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 수는 지켰다, 그런데 기능은 없앴다"…은행권 규제 허점, 한국만의 문제 아니다
영국은 '기능' 평가해 뱅킹허브로 대응, 일본은 이미 같은 꼼수 써와 숫자만 세는 한국 규제, 해외는 접근성 자체를 측정한다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은행권이 점포 폐쇄 규제를 피해 지점을 출장소로 격하시키는 '지점의 출장소화' 흐름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다만 이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에서는 국가별로 뚜렷한 차이가 드러난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16개 은행의 전체 점포 수는 지난해 말 5503곳에서 올해 2분기 말 5505곳으로 오히려 2곳 늘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일반 지점이 65곳 줄고 출장소가 67곳 늘어난 결과다. 최근 1년으로 넓히면 16개 은행 중 9곳에서 이런 패턴이 동시에 나타났다.
출장소는 지점보다 인력(평균 4.3명, 지점은 13명)과 운영비(평균 8억8600만원, 지점은 30억9600만원)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은행 입장에서는 '점포 수 유지'라는 규제 목표를 지키면서도 비용은 크게 줄일 수 있는 구조다.
5대 은행 점포 가운데 출장소 비중은 2023년 말 16.7%에서 지난해 3분기 말 19.4%(726곳)까지 계속 상승해왔고, 같은 시기까지 5대 은행이 지점 100곳을 출장소로 전환한 것으로 파악됐다는 국회 정무위원회 자료도 있다. 즉 이번 흐름은 새로 시작된 게 아니라, 최소 2~3년째 꾸준히 진행돼온 추세가 이번에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일본 메가뱅크들이 이미 수년 전부터 정확히 같은 방식을 활용해왔다는 점이다.
전직 은행원 출신 필자가 운영하는 일본 금융 전문 매체 마오나인이 올해 1월 게재한 글에 따르면, 일본 은행들은 지점을 유지하려면 일정 인원 기준을 채워야 하는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지점을 출장소로 전환하는 방식을 써왔다.
출장소로 바뀌면 기준 인원 자체가 크게 줄어들 뿐 아니라, 아예 지점장을 두지 않고 인근 대형 지점의 지점장이 겸임하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추가로 절감한다는 게 해당 매체의 설명이다. 이는 일본에서도 "실질적인 점포 축소"로 지적돼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021년 보도에서 짚었듯, 일본 은행권 전체의 지점 수는 향후 몇 년간 약 1000곳(전체의 1할가량) 더 줄어들 것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미즈호·미쓰이스미토모 등 일본 대형 은행들은 은행·신탁·증권 계열사를 한 지붕 아래 모으는 '공동점포'를 늘리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는데, 산업 전문지 뉴스위치(다이닛폰공업신문사)의 취재에 따르면 미즈호파이낸셜그룹(FG)은 2017년 9월 말 대비 2024년도까지 은행·신탁·증권 공동점포를 30곳 늘려 220곳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전체 거점 수는 500곳에서 400곳으로 줄이는 계획을 추진해왔다. 겉으로는 서비스 폭을 넓히는 것처럼 보이면서 실제로는 전체 점포를 줄이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반면 영국의 접근법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영국 의회 산하 공공도서관(House of Commons Library)이 지난 3월 16일 발표한 조사 보고서('Access to cash and banking services', 저자 로나 부스 등)에 따르면, 영국은 2023년 금융서비스시장법(Financial Services and Markets Act 2023)을 통해 금융감독청(FCA)에 '현금 접근성'을 유지할 법적 책임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2024년 9월부터 시행된 FCA 규정은 은행이 특정 지역의 서비스를 종료하려면, 그 지역을 평가해서 폐쇄가 입출금 서비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게 확인돼야만 폐쇄를 허용한다. 단순히 "점포를 몇 개 유지하느냐"가 아니라 "그 지역 주민이 실제로 현금을 넣고 뺄 수 있는가"를 규제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1월 이후 영국에서 폐쇄된 은행·건축조합 지점은 약 6700곳으로, 이는 당시 영업 중이던 지점의 68%에 해당하는 규모다. ATM 수도 2015년 이후 40% 줄었다.
더 눈에 띄는 건 '뱅킹허브(Banking Hub)' 제도다. 이는 여러 은행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물리적 거점으로, 기본적인 창구 서비스와 함께 각 은행 소속 직원과 직접 상담할 수 있는 '커뮤니티 뱅커'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하원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영국 전역에서 225곳의 뱅킹허브가 실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2024년 총선 이후 영국 정부는 이번 의회 임기 내 350곳까지 늘리는 데 은행업계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즉 영국은 개별 은행이 각자 점포를 줄이는 걸 막는 대신, 은행들이 함께 돈을 대서 '접근성 자체'를 최소한으로 보장하는 공동 인프라를 만드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고 있는 셈이다.
다만 같은 보고서는 이 제도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FSMA 2023이 FCA에 부여한 권한은 '현금 접근성'에 한정돼 있어, 계좌 개설이나 대출 상담 같은 폭넓은 은행 서비스 자체에 대한 접근성까지는 법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당은 법안 심의 당시 이 범위를 넓히자는 수정안을 제출했지만, 당시 재무부 장관이 업계 주도의 뱅킹허브 확대로 충분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우리나라 금융당국도 점포 폐쇄 규제를 계속 강화해왔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초 열린 '금융소비자 목소리를 듣다' 간담회에서 '은행 점포폐쇄 대응방안'을 발표하고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최근 2년간 은행들이 대체수단을 마련하지 않은 채 점포를 200개 넘게 폐쇄한 데 따른 조치로, 반경 1km 내 점포 통폐합에도 예외 없이 사전영향평가와 지역의견청취를 의무화하고, 광역시 외 지역에서 점포를 닫으면 지방자치단체 금고 유치 평가에서 감점 폭을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규제는 여전히 '지점 폐쇄' 자체를 까다롭게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지점이 출장소로 '격하'되는 것까지 동일한 잣대로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그 결과 은행들은 지점을 완전히 없애는 대신 출장소로 전환하는 우회로를 찾아냈고, 이는 일본이 이미 10여 년 전 걸어간 길과 정확히 겹친다.
영국처럼 '서비스가 실제로 유지되는가'를 평가 기준으로 삼거나, 은행들이 공동으로 최소한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인프라를 만드는 방식은 한국에서는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점포 수라는 총량 지표만 보고 있는 한, 은행들은 앞으로도 '숫자는 지키고 기능은 줄이는' 방식을 계속 찾아낼 것"이라며 "결국 규제의 초점이 점포의 '개수'가 아니라 실제로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