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뒷談] 삼성식 신사업 문법, 로봇에서도 통할까

RX사업추진실 신설로 로봇사업 전면화…독립법인 가능성에도 시장 관심 삼성식 속도전 시험대 오른 피지컬AI…관건은 M&A보다 장기 실증 역량

2026-08-11     김지윤 기자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최근 한 달간 로봇업계에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을 꼽으라면 삼성전자의 RX사업추진실 신설을 빼놓기 어렵습니다. 삼성전자가 지난 7월 CEO 직속으로 로봇 전담 조직을 만들자, 6월 이후 내리막을 걷던 로봇주들이 일제히 반등했습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로봇 사업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M&A나 지분투자의 수혜가 어느 기업으로 향할지 점쳐보는 움직임도 분주해졌습니다.

이번 조직 개편의 또다른 관전포인트는 RX사업추진실이 향후 독립법인으로까지 발전할지 여부입니다. 삼성전자는 과거에도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때 내부에 TF나 사업추진실 형태의 작은 조직을 먼저 만들곤 했습니다. 이후 성과가 확인되면 별도 법인으로 키우고, 반대로 사업성이 뚜렷하지 않으면 내부에 남겨두다 조직을 축소하거나 정리하는 방식을 반복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바이오로직스입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디스플레이 사업을 별도 축으로 키우며 글로벌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 잡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대규모 설비투자와 자본시장 조달을 바탕으로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시장에서 급성장했습니다.

대기업들이 유망 사업부를 분가시키는 방식은 낯설지 않지만, 삼성은 그중에서도 투자 규모와 속도전에서 훨씬 과감한 편입니다. 양사 모두 TF 출범부터 자회사로의 분가까지 2년이 걸리지 않았으니까요.

반대로 위축된 조직도 적지 않습니다. 의료기기·헬스케어, 태양광, LED 등도 TF가 출범했지만 사업화가 원활하지 않자 축소되거나 사라졌습니다. “삼성은 돈 안되는 자식을 품지 않는다”는 말이 재계에서 통용되는 이유입니다. 

시장에서는 로봇 사업이 삼성전자 안에서 독립법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로봇은 현재 AI 반도체와 함께 가장 주목받는 미래 산업 중 하나입니다. 특히 삼성전자는 가전과 모바일, 반도체 공장이라는 거대한 내부 수요를 갖고 있습니다. 로봇 사업이 독립법인으로 출범하더라도 삼성전자 가전사업부와 DS부문을 캡티브 마켓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입니다.

다만 넘어야 할 산도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술입니다. LG전자가 액추에이터와 스마트팩토리를 로보틱스 메인 사업으로 내세운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아직 구체적인 그림이 없고 그만큼 기술적 공백도 많습니다. 액추에이터 양산, 정밀 제어,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로봇 소프트웨어 등 핵심적인 로봇 사업에서 삼성전자는 아직 시장에 선보일 수 있는 자체 기술을 보유하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RX사업추진실의 성장 경로는 삼성디스플레이보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가까울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기존 사업부의 기술과 생산 기반을 독립시키는 성격이었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대규모 설비투자와 외부 고객 확보, 자본 조달을 통해 새 산업을 만들어낸 사례에 가깝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6년 상장 당시 약 2조2500억원을 공모했고 이 자금은 공장 증설과 바이오시밀러 개발 자회사 지원 등에 활용됐습니다.

문제는 지금의 시장 환경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입니다. 중복상장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대기업 계열 신사업 법인이 IPO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길은 예전보다 좁아졌습니다. HD현대로보틱스도 RCPS 상환 부담 등으로 IPO를 통한 자금 조달 필요성이 거론되지만, 제도 변화로 운신의 폭이 제한된 상황입니다.

삼성전자 역시 RX사업을 독립법인으로 키우려면 막대한 투자 재원을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마련할지가 숙제로 남습니다. 더구나 RX사업추진실이 소속된 DX 부문은 기존 사업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생산라인을 재편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습니다. 

전사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에서도 진통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삼성전자 내부에는 이미 DX부문 산하의 이노X랩, AI 생산성 혁신 그룹 등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제조 현장의 자동화와 휴머노이드 적용을 연구해 온 조직입니다. 계열사인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존재도 남습니다. 

DS부문에도 공정 자동화와 스마트팩토리를 담당하는 별도의 조직이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RX사업추진실 신설을 발표하며 전사적 로봇 역량을 결집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어느 조직의 권한과 인력을 어디까지 통합할지는 민감한 문제입니다.

향후 독립법인 출범까지 이어진다면 직원들의 소속 변경과 처우 문제도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큽니다. 과거 삼성디스플레이 등 내부 조직을 분사시킬 때도 삼성전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데 대한 직원들의 반발이 컸습니다. 당시에는 본사와 유사한 보상과 복지를 약속하며 갈등을 줄였지만, 지금은 제도 변화로 인해 허들이 더 높아졌죠. 신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과거에 비해 여러모로 난이도가 올라간 상황입니다.

삼성전자는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영역에 자본과 인력을 빠르게 집중합니다. 모바일과 반도체에서 그랬듯, 한번 방향을 정하면 속도전과 규모의 경제로 시장을 압박합니다. 반대로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사업을 냉정하게 접거나 축소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야성은 삼성 신사업의 가장 큰 힘이지만, 동시에 리스크이기도 합니다.

한 로봇업계 관계자는 "로봇은 하드웨어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데이터가 함께 축적되면서 반복 검증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한 산업"이라며 "적자를 내는 사업부를 몇년간 기다려줄 대기업이 어디 있겠나. 삼성은 특히나 사업부의 성과를 2년 넘게 기다려준 케이스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사업 모델에 대해 우려를 표했습니다. 

결국 사업성이 당장 숫자로 보이지 않는 구간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실패한 프로젝트를 곧바로 접기보다 다음 실증으로 이어갈 수 있는지, 내부 조직 간 이해관계를 넘어 전사 역량을 실제로 결집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피지컬AI가 한국 산업의 다음 축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번만큼은 삼성전자가 조금 더 길게 보고 제대로 판을 키워주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