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투자부적합’은 외신의 판정인가…국민연금 책임론, 수급은 달랐다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 원문에 “필자 개인 견해” 명시 국내 보도에선 ‘외신의 한국시장 평가’처럼 제목 확산 국민연금 목표비중 상향은 신규 매수보다 강제매도 완화 성격 레버리지 ETF 감독 책임과 연금의 장기 자산배분은 구분해야
[녹색경제신문 = 한순구 기자]
“한국이 중국처럼 투자하기 어려운 시장이 되고 있다”는 블룸버그 칼럼이 국내 증시에서 논쟁을 낳고 있다.
일부 국내 언론은 이를 “외신이 한국을 투자부적합 국가로 평가했다”, “블룸버그가 한국 정부를 직격했다”는 제목으로 전했다. 개인투자자 사이에서도 해외 유력 매체가 한국 정부와 국민연금의 책임을 확인했다는 식의 해석이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원문은 블룸버그의 취재보도나 편집위원회 명의의 사설, 신용평가사 또는 글로벌 투자기관의 공식 평가가 아니다. 아시아 시장을 담당하는 슐리 렌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가 작성한 개인 칼럼이다.
칼럼이 제기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의 위험과 금융당국의 감독 문제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개인 칼럼의 문제 제기를 ‘해외 금융시장의 공식 판정’으로 확대하고, 국민연금이 코스피 과열을 만들었다는 결론까지 연결하려면 실제 매매자료와 가격 충격에 대한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문은 ‘블룸버그 평가’ 아닌 오피니언 칼럼
렌 칼럼니스트는 지난 3일 ‘한국도 투자하기 어려운 시장이 되고 있다’는 제목의 글에서 최근 코스피 변동성을 2015년 중국 증시 폭락과 비교했다.
그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움직임을 증폭했고, 정부의 뒤늦은 규제가 신규 개인투자자에게 큰 손실을 안겼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높여 상승장에서 매도하지 않은 것도 시장 과열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원문 하단에는 해당 칼럼이 저자의 개인 견해이며 블룸버그 편집위원회나 블룸버그 법인과 소유주의 의견을 반드시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명시돼 있다. 렌은 블룸버그 오피니언 소속 칼럼니스트로 소개돼 있다.
이는 칼럼의 내용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한 블룸버그 칼럼니스트의 진단’과 ‘블룸버그 또는 해외 기관투자자의 공통된 평가’는 다른 개념이다.
실제 국내 보도 가운데는 “외신이 한국을 투자부적합 국가로 평가했다”거나 “블룸버그가 직격했다”는 표현을 사용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일부 기사는 원문이 오피니언이라는 점을 본문에서 설명했지만, 제목에서는 블룸버그 전체의 평가처럼 읽힐 수 있는 표현을 사용했다.
금융시장 관계자는 “칼럼과 기관의 공식 리서치, 신용평가사의 등급 조정은 시장에 미치는 의미가 서로 다르다”며 “누가 말했다는 사실보다 어떤 거래자료와 분석으로 결론을 뒷받침했는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목표비중 상향, 신규 매수 지시 아니었다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높여 코스피 과열을 부추겼다는 주장도 자산배분 결정의 배경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5월 올해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14.9%에서 20.8%로 상향했다. 그러나 당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은 주가 상승에 따른 평가액 증가로 이미 목표치를 크게 웃돌고 있었다.
올해 2월 말 국내주식 투자액은 395조1000억원으로 전체 기금의 24.5%를 차지했다. 상향된 목표비중 20.8%보다도 높은 수준이었다. 목표비중 조정은 신규 주식을 공격적으로 매수하기 위한 결정이라기보다 기존 기준에 따른 대규모 리밸런싱 매도 부담을 낮추는 성격이 강했다.
기금위도 국내주식 비중의 실제 확대 상황과 장기 수익성·안정성을 고려하고, 리밸런싱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목표비중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하루 최대 리밸런싱 규모도 축소했다.
목표비중 상향을 두고 연금의 전통적인 저가 매수·고가 매도 기능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은 가능하다. 그러나 목표비중을 높인 것과 국민연금이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순매수해 주가를 끌어올린 것은 동일한 행위가 아니다.
