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실트론, 재무적 부담이 매각 변수로…슈퍼사이클 기대감과 충돌
AI 전략 자산이지만 재무구조 악화가 매각 허들 실적 회복 기대감·SiC 웨이퍼 사업 부담 등 변수
[녹색경제신문 = 정창현 기자] 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의 매각을 추진해 온 SK그룹이 이달 내로 매각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그룹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리밸런싱과 AI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따른 기업가치 상승 기대가 맞서는 가운데, SK실트론의 재무적 부담 요소가 최종 판단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SK㈜가 오는 31일 이사회를 열고 SK실트론 매각 여부를 검토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리밸런싱을 이어가기 위해 매각이 필요하다는 시각과 AI 시대 핵심 소재 계열사를 지금 처분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우려가 맞서고 있다. 결국 현재 재무상태와 향후 기업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이사회의 판단 기준이 될 전망이다.
SK실트론 매각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SK그룹의 리밸런싱이다. SK그룹은 지난해부터 비핵심 자산을 정리하며 재무구조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러한 작업의 영향으로 SK㈜의 올해 1분기 부채비율은 기존 172.8%에서 135.7%까지 낮아졌다. SK실트론 역시 이러한 포트폴리오 재편의 연장선에서 매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다만 매각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업계 내에서 제시된다. 웨이퍼는 AI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생산의 핵심 소재다. AI 투자 확대가 본격화되면서 장기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AI를 그룹의 핵심 성장축으로 제시한 상황에서 핵심 소재 계열사를 매각하는 것이 그룹 전략과 배치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향후 웨이퍼 수요 확대가 본격화되면 기업가치가 지금보다 높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SK실트론의 재무상태는 매각 여부와 가격을 결정할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우선 최근 실적만 놓고 보면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수혜는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SK실트론의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4534억원, 영업이익은 88억원이다. 영업이익률은 1.9%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영업이익은 77% 감소했고 순이익도 224억원 흑자에서 82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다만 이를 단순히 업황 부진으로 보기는 어렵다. 실리콘 웨이퍼 가동률은 2023년 83.1%에서 지난해 91.3%, 올해 1분기에는 98.0%까지 올라 사실상 풀가동 상태를 기록했다. 공장을 거의 쉬지 않고 돌렸다는 점에서 생산량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던 셈이다.
이는 웨이퍼 산업 특유의 업황 시차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모리 업체들은 기존 웨이퍼 재고를 먼저 소진한 뒤 신규 주문을 늘리기 때문에 웨이퍼 업체 실적은 통상 메모리 업황보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늦게 개선된다. AI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시작됐더라도 그 효과가 아직 SK실트론의 손익계산서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실적이 개선되기 시작하면 기업가치도 지금보다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인수자가 매각과 동시에 떠안아야 하는 부담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SiC(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 사업이다. 별도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SK실트론의 영업이익은 4073억원이었지만, 미국 자회사 등을 포함한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1931억원으로 줄어든다. SiC 웨이퍼 사업을 하는 미국 자회사 ‘SK Siltron USA’가 2144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연결 실적을 끌어내린 탓이다.
SiC 웨이퍼는 전기차용 전력반도체 시장이 주력이다. 최근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다.
SK실트론은 지난해 이 사업에 대해 4141억원의 손상차손을 인식했다. 손상차손은 앞으로 예상했던 만큼 현금을 벌어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해 자산 가치를 낮춰 반영하는 회계 처리다. 지난해 사업보고서에서는 "SiC Wafer 관련부문 현금창출단위의 영업손익이 예상 수준에 미치지 못하여 손상 인식을 검토했다"고 명시했다. 특히 손상액 가운데 3344억원은 영업권으로, 과거 인수 당시 지급했던 프리미엄 상당 부분을 회수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관련 부채도 있다. 올해 3월 말 기준 SK실트론이 미국 SiC 법인들에 제공한 채무보증 잔액은 4억5700만 달러다. 자회사가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SK실트론이 대신 갚아야 하는 돈이다. 이 가운데 미국 에너지부와 연방금융은행 시설투자 관련 보증은 한도 6억5300만 달러 규모로 2035년까지 유지된다. 인수자 입장에서는 장기간 이어질 보증 의무도 함께 승계해야 하는 셈이다.
SK실트론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189.4%에서 올해 3월 말 219.9%로 상승했다. 순차입금은 2조6088억원이다. 특히 1년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사채와 차입금은 1조7728억원으로 직전 결산기(9143억원)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반면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은 4614억원에 그쳤다. 부족한 자금은 차환하거나 영업현금흐름으로 충당해야 하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결국 이번 이사회의 판단이 '미래 기업가치를 보고 기다릴 것인가, 현재 재무 부담을 줄이는 데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AI 반도체 투자 확대를 감안하면 실리콘 웨이퍼 사업의 장기 성장성은 분명하지만, 현재는 메모리 호황이 웨이퍼 업체 실적으로 완전히 이어지지 않은 과도기"라며 "반면 SiC 사업 부담과 채무보증, 차입금 등은 지금도 존재하는 리스크인 만큼 SK그룹 입장에서는 미래 가치와 현재 재무 부담 사이에서 어떤 선택이 그룹 전체에 유리한지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