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급락에 코스피 7000선 이탈...대신증권 “6000선대는 비중 확대 기회”
[녹색경제신문 = 나희재 기자] 연휴 기간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주가 급락하면서 코스피가 7000선을 내줬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업황의 정점 통과와 코스피 6000선 이탈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최근 조정은 기업의 실적이나 경기 흐름보다 투자심리 악화와 수급 충격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주 초반 코스피의 추가 하락 압력은 불가피하지만, 6000선대에서는 추격 매도보다 보유 또는 비중 확대 전략이 유효하다”며 “현재는 하방 위험보다 향후 상승 여력이 커진 구간”이라고 진단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지난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5.85% 하락했다. 장중 저점 기준 하락 폭은 9.71%에 달했다. 국내 증시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급락하며 코스피를 끌어내렸다.
글로벌 반도체주 급락에는 여러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TSMC가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했지만 설비투자 확대 계획이 향후 공급 증가 우려로 해석되면서 차익실현 매물이 출회됐다. 중국 인공지능 기업 문샷AI가 신형 모델 ‘키미 K3’를 공개한 것도 이른바 ‘제2의 딥시크 모먼트’에 대한 우려를 자극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 격화로 국제유가가 한 주 동안 11~14%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 재점화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긴축 전환 가능성이 부각된 점도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넷플릭스가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3분기 매출 가이던스를 제시해 주가가 7% 넘게 급락한 것도 기술주 전반의 변동성을 키웠다.
다만 대신증권은 이번 반도체주 조정이 펀더멘털 훼손보다 인공지능 산업을 둘러싼 서사의 균열과 밸류에이션 정상화, 레버리지 포지션 청산 등 심리·수급 요인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은 것으로 분석했다.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확대가 공급 증가로 이어지면서 업황이 정점을 통과할 수 있다는 우려는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실적 전망의 변화는 제한적이며 2027년까지 분기별 이익 증가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유지되고 있다.
최근 코스피와 반도체 업종의 실적 전망이 일부 하향 조정됐지만 대부분 SK하이닉스에 높아진 시장 기대치가 조정된 영향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비반도체 업종의 실적 전망은 오히려 상향 조정되고 있다.
이 연구원은 “2017~2018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당시에도 이익 증가율이 고점을 통과한 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상당 기간 상승세를 이어갔다”며 “영업이익이 실제 감소세로 전환할 것이라는 우려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는 시점이 주가 고점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2017년 11월, SK하이닉스는 2018년 5월 고점을 형성했지만 반도체 기업의 실적 고점은 2018년 3분기에 나타났다. 이익 증가율이 둔화됐다는 사실만으로 주가와 업황의 정점 통과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반도체 가격과 수출 지표도 실적 전망의 추가 상향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분기 반도체 가격이 전분기 대비 58~75% 상승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같은 기간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전분기 대비 45%로 1분기 46.1%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반면 2분기 반도체 업종의 영업이익 증가율은 전분기 대비 57.6%로 1분기 141.4%보다 크게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가격과 수출 증가세를 고려하면 현재 실적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다고 보기 어렵고, 향후 이익 전망이 추가로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코스피의 밸류에이션도 역사적 저점권까지 낮아졌다. 코스피는 최근 고점 대비 25.2% 급락했다. 연초 이후 상승률 상위권에 올랐던 대만과 일본 증시의 고점 대비 하락률이 각각 11.4%, 10.6%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낙폭이 두 배 이상 크다.
반면 코스피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은 5월 말 1015포인트에서 지난 16일 1174포인트로 상승했다. 지수는 급락했지만 기업 실적 전망은 오히려 개선된 것이다.
이에 따라 코스피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은 5.81배까지 낮아졌다. 선행 주가수익비율이 6배 아래로 내려간 것은 카드 사태와 국내 소비 버블 충격이 있었던 2004년 이후 처음이다. 2000년 이후 역사적 저점인 5.14배에도 근접했다.
업종별로도 가격 조정이 빠르게 진행됐다. 반도체와 정보기술 하드웨어, 기계, 조선, 2차전지 등 기존 주도 업종이 주간·월간 기준 실적 대비 저평가 영역으로 진입했다. 월간 기준으로는 24개 업종이 실적과 비교해 저평가 상태에 놓인 것으로 분석됐다.
수급 환경이 개선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코스피의 낙폭이 확대되면서 외국인과 연기금의 매도 압력이 완화되거나 매수세로 전환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주 미국 증시에 상장된 한국 관련 상장지수펀드에는 주간 기준 사상 최대인 28억1700만달러가 유입됐다.
이번 주 후반부터 본격적인 실적 발표가 시작되는 점도 증시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달 말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외 주요 기술기업의 실적 발표와 콘퍼런스콜이 예정돼 있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 산업과 반도체 업황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완화될 경우 실적 개선 기대가 다시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
이 연구원은 “코스피가 글로벌 증시보다 먼저 조정 국면에 진입한 만큼 저점 통과 역시 선도할 수 있다”며 “글로벌 반도체와 증시의 하락 고리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코스피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시장 분위기 반전을 이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코스피 선행 주가수익비율이 6배를 밑도는 상황에서는 추가 매도의 실익이 크지 않다”며 “이번 주 초반 6000선 초반까지 지수가 하락하더라도 추격 매도를 자제하고 반도체와 정보기술 하드웨어, 정보기술 가전, 2차전지, 조선, 화학, 기계 등 낙폭 과대 업종을 중심으로 분할 매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