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외환보유액 4422억달러…143억달러 급증, 역대 최대폭
반도체 수출 호황發 외화예수금 급증이 견인, 석 달 연속 증가세 한은, 25년 만에 외환보유액 국제 순위 공개 슬그머니 중단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지난달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역대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나며 4400억달러 선을 훌쩍 넘어섰다.
한국은행이 3일 발표한 '2026년 8월 말 외환보유액'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422억8000만달러로 전월 말(4279억5000만달러) 대비 143억3000만달러 증가했다. 이는 1971년 월별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큰 증가폭으로, 종전 최대 기록이었던 2009년 5월(142억9000만달러)을 4000만달러 웃돈 수치다. 잔액 기준으로도 2022년 5월(4477억1000만달러) 이후 약 4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다만 역대 최대였던 2021년 10월(4692억1000만달러)과 비교하면 여전히 약 269억달러 적은 규모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6월부터 석 달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은은 이번 증가의 배경으로 "금융기관의 외화예수금이 크게 늘어난 데다, 운용수익과 기타통화 외화자산의 미국 달러 환산액 증가 등이 더해지며 큰 폭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반도체발 경상흑자가 확대되면서 수출기업들의 경상대금 유입이 크게 늘었고, 이 자금이 국내로 들어와 외화자금시장 참여자들의 유동성을 풍부하게 만든 점이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여기에 한은이 올해 초부터 자체 예치된 초과 지급준비금에 이자를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외화 유동성이 풍부해진 금융기관들이 한은에 맡기는 예치 규모를 늘린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자산별로 보면 국채·회사채 등이 포함된 유가증권이 3870억7000만달러로 전체 외환보유액의 87.5%를 차지하며 가장 큰 비중을 유지했다. 유가증권은 전월보다 70억7000만달러 늘었다. 현금성 자산인 예치금은 303억달러로 전월(231억3000만달러)보다 71억7000만달러 증가하며 두 배 가까운 증가폭을 보였다. 유가증권과 예치금 증가액을 합치면 142억4000만달러로, 이번 달 전체 외환보유액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셈이다. 이 밖에 특별인출권(SDR)은 157억7000만달러로 전월 대비 6000만달러, 국제통화기금(IMF) 포지션은 43억4000만달러로 3000만달러 각각 늘었다. 금 보유액은 47억9000만달러로 집계됐다.
한편 지난달 주요국 통화는 달러 대비 대체로 강세를 보였다. 유로화와 파운드화는 달러 대비 각각 0.5% 절상됐고, 호주달러화는 1.9% 올랐다. 반면 엔화는 달러 대비 0.3% 절하됐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7월 말 99.86에서 8월 말 99.70으로 0.2% 하락하며, 전반적인 달러 약세 흐름 속에서 기타통화 외화자산의 달러 환산액이 늘어난 점도 외환보유액 증가에 보탬이 됐다.
이날 발표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변화는 한은이 그동안 매달 함께 공개해온 전 세계 외환보유액 국제 순위를 이번 달부터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는 점이다. 한은이 국가별 순위를 별도 항목으로 공개하지 않은 건 2001년 2월 말 이후 약 25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외환보유액의 국제 비교에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2001년 이후, 4반세기 만에 이 관행이 사라진 셈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한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외환보유액 규모를 순위로 두고 비교하는 것은 정보적 가치가 미미하다고 판단했고, 순위가 바뀐다고 대외 건전성이 바뀌는 것은 아닌데 그런 오해의 소지도 있었다"며 "이런 점들을 고려해 해당 정보를 이번 달부터 별도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국가별 외환보유액 자체는 국제기구 통계 등을 통해 여전히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월별 순위 공개 중단이 실제 정보 접근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한은 측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