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이체’ 신종피싱 막는다…FIU·전 금융권, 한 달간 4935건 임시조치
5주간 신종피싱 신고 4935건…3750건 임시 거래정지 로맨스스캠 신고 최다…FIU "특금법 개정 추진" 은행·카드사도 AI탐지 등 자체 대응 나서
[녹색경제신문 = 박지안 기자] 신종피싱 의심계좌에 대한 임시 거래정지 조치가 제도 시행 한 달 만에 4900여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보이스피싱 규제망 밖에 있던 신종 사기 수법이 급증하면서 금융당국은 물론 은행권부터 가상자산업계까지 계좌 거래정지, 이상거래 탐지, 피해 보상제 등으로 대응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다만 거래정지 건수만으로는 실제 피해 차단 효과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금융·통신·민간 기술을 엮은 '3각 방어체계' 구축이 다음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13일 녹색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신종피싱 의심계좌 거래정지 제도 시행 이후 금융회사가 취한 초기 임시조치가 총 4935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지난 7일 하주식 제도운영기획관 주재로 경찰청, 금융감독원, 전 금융권 협회와 '신종피싱 의심계좌 거래정지제도 점검회의'를 열고 이 같은 집계 결과와 제도 보완 방안을 논의했다고 9일 밝혔다.
금융회사는 이 가운데 3750건을 특정금융정보법상 강화된 고객확인 대상으로 분류하고 신종피싱 의심계좌로 임시 거래정지했다. FIU는 임시 거래정지된 계좌 중 1065건에 대해 거래정지 필요성을 검토해 금융회사에 통지했다. 검토가 완료되지 않은 계좌는 금융회사가 강화된 고객확인 절차를 마칠 때까지 임시 거래정지 상태를 유지한다.
유형별로는 로맨스스캠이 1527건(약 41%)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노쇼·대리구매 사기가 1376건(약 37%), 팀미션사기가 847건(약 22%)으로 뒤를 이었다. 최근에는 시청 등 공무원을 사칭해 무전기 등 물품 대리구매를 요청하는 수법도 확인되며 주의보가 내려졌다.
로맨스스캠은 SNS나 데이팅앱 등을 통해 피해자와 친밀감을 쌓은 뒤 통관비·병원비·투자금 등을 이유로 송금을 요구하는 수법이다. 노쇼·대리구매 사기는 공공기관이나 학교 등을 사칭해 물품 구매나 납품을 요청한 뒤 지정 계좌로 돈을 보내도록 유도한다. 팀미션사기는 부업이나 단체 미션 등을 내세워 보증금이나 투자금 명목의 선입금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들 사기의 공통점은 피해자가 정상적인 거래로 오인해 직접 돈을 이체한다는 데 있다. 기존 보이스피싱과 달리 피해자가 직접 송금에 나서기 때문에 금융회사가 거래 과정에서 사기 여부를 즉시 가려내기 어려웠다. 이번 제도는 이런 신종피싱 의심계좌에 대해 금융회사가 우선 임시로 거래를 정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금융회사는 의심계좌를 최초 7영업일간 임시 거래정지할 수 있으며, 이후 FIU 검토를 거쳐 거래정지 유지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최대 60영업일까지 추가 거래정지가 가능하다.
