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락일 연기금은 744억 샀다…‘국민연금 책임론’ 당일 수급과 엇갈려
외국인도 코스피 5236억원 순매수…기관 매도는 금융투자·사모·투신에 집중 삼성전자·SK하이닉스 외국인 저가매수에도 지수 4.46% 급락 이튿날 프로그램 4933억원 매수에 코스피 반등…하락 종목은 더 많아 국민연금 일별 거래는 별도 공개 안 돼…누적 리밸런싱 영향은 추가 검증 필요
[녹색경제신문 = 한순구 기자]
최근 국내 증시 급락의 주요 원인으로 국민연금의 리밸런싱과 외국인 현물 매도가 지목되고 있지만, 급락 당일 공개된 투자자별 수급은 이 같은 주장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코스피가 4.46% 하락한 지난 20일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5236억원을 순매수했다. 기관은 9218억원을 순매도했지만 기관 내에서도 금융투자가 4892억원, 사모펀드가 2901억원, 투신이 2695억원을 각각 순매도한 반면 국민연금이 포함된 ‘연기금 등’은 744억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이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각각 2750억원과 6120억원 순매수했다. 두 종목은 각각 4.31%, 4.23% 하락했지만, 최소한 이날 종가 기준으로는 외국인이 반도체 현물을 대거 처분해 하락 방향을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급이다.
기관은 팔았지만 연기금은 매수
기관 전체 순매도와 국민연금 매매를 동일시하기 어렵다는 점도 확인됐다.
거래소가 제공하는 ‘연기금 등’ 분류에는 국민연금뿐 아니라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각종 공제회 등이 함께 포함된다. 연기금 전체가 744억원을 순매수했다고 해서 국민연금도 반드시 순매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기관이 9218억원을 순매도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국민연금의 리밸런싱 물량으로 해석하는 것도 근거가 부족하다. 당일 공개된 세부 수급에서는 금융투자와 사모펀드, 투신의 매도 규모가 두드러졌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올해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14.9%에서 20.8%로 높인 점도 고려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목표 비중 조정의 목적 가운데 하나로 리밸런싱에 따른 시장 영향을 완화하는 것을 명시했다. 기존 목표 비중을 그대로 유지했을 때보다 기계적인 강제 매도 부담이 줄어든 셈이다.
다만 상반기 리밸런싱 유예가 하반기 매도 수요를 키웠는지, 국민연금이 개별 거래일에 어느 정도 물량을 조정했는지는 공개된 자료만으로 확인할 수 없다. 국민연금 책임론뿐 아니라 국민연금이 시장 하락과 무관하다는 주장 역시 현재로서는 완전히 입증되지 않은 상태다.
美 반도체는 0.6% 반등…국내는 대형주·프로그램 중심
간밤 미국 반도체주의 반등도 제한적이었다.
20일 현지시간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장중 3% 넘게 올랐다가 0.60% 상승으로 거래를 마쳤다. 엔비디아는 0.27%, 마이크론은 1.99%, 반도체 3배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인 SOXL은 0.86% 올랐다. 다우지수는 0.59%,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0.19%, 나스닥지수는 0.05% 각각 하락했다.
미국 반도체주가 소폭 반등하는 데 그쳤지만 21일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더 큰 폭으로 올랐다. 오전 11시30분 기준 삼성전자는 4.71%, SK하이닉스는 2.66% 상승했고 코스피는 2.11% 오른 6653.85를 기록했다.
이날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986억원, 기관은 6247억원을 순매수했다. 프로그램 매매도 4933억원 매수 우위를 보이며 지수 반등을 뒷받침했다. 간밤 미국 반도체주 상승폭보다 국내 반도체주의 반등폭이 컸다는 점에서 전날 급락에 따른 낙폭 과대 인식과 프로그램 수급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코스피 올라도 하락 종목 우세…시장 전체 회복은 아직
지수 반등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된 것은 아니다.
오전 11시30분 코스피에서는 상승 종목이 325개였지만 하락 종목은 547개로 더 많았다. 코스닥도 오전 11시39분 기준 1.63% 하락했고, 하락 종목이 1147개로 상승 종목 513개의 두 배를 넘었다. 외국인과 기관은 코스닥에서 각각 892억원과 485억원을 순매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과 프로그램 매수가 코스피를 끌어올렸지만, 중소형 성장주와 코스닥까지 위험선호가 회복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최근 이틀의 흐름을 종합하면 증시 급락과 반등을 국민연금 한 곳의 리밸런싱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글로벌 AI·반도체주 조정이 가격의 방향을 만들고, 금융투자와 프로그램·레버리지 상품의 기계적인 매매가 지수 변동을 확대했을 가능성을 함께 살펴야 한다.
국민연금 리밸런싱의 시장 영향을 검증하고 정보 공개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유효하다. 다만 외국인과 연기금이 순매수한 거래일까지 이들을 급락의 직접적인 매도 주체로 지목하는 것은 당일 확인된 수급과는 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