국민연금이 코스피 광풍을 만들었다고 평가하려면 결정 전후의 국내주식 순매수 규모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매매 내역, 국민연금 주문이 가격과 거래량에 미친 영향이 제시돼야 한다. 블룸버그 칼럼에는 국민연금의 실제 종목별 거래자료나 가격 충격 분석은 포함되지 않았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목표비중 조정에 대해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을 더 사겠다는 의미라기보다 이미 높아진 비중을 시장 충격 없이 관리하기 위한 조치로 보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변동성 직접 변수는 반도체 편중과 레버리지 청산
최근 코스피 변동성을 설명하는 보다 직접적인 변수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편중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리밸런싱 거래가 꼽힌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코스피 일간 수익률 변동성은 3.6%로 지난해 1.4%보다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지수 영향력 확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주의 변동성 증가, 유가·금리·환율 움직임과 투자자별 수급 충돌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역시 변동성을 키운 요인으로 평가됐다. 레버리지 ETF 운용사는 기초주식의 하루 수익률을 일정 배수로 추종하기 위해 주가가 상승하면 추가로 사고, 하락하면 매도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이러한 리밸런싱 거래가 주가 변동성을 추가로 확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마이크론 등 해외 반도체주의 변동성도 크게 높아졌고 거시환경 변화가 함께 작용한 만큼, 단일종목 ETF 하나로 시장 급변의 원인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고 봤다.
해외 기관투자자들의 평가도 ‘한국은 투자부적합 시장’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로이터가 접촉한 일부 글로벌 투자자들은 최근 한국 증시 하락을 기업 실적 훼손보다 레버리지 포지션 청산에 따른 기술적 충격으로 평가했다. JP모건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와 헤지펀드의 디레버리징이 상당 부분 진행됐다고 분석했고, 일부 기관투자자는 급락 이후 한국 주식의 매수 기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해외 금융시장 안에서도 한국 증시를 정책 실패로 인한 투자 기피 대상으로 보는 의견과, 레버리지 청산 이후 펀더멘털을 다시 평가하려는 시각이 함께 존재하는 셈이다.
정책 실패 책임은 ETF 감독에서 따져야
정부와 금융당국의 책임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도입된 뒤 거래와 투자자 손실이 급증하자 경제부총리와 금융위원장은 상품 도입 과정이 충분히 신중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정부는 신규 상품 상장 제한과 예탁금 상향, 개인별 투자 한도 등 추가 규제에 나섰다.
금융당국이 상품 출시 전에 시장 충격과 개인투자자의 위험 감내 능력을 충분히 검토했는지, 위험 고지와 판매 규제가 적절했는지는 별도로 점검해야 할 사안이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면 해외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위험 프리미엄도 높아질 수 있다.
다만 금융상품 감독 실패와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문제는 책임의 성격이 다르다.
국민연금은 수익성과 안정성, 공공성, 유동성, 지속가능성, 운용 독립성을 기금운용 원칙으로 삼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지만, 다른 목적을 위해 장기 수익성과 안정성을 훼손해서도 안 된다.
급락할 때마다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을 매수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면 투자자들이 레버리지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승기 수익은 투자자에게 돌아가고 하락기 위험은 연금 가입자의 자금으로 흡수되는 구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신이 말했다’보다 실제 거래자료가 우선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이 제기한 정부의 레버리지 ETF 감독 실패와 개인투자자 보호 문제는 정책당국이 검토해야 할 지적이다.
그러나 이를 ‘해외 언론이 한국을 중국과 같은 투자부적합 국가로 판정했다’거나 ‘국민연금이 코스피 과열의 주범임을 확인했다’는 의미로 확대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원문은 한 칼럼니스트의 개인 견해이고, 국민연금 목표비중 상향은 이미 높아진 국내주식 비중을 반영해 기계적인 매도 부담을 완화한 조치였다. 최근 증시의 실제 가격 변동에는 글로벌 반도체 업황과 대형주 편중, 레버리지 청산, 외국인 현·선물 수급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금융권에서는 해외 매체의 명성보다 주장의 성격과 근거를 구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오피니언 칼럼과 공식 기관평가, 정책당국의 책임과 국민연금의 운용 책임을 구분하지 않으면 시장 위험에 대한 진단도 정치적 공방에 머물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