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금융지주 여성 회장 '전무'…승계 파이프라인 막힌 유리천장, 왜?

KB·신한·하나·우리 4대 금융지주, 여성 지주 회장 전례 없어 5대 금융지주 계열사 CEO 62명 중 여성은 4명…비율 6.4% 부회장·행장 등 승계 핵심 라인에 여성 후보군 자체가 부족 해외는 산탄데르·시티그룹 등 여성 수장 잇따라 배출

2026-08-07     박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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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경제신문 = 박지안 기자] 국내 4대 금융지주에서 여성 회장이 선출된 사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금융권은 여성 직원 비중이 높은 산업으로 꼽히지만 회장 후보군이 형성되는 부회장·행장·핵심 C레벨로 갈수록 여성 인력이 크게 줄어드는 승계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여성 리더 육성 프로그램이 확대되고 있지만 승계 파이프라인 자체가 얇아 단기간 내 변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성 회장 0명'이 보여주는 현실

실제 경영진 구성에서도 여성 비중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5대 금융지주(농협 포함) 계열사 CEO 62명 가운데 여성은 4명(6.4%)에 그친다. 4대 금융지주 전체 임원 1041명 중 여성은 97명(9.1%)이었으며 제2금융권까지 포함한 여성 임원 비율도 8.9% 수준에 머물렀다. 채용 단계에서는 성별 격차가 크지 않지만 임원으로 올라갈수록 여성 비중이 급격히 낮아지는 전형적인 '유리천장'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승계 라인에 여성 후보군이 부족

문제는 여성 임원 수보다 회장 후보군이 형성되는 핵심 승계 라인에 여성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4대 금융지주와 은행의 부행장급 인사를 보면 전체 63명 가운데 여성은 7명에 불과하다. 제2금융권 유리천장 실태조사에서도 여성 임원 비율은 지난 10년간 4.4%에서 8.9%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고 핵심 직무는 여전히 남성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금융권 종사자들은 설문조사에서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와 핵심 보직 기회 부족, 장시간 근무 관행 등을 금융권 유리천장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금융경제연구소 현은주 연구위원의 '금융권 노동시장 성평등에 관한 연구 - 은행권을 중심으로'(금융정책연구 2021-04)에 따르면 금융업은 남녀 고용과 근속 측면에서는 다른 산업보다 성평등 수준이 높은 편이지만, 관리직으로 승진할수록 여성 비중이 급격히 낮아지는 '이중 유리천장(double glass ceiling)' 구조가 나타난다. 특히 여성 임원 비율은 0.003% 수준에 그쳤으며, 지점장과 본부장, 임원 등 상위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여성 대표성이 크게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여성 은행장은 나왔지만 지주 회장으로는 이어지지 못해

국내에서도 여성 최고경영자 사례는 꾸준히 나왔다.

2013년 권선주 전 IBK기업은행장이 국내 첫 여성 은행장에 올랐다. 그는 1978년 산업은행 입사를 시작으로 30년 넘게 리스크·중소기업금융을 거친 뒤 국책은행 수장에 오른 인물로, “여성도 은행을 이끌 수 있다”는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2020년에는 유명순 전 한국씨티은행장이 국내 민간 시중은행 최초 여성 행장으로 선임되면서, 외국계 민간은행 영역에서 두 번째 여성 은행장이 탄생했다. 이후 강신숙 수협은행장도 취임해 여성 은행장 계보를 이었다.

증권과 디지털 계열에서는 KB증권 박정림 전 대표, 신한DS 조경선 전 대표 등 여성 CEO가 배출됐다. 박 전 대표는 대형 증권사 여성 CEO로서 KB금융그룹 내 차기 리더십 후보군으로 여러 차례 거론됐고 조 전 대표는 신한금융 최초의 여성 계열사 CEO로 디지털·IT를 총괄하며 여성 리더의 상징으로 꼽힌다.

다만 이 같은 여성 CEO·행장 사례가 아직까지 금융지주 회장으로 이어진 적은 없다.

업계 관계자는 “여성에게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회장 승계 라인(부회장·행장·핵심 C레벨)에 여성 후보군 자체가 얇게 쌓여온 구조적 문제”라고 말했다.

