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 말고 기술력 본다…우리은행, 첨단기업 대출 심사 방식 바꿨다

재무제표 아닌 기술 등급·특허·R&D 이력으로 평가…적자 스타트업도 기술력 있으면 대출 문 2030년 생산적 금융 80조 로드맵 전초기지…전국 13개 산단 거점 이어 수도권 첨단기업 첫 공략

2026-07-03     박금재 기자
우리은행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은행 대출 심사의 기본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매출·부채·이익 등 재무제표 숫자로 기업을 평가해온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중심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기술가치 평가' 방식으로 우리은행이 전환을 선언했다. 적자 스타트업이나 초기 첨단기업도 기술력만 인정받으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최근 서울 강남구에 첨단전략산업 기업을 전담하는 기업금융 특화 조직 '강남 BIZ프라임센터'를 개점했다. 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AI·미래모빌리티 등 국가첨단전략산업 분야 기업을 대상으로 맞춤형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전담 거점이다. 이 센터의 핵심은 심사 방식의 변화다. 기존 은행권이 대출 심사에서 가장 먼저 들여다보는 재무제표 대신 기업의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을 중심으로 자금 공급 여부를 판단하는 구조다.

이는 현행 은행 여신 심사 관행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금까지 시중은행의 기업 대출은 대체로 최근 3년 재무제표, 담보 여부, 부채비율 등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매출이 없거나 영업손실이 이어지는 초기 기업은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은행 대출 문턱을 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기술 기반 스타트업과 딥테크 기업들은 벤처캐피탈(VC)이나 정책금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은행이 내놓은 '우리첨단선도기업대출'은 이 공백을 직접 겨냥한다. 기술력 평가 기관의 기술 등급이나 특허·연구 역량, 정부 R&D 과제 수주 이력 등을 기업 가치 평가의 핵심 지표로 활용한다. 정책금융·보증기관 협약과 투자 연계도 병행한다.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 등과의 협약을 통해 보증을 기반으로 한 대출을 확대하고, 기업의 성장 단계에 맞는 투자 연계도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재무 컨설팅도 함께 제공해 단순 대출 공급을 넘어 기업의 중장기 성장을 지원하는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강화한다.

이 같은 변화는 우리은행의 '미래동반성장 프로젝트'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가계대출 중심에서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하겠다는 2030년까지 80조원 지원 로드맵을 내걸었다. 강남BIZ프라임센터는 이 로드맵의 전초기지 역할을 맡았다. 우리은행은 2023년 7월 반월·시화BIZ프라임센터를 시작으로 인천·창원·부산·광주·청주·대전 등 전국 주요 산업단지에서 총 13개 BIZ프라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강남센터는 지역 산업단지가 아닌 수도권 핵심 첨단기업 밀집지역을 정조준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강남BIZ프라임센터는 첨단전략산업 성장을 지원하는 생산적 금융의 전초기지"라며 "기업과 은행이 함께 성장하는 상생의 금융 파트너로서 역할을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다만 기술가치 평가 방식이 실제로 정착하려면 넘어야 할 산도 있다. 기술력을 어떻게 정량화하느냐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같은 기술이라도 평가 기관에 따라 등급이 달라질 수 있고, 업계에서는 기술 등급이 높아도 사업화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은행 심사역이 기술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도 과제다. 정부가 첨단전략산업 육성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은행의 기술금융 확대 압박도 커지는 구조인 만큼, 내실 있는 심사 체계를 갖추는 것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