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 로봇 피벗] '감속기 병목' 돌파 에스피지… 탄탄한 본업에 업사이드 더했다
'감속기 전 라인업 양산' 무기로 독점력 확보…협업 문의 쇄도 美 중국 규제에 로보티즈·삼현 등 피지컬AI 밸류체인 동반 강세
[편집자주] 글로벌 시장이 한국을 로보틱스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주목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감속기·서보모터·제어기 등 공급망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국내 전통 제조업 강자들이 수십 년간 축적한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산업용 로봇과 휴머노이드 부품 시장에 본격 진입하고 있다. 각 기업들이 로봇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 어떤 전략을 펼치고 있는지 살펴본다.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국내 정밀감속기 기업 에스피지가 국내 휴머노이드 산업의 핵심 밸류체인 기업으로 부상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3일 에스피지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14% 이상 오른 10만8000원대에 거래됐다. 장중 한때 11만5000원까지 오르며 상승률이 21%를 넘어서기도 했다. 거래대금도 2800억원을 넘어서며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양상이다.
에스피지는 그동안 일본 업체 의존도가 높았던 로봇용 감속기 시장에서 하모닉 감속기부터 사이클로이드형 감속기까지 전 라인업을 국산화하며 국내 로봇업계 공급망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3일 로봇 업계에 따르면 기존 산업용 기어드 모터 사업을 영위하던 에스피지는 로봇용 감속기와 신형 액추에이터 제품군을 개발해 본격 양산 단계에 진입했다.
에스피지는 현재 하모닉 감속기부터 사이클로이드 감속기까지 로봇용 전 라인업을 생산하고 있으며 국내 주요 로보틱스 기업들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로봇 부품 생태계에서 정밀 감속기가 병목으로 지목되는만큼 선제적으로 개발에 성공한 에스피지에 PoC 문의가 몰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에스피지는 국내에서 로봇용 감속기 전 스펙트럼을 생산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업으로 꼽힌다. 회사는 하모닉 방식의 KSH 로봇감속기와 사이클로이드 방식의 KSR 산업용 로봇감속기, 정밀 유성감속기 등을 모두 제품군으로 확보하고 있다.
에스피지 관계자는 “정밀 감속기의 국산화율이 낮다는 보도가 나오는 이유는 양산 가능한 수준의 품질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모터나 감속기를 만든다고 하는 기업들은 많지만 실제 양산과 상용화 단계까지 도달한 곳은 에스피지가 거의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어 “품질만 확보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같은 한국 기업과 협업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며 “해외 제품보다 단가 조정이 유연하고 고객 요구에 맞춰 모양이나 출력 강도 등을 미세하게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기 때문에 국산화만 된다면 국내 제품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에스피지는 본래 공장자동화와 가전·사무기기 등에 들어가는 소형 정밀모터와 기어드모터를 생산해 온 기업이다. 1991년 정밀제어용 기어드모터 업체로 설립됐으며, 현재 표준 AC·DC·BLDC 기어드모터와 산업용 모터, 송풍기, 감속기 등 약 900개 기종의 다품종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기존 기어드모터와 가전용 팬모터 사업이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제공하고, 이를 토대로 로봇 부품 연구개발과 생산설비 투자를 확대하는 구조다.
최근 실적은 매출 감소에도 수익성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에스피지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3417억원, 영업이익 17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보다 12.0%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45.4% 증가했으며, 영업이익률도 2024년 3.2%에서 지난해 5.3%로 높아졌다.
올해 1분기에는 매출 808억원, 영업이익 4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3.4%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9.7% 증가했다. 저마진 제품 매출을 줄이고 고부가가치 모터와 감속기 중심으로 제품 구성을 개선한 데다 원가 절감 효과가 더해지면서 외형 감소에도 수익성이 개선된 것으로 분석된다.
기존 주력 사업인 산업용 모터와 감속기도 안정적인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는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의 웨이퍼 이송 설비에 들어가는 모듈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에스피지 관계자는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제품은 웨이퍼를 이송하는 천장부 컨베이어 시스템에 들어가는 모듈 부품”이라며 “최근 삼성전자가 용인 등 신규 생산 거점 투자를 확대하면서 관련 수주도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에스피지가 기존 산업용 모터 사업의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유지하는 가운데 로봇용 감속기 매출이 확대되면서 실적과 기업가치가 동시에 재평가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휴머노이드와 4족보행 로봇 양산이 늘어날수록 로봇 한 대에 다수의 모터와 감속기가 탑재되는 만큼 완성 로봇 생산량보다 부품 수요가 더 가파르게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3일 에스피지 외에도 국내 로봇 핵심 밸류체인 기업들이 동반 강세를 보였다. 로봇용 액추에이터와 감속기를 생산하는 로보티즈는 전 거래일보다 17.52% 오른 21만6000원에 거래됐으며 장중에는 상승률이 24%를 넘어서기도 했다.
모터·제어기·감속기를 통합한 스마트 액추에이터를 생산하는 삼현은 6.37% 상승했으며 장중 최고 상승률은 약 14%에 달했다. 자동차 조향·제동 기술을 바탕으로 로봇 액추에이터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HL만도도 5% 가량 올랐고, 장중 한때 약 9%까지 상승폭을 키웠다.
국내 로봇 관련주들이 일제히 강세를 보이는 주요 배경으로는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외국산 첨단 로봇 규제가 꼽힌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국가안보와 개인정보 유출 우려 등을 이유로 신규 외국산 휴머노이드와 4족보행 로봇 등에 대한 장비 인증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놨다.
기존 인증을 받은 제품은 당장 판매할 수 있지만, 앞으로 해외에서 생산되는 신규 모델은 미국 시장 진입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특히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 업체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 하원을 통과한 국방수권법안에도 중국산 로봇의 안보 위험을 평가하고 추가 규제 필요성을 검토하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 내 로봇 생산 확대와 중국산 부품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경우 감속기와 액추에이터 등 핵심 부품의 공급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국내 증시를 주도했던 반도체 종목들이 조정을 받으면서 로봇과 자동화 관련주로 순환매가 유입된 점도 상승세에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