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13년 만에 실물 금 매입 재개...국내 수출물량 원화로 산다
LS MnM·거래소·예결원과 협력...국내 생산 금 매입 통로 마련 수출 예정 물량만 협의대량매매...국내 수급·가격 영향 최소화 국내 업체 2곳 연 40~45톤 생산·4~5톤 수출...매입 시기·규모 미정 보유 금 104.4톤·외환보유액의 3.5%...세계 중앙은행 중 39위 지정학적 위험·금값 하락에 신중론 선회...2분기 금 ETF 투자
[녹색경제신문 = 이준성 기자] 한국은행이 13년 만에 실물 금 매입을 재개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국내 업체가 해외로 내보낼 물량을 원화로 사들이는 새 경로를 마련해 금 매입 방식과 보관 장소를 다변화한다. 실제 매입 시기와 규모는 미정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외환보유액 내 금 비중을 확대할 기반을 구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 <녹색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한은은 국내 금 생산업체인 LS MnM과 한국거래소(KRX), 한국예탁결제원(KSD) 등과 국내 생산 금 매입을 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한은이 실물 금 매입에 나서는 것은 2013년 이후 처음이다.
새로운 매입 방식에는 KRX의 기존 거래·결제 인프라와 예탁결제원이 마련 중인 보관 인프라가 활용된다. LS MnM과 고려아연 등이 구리·아연 제련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산한 금 가운데 국내에서 소비되지 않고 수출될 물량이 대상이다. 두 업체는 연간 40~45톤을 생산해 이 중 약 10%인 4~5톤을 수출해왔다.
생산업체가 국내외 시세를 살펴 거래 가능한 물량과 희망 시기를 제시하면 한은이 금 운용계획과 시장 상황 등을 종합해 매입 여부를 판단한다. 수출 예정 물량만 사들이는 만큼 국내 금시장에 추가 수요를 만들지 않아 수급과 가격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거래는 KRX 금시장의 장내 일반매매가 아닌 협의대량매매 방식으로 이뤄진다. 당사자들이 가격과 수량을 미리 합의해 장내 호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국제 금 시세를 기준으로 원화로 매입한다는 점도 해외에서 미 달러화로 거래했던 종전 방식과 다르다. 한은은 환헤지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실제 매입 시기와 물량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한은은 "국내 생산 금에 대한 실제 매입 시기는 금 거래 관련 제반 준비 사항, 금 생산업체의 수출 계획 및 한은의 금 운용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금 보관처를 분산할 수 있다는 점도 이번 협력체계 구축의 배경이다. 현재 한은이 보유한 금은 대부분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금고에 보관돼 있다. 국내 보관 비중을 늘리면 보관 장소를 다변화해 지정학적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
세계금위원회에 따르면 한은의 금 보유량은 지난달 기준 104.4톤으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ECB)을 제외한 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39위다. 한은은 2011년 40톤, 2012년 30톤, 2013년 20톤을 잇달아 사들인 뒤 13년간 보유량을 늘리지 않았다.
이에 따라 금 보유량 순위는 2013년 말 32위에서 지난해 말 39위로 낮아졌다. 전체 외환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3.5%로 일본의 9.5%보다 낮다.
한은은 그동안 금이 주식이나 채권보다 유동성이 낮고 가격 변동성이 큰 데다 이자나 배당이 없고 보관 비용까지 든다는 이유로 추가 매입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지정학적 위험이 상시화하고 최근 금값이 하락하면서 매입 필요성과 여건이 달라졌다고 판단했다.
이창헌 한은 외자운용원 운용기획팀장은 "최근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로 금과 같은 안전자산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대됐다"며 "다른 나라에 비해 외환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고, 최근 들어 금값이 하락하면서 매입 부담이 완화됐다"고 전했다.
한은은 올해 2분기부터 해외 상장 금 ETF에도 소규모 투자를 시작했다. 다만 금 ETF는 유가증권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외환보유액 통계상 금 보유량이나 비중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한은은 국내 생산 금 외의 다른 금 매입 경로도 계속 열어둔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