"제도 안착, 그러나 피해는 지속"…FIU, 특금법 개정 추진
하주식 FIU 제도운영기획관은 관계부처와 금융권의 노력으로 제도가 안착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전형적 수법으로 인한 피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어 재발 방지를 위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FIU는 거래정지 제도의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을 신속히 추진하는 한편, 거래정지 계좌를 더 빠르게 검토할 수 있도록 전담 인력을 보강할 계획이다. 행정안전부·법무부·교육부 등과 협의해 지자체와 교도소, 학교 등에 노쇼사기 예방 홍보물을 게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앞서 지난 4일부터는 개정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시행에 따라 보이스피싱 의심 금융·통신·수사정보를 인공지능(AI) 정보공유 플랫폼 'ASAP'을 통해 관계기관이 공동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그간 ASAP은 은행권 정보를 중심으로 운영돼 왔으나 법적 근거 미비로 통신·수사정보 활용에 제약이 있었다. 개정 법령 시행으로 금융회사와 전기통신사업자, 수사기관은 정보주체의 개별 동의 없이도 의심정보를 ASAP 운영기관에 제공할 수 있게 됐으며, 금융보안원이 정보공유분석기관으로 지정됐다. 공유 대상은 피해발생계좌·사기이용계좌의 계좌번호와 거래내역, 사기에 이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전화번호와 악성 앱 관련 정보 등이다.
계좌 명의인은 금융회사나 경찰에 이의를 신청할 수 있으며, 경찰이 범죄 연루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금융회사에 거래정지 해제를 요청할 수 있다.
금융권도 자체 방어체계 구축…AI 탐지부터 보상제까지
정부 차원의 제도 정비와 별개로 금융권도 자체적인 피해 예방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거래 전후의 행동 흐름을 종합 분석하는 AI 탐지 모델을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에 적용해 도입 이후 금융사기 예방 건수가 도입 전 대비 월평균 4.4배 늘었다고 밝혔다. 롯데카드는 국내 카드사 최초로 통신3사의 AI 기반 보이스피싱 탐지 솔루션을 FDS에 연계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3억2000만원 상당의 피해를 예방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보이스피싱으로부터 고객 피해 약 1720억원을 예방했으며 화성동탄경찰서와 협업한 의심거래 핫라인을 통해 70여 건의 인출책 검거를 지원했다. NH농협은행은 지난 3월 60세 이상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보상보험 무료 가입' 서비스를 도입해 3개월 만에 가입자 10만 명을 넘겼다. 토스뱅크는 경찰청과 함께 퇴직경찰을 활용한 '우리동네 금융사기예방관'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국내 은행권 최초로 '안심보상제'를 운영하고 있다.
가상자산업계도 이용자 보호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코인원은 보이스피싱 통합대응단 출범 이후 50일간 고객 자산 약 6800만원을 범죄 시도로부터 지켜냈으며 이 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경찰청장 감사장을 수상했다. 두나무는 최근 5년간 정보보호 부문에 627억원을 투자했고 지난해에만 243억원을 투입해 전년 대비 64.7% 늘렸다. 보안 전담 인력도 2021년 9.9명에서 지난해 43.9명으로 4배 이상 확충했다. 빗썸은 매월 둘째 주 수요일을 '정보보호의 날'로 지정해 정기 보안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정상 앱을 복제해 악성 기능을 심는 '가짜 거래 앱 사기'에 대한 예방 가이드를 공개했다.
이처럼 은행권부터 카드사, 가상자산거래소까지 업권을 가리지 않고 AI 탐지 기술 고도화와 피해 보상 체계 마련에 나서면서 정부 주도의 제도 정비와 민간 자율 대응이 맞물리는 이중 방어망이 갖춰지는 모습이다.
전문가 진단 "제도 정비만으론 부족…3각 방어체계로 가야"
한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거래정지 제도만으로는 신종피싱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최근 보이스피싱 무과실 배상책임제 도입 논의와 관련해,금융회사의 배상 책임만으로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금융회사의 방지 노력도에 따라 배상 책임을 차등화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통신사의 공동 책임과 피해구제 공동기금 조성, 소비자 예방교육과 피해구제를 연계하는 인센티브 방안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 중심 대응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민간 Anti-Fraud 기술 기업을 육성하고 데이터 활용 기반을 마련해, 금융·통신·민간 기술이 결합된 '3각 방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향후에는 거래정지 건수뿐 아니라 실제 피해 차단 규모와 이의신청·해제 현황, ASAP을 통한 정보공유가 실제 피해 예방으로 이어지는지가 제도의 효과를 가늠할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