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퇴직연금 수익률 자신감…업계는 “제도 유리한 덕분“
국민연금, 기금형 퇴직연금 공공기관 개방형 참여 추진…"수수료 3분의 1·수익률 3배" 지난해 국민연금 18%대 수익률…실적배당형 상위 10% 가입자는 이미 19.5% 기록 "국민연금 우위는 운용력 아닌 규제 격차"…은행·증권·보험업계 시장 재편 가능성 촉각
[녹색경제신문 = 박지안 기자] 국민연금공단이 기금형 퇴직연금의 '공공기관 개방형' 모델 참여 의사를 공식화했다. 국민연금은 민간 사업자보다 3분의 1 수준의 수수료로 3배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공략 대상으로 제시한 공공기관 342곳만으로는 501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시장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수익률 격차 역시 국민연금의 운용 역량보다는 두 제도 간 규제 및 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앞서,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달 23일 온라인 기자설명회에서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되면 공공기관 개방형 시장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기존보다 3분의 1 수준의 수수료로 3배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우선 참여 대상으로 제시한 곳은 국내 공공기관 342곳으로, 기관별로 분산된 퇴직연금을 하나의 개방형 기금으로 통합 운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금융감독원과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2025년 우리나라 퇴직연금 투자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6.1% 증가했다. 연간 평균 수익률은 6.4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같은 기간 국민연금 수익률은 18%대 후반으로 약 3배 높은 수준이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격차가 국민연금의 운용 역량이 뛰어나서라기보다, 두 제도 간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퇴직연금은 전체 적립금의 일정 비율을 안전자산에 의무적으로 편입해야 하는 규제를 받는 반면, 국민연금은 이런 제약 없이 위험자산 비중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지난해 실적배당형 상품의 평균 수익률은 16.80%로 원리금보장형(3.09%)의 5배를 웃돌았다. 적립금의 84%를 실적배당형에 투자한 상위 10% 가입자의 평균 수익률은 19.5%로 국민연금을 웃돌았지만, 원리금보장형 비중이 74%인 하위 10% 가입자의 수익률은 0.5%에 그쳤다. 그럼에도 전체 적립금의 75.4%(378조1000억원)는 여전히 원리금보장형에 머물러 있다.
수수료 경쟁력 역시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민간 퇴직연금의 비용 부담률(운용관리수수료·자산관리수수료·펀드총비용을 평균 적립금으로 나눈 총비용부담률 기준)은 0.336%로 국민연금(기금운용 비용률 기준 0.089%)보다 약 3.5배 높지만, 이는 약 500조원 규모의 시장을 42개 사업자가 나눠 운용하는 구조와 1600조원 규모를 단일 기금으로 운용하는 국민연금 간 '규모의 경제' 차이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은행 절반 넘게 차지…DB형 비중은 사상 첫 과반 붕괴
업권별 점유율은 은행이 260조5580억원(52.0%)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증권은 131조5026억원(26.2%)으로 점유율을 꾸준히 확대하는 반면, 보험은 104조7415억원(20.9%)으로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운용하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푸른씨앗'은 3만6432개 사업장, 16만6357명이 가입해 있으며 지난해 8.6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제도별로는 지난해 말 확정급여(DB)형 적립금 비중이 45.7%로 사상 처음 과반 아래로 떨어졌다. 2021년 말 60% 선이 무너진 이후 매년 감소한 반면,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은 각각 28.2%, 26.1%까지 늘며 시장의 중심축이 점차 이동하고 있다.
이 같은 시장 재편 속에서 국민연금이 공공기관 개방형 시장에 참여할 경우 사업자 간 경쟁 구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다만 국민연금이 우선 대상으로 제시한 공공기관 342곳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초기 파급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업계 "경쟁 더 치열해질 것"…보험업계도 긴장
한 시중은행 퇴직연금 담당자는 "공공기관 시장은 규모가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은행권이 이미 적극적으로 영업하고 있는 영역"이라며 "국민연금이 참여하면 기존 사업자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공공기관 개방형으로 시작하더라도 정부 정책에 따라 기금형이 점차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국민연금이 대기업의 주요 주주인 점까지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대기업 시장으로 영향력이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정책 목적에 따라 시장 안정 역할을 수행해 온 만큼 향후 매도 물량을 퇴직연금 가입자가 떠안을 가능성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보험업권은 이미 은행과 증권에 밀려 점유율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어 국민연금 진입 가능성에 더욱 민감한 분위기다. 보험업권의 적립금 증가율은 10.1%로 업권 가운데 가장 낮았으며, 원리금보장형 중심의 상품 구조와 K-ICS(신지급여력제도)에 따른 자본 효율성 부담이 원인으로 꼽힌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증시 호조로 자금이 증권업계로 이동한 영향이 크다"며 "은행·증권 대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자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점유율보다 중요한 것은 DC·IRP 시장에서의 장기 자산배분과 리스크 관리 역량"이라며 운용 경쟁력을 강조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 시장의 경쟁 축이 적립금 규모에서 운용 성과로 옮겨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 "신중해야" vs "경쟁 촉진될 것"
녹색경제 취재에 따르면,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학계에서는 수익률만으로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의 운용 경쟁력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신중론이 나온다. 두 제도는 적립 기간과 규제, 목적 자체가 다른 만큼 국민연금의 역할 확대에 앞서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정치적 독립성이 아직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직연금까지 맡는 데 대한 우려도 학계 일각에서 제기된다.
반면 국민연금 참여에 힘을 싣는 목소리도 있다. 최경진 경상국립대 교수는 지난달 근로복지공단·고용노동부·한국증권학회가 공동 주최한 퇴직연금 세미나에서 "개인에게 운용을 맡기는 현행 계약형 퇴직연금제도보다는 가입자 적립금을 모아 기금화하고 전문 운용기관이 맡아 체계적인 위험관리와 분산투자를 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남찬섭 동아대 교수도 지난 1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퇴직연금 기금화의 공적 역할 강화 방안' 토론회에서 "금융기관 중심의 시장 구조에서는 수수료 등에 대한 견제 장치가 부족할 수 있다"며 국민연금공단이 참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연금은 공식적으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민간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참여를 검토하고 있으며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말혔다.
다만 김성주 이사장은 지난달 기자설명회에서 "국민연금이 참여하면 금융기관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며 "국민연금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관이 아니라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기관인 만큼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논쟁의 핵심은 국민연금의 시장 진입 여부보다 퇴직연금 운용 방식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리금보장형 중심의 투자 관행이 유지되는 한 국민연금이 참여하더라도 수익률 개선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공공기관 개방형 참여가 실제 제도화될지, 또 퇴직연금 시장의 경쟁 구도를 어떻게 바꿀지는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