 ‘경제 자족도시 실현’이었다. 두 번째 지시가 행정수도 완성이었다.
조 시장은 기업과 일자리, 인재가 선순환하는 자립형 경제생태계를 만들겠다며 세종 국가산업단지와 집현동 테크밸리, 디지털미디어단지 등을 기반으로 반도체·바이오·AI 등 전략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행정수도 기능 확대와 경제 자족기능을 별도의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부기관 추가 이전만으로 지역경제 자립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행정수도특별법 통과하면 해결되나…“필요하지만 충분조건 아냐”
정치권에서는 현재 행정수도특별법 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국회에는 세종을 대한민국 행정수도로 규정하고 국회와 대통령실 등 국가 중추기관을 이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관련 특별법안 5건이 발의돼 있다. 지난달 31일에는 세종과 충청권 정치권·시민사회가 국회에서 연내 법 제정을 촉구했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도 2일 세종을 찾아 연내 처리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별법 제정은 세종의 도시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국회와 대통령실 이전이 본격화하면 인구 유입과 소비 증가, 기업·기관 이전 등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률 하나가 지역 민간경제의 체력을 곧바로 키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 국회에 제출된 세종시법 개정안 자체가 세종의 ‘불안정한 세입 기반’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황운하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국가 주도의 도시건설에 따른 재정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했음에도 자체적인 세입 기반에는 한계가 있다며 보통교부세 총액의 1%를 세종에 배분하는 방안을 담았다.
세종시의회 역시 지난 7월 세종의 재정난을 이유로 재정특례 확대를 요구했다.
행정수도 지위가 강화될수록 국가가 추가적으로 부담해야 할 인프라와 행정비용도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행정수도특별법이 도시 성장의 새로운 계기가 되더라도 그 효과가 또다시 정부청사와 공공기관, 정부 예산, 부동산 개발에 집중된다면 과거와 비슷한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가시설 이전을 민간기업 유치→양질의 일자리 증가→상주인구 및 소비 확대→지방세수 증가로 연결하는 것이 세종의 다음 과제라는 것이다.
부실 농협 5곳, 당장 문 닫는 것은 아니다
부실우려조합으로 지정됐다고 해당 농협이 즉시 파산하거나 문을 닫는 것은 아니다.
부실우려조합은 경영상태가 악화돼 향후 부실조합으로 전환될 위험이 있는 단계다.
현재 46곳 가운데 25곳에는 재무구조개선 권고, 4곳에는 재무구조개선 요구가 내려졌고 합병 명령은 1곳, 합병 권고는 2곳에 불과하다. 14곳은 시정조치가 유예됐다.
정상화가 가능하면 부실채권 매각과 비용 절감, 자본확충 등을 통해 독립 조합으로 살아남는다.
회생 가능성이 낮으면 인근 건전 농협과 합병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수순이다. 이 경우 기존 농협 법인은 사라질 수 있지만 예금과 정상 대출 등은 합병 농협으로 승계된다.
실제 파산 단계까지 갈 경우 농·축협 예·적금은 상호금융예금자보호기금을 통해 동일 조합 기준 1인당 원금과 소정의 이자를 합쳐 최대 1억원까지 보호된다.
반면 조합원의 출자금은 예금이 아니라 자본이기 때문에 손실 가능성이 있다.
가장 먼저 피해를 체감하는 사람 역시 조합원이다. 배당이 중단되고 농산물 유통, 농자재 지원, 복지사업 등에 투입할 재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부실과 무관한 농민·소상공인도 신규대출 축소나 만기연장 심사 강화로 피해를 볼 수 있다.
결국 정부가 또 책임지나…“세금 투입 전에 책임부터 물어야”
지역농협 부실이 곧바로 국민 세금으로 메워지는 구조는 아니다.
우선 부실 차주와 담보자산에서 채권을 회수하고 해당 농협의 충당금과 잉여금, 자본으로 손실을 처리해야 한다.
이후 필요하면 농협중앙회와 상호금융예금자보호기금이 합병이나 계약이전을 지원한다.
그러나 부실 규모가 커져 기금의 자체 재원만으로 처리하기 어려워질 경우 정부 지원이나 보증으로 부담이 전이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구조조정에 공적 자금이 투입되기 전에 부실 대출을 결정한 경영진과 이를 적기에 막지 못한 감독기관의 책임부터 가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식품부뿐 아니라 농협중앙회의 책임도 따져봐야 한다.
지역농협은 개별 독립 법인이지만 농협중앙회는 회원조합에 대한 감사와 경영지도 기능을 갖고 있다. 부동산 경기 악화 이전에 대출이 특정 지역과 개발사업에 얼마나 집중됐는지, 부실 징후가 나타난 이후 어떤 경고와 시정조치를 내렸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농식품부의 농협 특별감사에서도 회원조합 감사 과정의 소극적인 감사와 내부통제 문제 등이 지적된 바 있다.
정부가 지역농협에만 경영개선을 요구하고 중앙회의 사전 감독 실패에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비슷한 사고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세종의 해법은 ‘정부를 더 가져오는 것’에서 끝나선 안 돼
세종의 행정수도 완성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도시의 중요한 성장 동력이다.
그러나 지역농협의 집단 부실은 세종의 다음 단계가 정부기관을 얼마나 더 이전시키느냐만으로 결정될 수 없다는 점도 보여준다.
국가가 만든 도시에서 정부 기능을 강화하는 것과 정부 지원 없이도 돌아가는 민간경제를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과제이기 때문이다.
세종시는 이미 기업 유치를 통한 경제 자족기능 강화를 공식 정책으로 내걸었다. 국가 차원의 행정수도 추진계획 역시 국회·대통령실 이전과 함께 산·학·연 혁신생태계와 자족기능 확충을 주요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지역농협 문제도 같은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조합은 손실이 더 커지기 전에 합병하고, 살아남을 조합은 부동산 PF와 공동대출 편중을 줄여야 한다. 동시에 농협중앙회의 사전감독 책임을 강화하고 일정 기간 경영개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조합에는 자동으로 합병심사나 외부 경영관리 절차가 작동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도시 차원에서는 과잉 공급된 상업시설의 용도전환과 기업·대학 유치, 민간 일자리 확대 등을 통해 정부기관 이전과 별개로 작동하는 소비와 세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행정수도특별법이 세종의 법적 위상을 완성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세종의 경제적 완성까지 보장해주는 법은 아니다. 세종지역 농협 8곳 중 5곳이 부실우려조합으로 지정된 현 상황은 행정수도라는 외형에 걸맞은 민간경제와 지역금융의 체력을 함께 키워야 한다는 과제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