해외는 여성 리더가 승계 구조 안에 자리 잡아

반면 유럽과 미국에서는 여성 최고경영자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스페인 방코 산탄데르는 2014년 아나 보틴을 이그제큐티브 체어(Executive Chair)로 선임해 유럽 대형 금융지주 가운데 대표적인 여성 회장 사례로 꼽힌다. 산탄데르는 이사회 여성 비율을 40% 안팎까지 끌어올리고 핵심 사업부에 여성 임원을 전진 배치하는 등 이사회·경영진 단계에서 다양성을 제도화해 왔다.

독일 코메르츠방크는 2024년 CFO였던 베티나 오를롭을 CEO로 선임하며 창립 150년이 넘는 역사에서 첫 여성 CEO를 배출했다. 브라질 방코두브라질(Banco do Brasil) 역시 2023년 타르시아나 메데이루스를 214년 역사상 첫 여성 CEO로 임명했다. 미국 시티그룹은 2021년 제인 프레이저를 CEO로 선임해 메이저 월가 은행 가운데 최초로 여성 CEO를 배출했다.

MSCI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대형·중형 상장사의 여성 CEO 비율은 15~19% 수준으로 추산된다. 유럽은행감독청(EBA)은 EU 금융기관의 여성 CEO 비율을 12.4%, 여성 이사회 의장 비율을 13.5%로 집계했다. 글로벌 평균 역시 높지는 않지만 여성 최고경영자가 지속적으로 배출되는 승계 구조가 자리 잡았다는 점은 국내와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금융지주 회장단 여성 비율은 여전히 ‘0%’이고, 계열사 CEO 중 여성 비중도 6%대에 그치는 상황이다.

해외는 목표·공시, 국내는 권고 수준

영국과 유럽은 금융권 유리천장 해소를 위해 ‘목표·공시·규제’를 제도화하고 있다.

영국은 2016년 도입한 ‘위민 인 파이낸스 헌장(Women in Finance Charter)’을 통해 금융회사가 스스로 여성 리더(임원·관리자) 비율 목표를 설정하고 매년 성과를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기관은 그 사유를 설명해야 하고, 영국 재무부와 민간이 함께 10년 단위 리뷰를 통해 성과를 점검한다. HSBC·Barclays·Lloyds·NatWest 등 주요 은행 대부분이 헌장에 서명해 여성 임원·관리자 비율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왔다.

EU는 이사회 성별 균형 지침과 일부 회원국의 여성 이사 할당제를 통해 여성 리더 확대를 추진해 왔다. 프랑스 등은 일정 규모 상장사의 이사회에서 여성 비율을 의무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 확보하도록 법제화했고, 금융기관도 이 규제의 적용 대상이다. MSCI와 EBA는 각국 금융기관의 이사회·경영진 성별 구성을 벤치마킹해 공시하고, 감독당국과 투자자는 이를 지배구조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금융감독원은 2023년 '은행지주·은행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통해 이사회 성별 다양성 목표 설정과 승계계획 반영을 “권고”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특정 성별만으로 이사회를 구성할 수 없게 되면서 5대 금융지주의 여성 사외이사 비율은 30%를 넘어섰지만 여성 경영진 확대를 의무화하는 구체적인 목표나 미달 시 제재 규정은 없다.

여성 리더 육성 확대…승계 파이프라인은 과제

금융지주들은 여성 리더 육성 프로그램도 확대하고 있다.

KB금융은 'KB 다이버시티 2027(KB Diversity 2027)'를 통해 여성 임원 비율을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늘리고 기업금융 부문까지 여성 리더를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신한금융은 2018년 국내 금융권 최초의 여성 리더 육성 프로그램 ‘신한 쉬어로즈(Shinhan SHEroes)’를 출범시켜 교육·멘토링을 거친 여성 리더들을 HR·영업·전략 등 핵심 부서에 전진 배치하고 있다. 하나금융 역시 ‘Hana Waves’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차세대 여성 리더를 발굴·육성하고 2030년까지 여성 관리자 비율을 3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농협금융도 여성 RM·팀장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금융 등 남성 위주였던 분야에 여성 리더를 늘리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여성 리더 육성 프로그램이 실제 성과를 내려면 핵심 보직 경험을 확대하고 회장·행장 후보군을 꾸준히 확보할 수 있는 승계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사외이사와 교육 프로그램으로 ‘숫자’를 맞추는 것만으로는 유리천장이 깨지지 않는다”며 “부회장·행장·핵심 C레벨에 여성 후보를 실제로 올리고, 이들을 장기간 성과로 평가하는 승계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