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퇴임하면 또 공공기관…보령은 왜 '퇴직공무원 공화국'이 됐나
퇴임 20여 일 앞둔 추천 인사 논란…'사람' 아닌 '제도'를 바꿔야 한다 공직 경험은 자산이지만 반복되는 관행 인사는 공정성 훼손…민간 전문가 진입 막는 구조적 한계
[녹색경제신문 = 박웅현 기자]민선 8기 보령시정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또다시 '퇴직 공무원 재취업' 논란이 지역사회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에는 관창산업단지 관리소장 선임 과정이다. 김동일 보령시장이 퇴임을 불과 20여 일 앞둔 지난 6월 특정 인사를 추천했고, 해당 인사는 현재 관리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관창산업단지 관리소장은 보령시 소속 공무원이 아니라 입주기업협의회가 채용하는 자리다. 협의회 정관에 따라 보령시장의 추천을 받은 뒤 협의회 의결을 거쳐 최종 선임된다. 보령시 역시 "입주기업협의회장의 요청에 따라 추천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의 핵심은 적법성 여부가 아니다. 퇴임을 앞둔 단체장의 추천이 사실상 인사권 행사와 같은 영향력을 갖는 구조가 과연 공정한가라는 점이다.
시장에게 법적 임명권은 없지만, 협의회 정관상 시장의 추천이 선임 절차의 출발점이 되는 만큼 지역사회에서는 이를 사실상의 인사행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법적 권한과 현실적인 영향력 사이의 간극이 이번 논란의 본질이다.
이번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특정 인물 때문이 아니라 비슷한 인사가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관창산업단지 관리소장은 권오식, 최종근, 임창빈 등 공공부문 경력을 가진 인사들이 연이어 맡아왔다. 규정상 퇴직 공무원의 지원을 제한하는 조항은 없다. 행정 경험은 산업단지 운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시민이나 민간 전문가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기회를 충분히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지역에서는 "공직 경험이 사실상의 자격요건처럼 작용하고 있다", "결국 퇴직 공무원들의 재취업 통로가 굳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관창산업단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슷한 흐름은 보령시 산하 공공기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지역사회의 시각이다.
보령시시설관리공단, 보령축제관광재단, 만세보령장학회 등 주요 출자·출연기관의 핵심 보직에는 공직 경력을 가진 인사들이 잇따라 임용돼 왔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보령시시설관리공단은 공공폐수처리시설과 공공하수처리시설을 비롯해 모란공원, 동백관, 스카이바이크, 석탄박물관, 청소년복합콘텐츠창작센터 등 20여 개가 넘는 공공시설을 관리하는 보령시의 대표 공공기관이다.
시민 생활과 직결되는 시설을 운영하는 기관인 만큼 인사의 공정성과 전문성은 더욱 중요한 요소다. 그럼에도 핵심 보직이 반복적으로 공직 출신에게 돌아간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민간 전문가들은 애초부터 경쟁이 어려운 구조라는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충남 북부권 지자체들은 최근 공공기관 인사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서산과 아산 등은 시설관리공단과 출자·출연기관의 기관장 및 임원 선임 과정에서 공개모집과 임원추천위원회 심사, 면접 등을 제도화하며 공개 경쟁을 확대하고 있다. 일반 직원 역시 공개채용을 원칙으로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물론 이들 지역에도 퇴직 공무원이 공공기관 임원으로 임용되는 사례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는 퇴직 공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리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개 경쟁 절차를 거쳐 선발된다는 점이다.
반면 보령은 추천과 관행 중심의 인사 방식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면서 경쟁성과 개방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퇴직 공무원이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오랜 행정 경험과 정책 이해는 공공기관 운영에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직군이 반복적으로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민간 전문가들이 실질적으로 경쟁할 기회조차 갖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된다면 공정성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인사의 기준이 능력과 전문성보다 경력과 인맥으로 비춰질 경우 시민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방선거가 끝날 때마다 퇴임을 앞둔 단체장의 추천 인사가 반복된다면 '보은 인사'라는 의혹 역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 논란은 특정 인사의 적격성을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보령 공공기관 인사 시스템이 얼마나 개방적이고 공정한지를 묻는 문제다.
행정 전문가들은 인사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람이 아니라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개모집 의무화, 외부위원 중심의 임원추천위원회 운영, 평가 결과 공개, 추천 사유의 투명한 공개, 직무 중심의 자격기준 마련, 민간 전문가와 퇴직 공무원이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등이 대표적인 개선 방안으로 제시된다.
민선 9기 출범을 앞둔 지금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특정 인물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임명되더라도 공정한 절차를 거쳤다고 납득할 수 있는 인사 시스템이다.
퇴직 공무원의 경험을 지역 발전의 자산으로 활용하는 것과 퇴직 공무원 중심의 폐쇄적 인사 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제 보령시가 선택해야 할 것은 특정 인사가 아니라 시민이 신뢰할 수 있는 인사 시스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