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지분 대신 펀드로"…KB금융, 1000억 디지털자산 우회 베팅

코인원·코빗·업비트는 이미 지분 정리 끝나 선택지 좁아진 영향 신한·우리·농협도 펀드·기술제휴로 우회 투자 확산

2026-08-06     박금재 기자
[사진=KB금융지주]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인수전에서 한 발 물러서 있던 KB금융이 별도의 우회 투자 카드를 꺼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은 지난달 KB국민은행·KB증권·KB손해보험·KB국민카드·KB라이프생명 등 5개 계열사가 출자자(LP)로 참여하고 KB인베스트먼트가 운용(GP)을 맡는 1000억원 규모의 '케이비 AX디지털자산 펀드'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특정 거래소에 지분을 얹는 대신, 디지털자산·인공지능(AI) 생태계 전반의 유망 기업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배경에는 국내 원화 거래소 지분 지도가 이미 빠르게 정리됐다는 사정이 있다.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지난달 22일 한국투자증권과 OKX벤처스의 코인원 대주주 변경 신고를 수리했다. 두 회사는 각각 지분 약 20%를 확보했다. 코빗은 미래에셋그룹이 비금융 계열사 미래에셋컨설팅을 통해 지분 97.15%를 인수하며 사실상 완전 편입시켰다.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에는 하나은행이 지분 6.55%를 확보하기로 했고, 한화투자증권도 추가 투자로 지분율을 9.84%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여기에 삼성증권·삼성SDS·삼성카드 등 삼성그룹 계열사도 두나무 지분 4%를 취득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국내 5대 원화마켓 거래소 가운데 금융·플랫폼 기업과 신규 지분 제휴를 맺지 않은 대형 거래소는 사실상 빗썸이 유일하게 남은 상태다. KB국민은행이 빗썸의 실명계좌 제휴 은행이긴 하지만, 이는 계좌 서비스 제공 관계일 뿐 지분 투자와는 별개다.

거래소 지분 확보 선택지가 좁아지면서, KB금융처럼 지분 관계가 없는 금융그룹들은 펀드·기술 제휴 등 우회 전략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신한금융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신한투자증권과 신한벤처투자는 지난달 27일 기관용 블록체인 캔톤 네트워크 운영사 디지털에셋의 3억5500만달러(약 5200억원) 규모 투자 라운드에 공동 투자했다. 이 라운드는 미국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크립토 전문 펀드 a16z crypto가 주도했다. 앞서 지난 6월 신한투자증권·신한자산운용이 디지털에셋과 토큰화 분야 업무협약을 맺은 데 이어 직접 투자로 협력 범위를 넓힌 것이다. 우리은행은 글로벌 디지털자산 인프라 기업 문페이와 원화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조성을 위한 협력에 나섰고, NH농협은행도 NHN KCP와 스테이블코인 결제·정산 구조를 공동 설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제 경쟁의 축이 거래소 지분 확보 자체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토큰증권(STO), 실물연계자산(RWA)의 발행·유통망 선점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가상자산 2단계 입법 과정에서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이 논의되고 있는 점은 변수로 남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은 거래소 지분을 얼마나 확보했느냐보다 규제가 정비된 뒤 어떤 서비스를 실제로 붙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스테이블코인과 STO, 수탁 등에서 고객 접점을 먼저 만든 금융사가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KB금융의 '케이비 AX디지털자산 펀드'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특정 거래소 베팅에 따르는 리스크 없이 생태계 전반의 성장 기업을 선점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