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반(反)에어컨' 시대 끝났다…삼성·LG, 64조 시장 최대 수혜주 부상

프랑스·영국 냉방 규제 완화…에어컨 수요 구조적 확대 F-gas 규제 강화에 유럽 업체 '난항'…국내 기업 반사이익

2026-06-29     김지윤 기자
이탈리아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유럽이 수십 년간 유지해온 '반(反)에어컨' 기조가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을 계기로 흔들리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는 에어컨 설치 규제 완화와 공공시설 냉방 확대가 정치권 핵심 의제로 떠오르면서 냉방을 억제하던 정책 기조가 전환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폭염 특수가 아닌 유럽 냉방시장의 구조적 변곡점으로 평가하며, 친환경 공조 기술과 공급망을 선제적으로 구축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시장 재편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부상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여름부터 유럽에서 에어컨이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섰다. 프랑스에서는 학교와 병원 등 공공시설에 에어컨 설치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고, 영국에서도 주택용 에어컨 설치 절차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냉방 억제' 정책이 현실적인 폭염 대응 정책으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시장 전망치도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시장조사업계에 따르면 유럽의 에어컨·VRF(시스템에어컨)·칠러 등을 포함한 냉방 공조 시장은 올해 약 309억달러(약 42조원) 규모에서 연평균 6% 안팎 성장해 2031년에는 415억달러(약 57조원), 2035년에는 470억달러(약 64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시장 확대의 과실이 모든 업체에 동일하게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폭염으로 냉방 수요가 급증하는 동시에 유럽연합(EU)이 친환경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EU의 개정 불화온실가스(F-gas) 규제다. 내년부터 유럽에서는 지구온난화지수(GWP)가 150을 넘는 소형 에어컨과 히트펌프의 시장 출시가 전면 금지된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지구온난화지수가 3에 불과한 천연 냉매 'R290(프로판)' 기술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이는 현지 중소 제조사들에게 거대한 기술적 장벽이 되고 있다. 

R290은 폭발 및 화재 위험이 높은 가연성 냉매여서 제품 내부의 방폭 설계와 미세 냉매량 제어 기술이 필수적이다. 여기에 생산라인 전체를 방폭 시설로 전환해야 하는 막대한 투자와 R290 전용 인버터 컴프레서 공급망 확보까지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상당수 유럽 로컬 업체들이 양산 전환에 어려움을 겪는 반면, 이미 공급망을 수직계열화하고 방폭 생산체계를 구축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규제가 강화될수록 오히려 경쟁 우위를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양사의 강점도 다소 다르다. LG전자는 에어컨의 핵심 부품인 인버터 컴프레서 기술을 자체 내재화한 데 이어 최근 유럽 프리미엄 온수 솔루션 기업 OSO를 인수하며 히트펌프부터 온수 저장장치까지 아우르는 HVAC 밸류체인을 구축했다. 실외기와 히트펌프, 온수탱크를 하나의 패키지로 공급할 수 있는 만큼 기술력과 공급망이 부족한 유럽 건설사와 설비업체를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제품 판매를 넘어 에너지 관리 플랫폼 경쟁력을 앞세우고 있다. '스마트싱스 에너지(SmartThings Energy)'를 기반으로 히트펌프와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연동해 건물 전체의 에너지 소비를 최적화하는 솔루션을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 콘월의 대규모 주거단지 재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등 단순 HVAC 제조사를 넘어 도시 단위 에너지 인프라 플랫폼 공급자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향후 더 중요해질 전망이다. EU의 건물에너지성능지침(EPBD)은 단순히 고효율 냉난방기기를 보급하는 수준을 넘어 태양광 발전과 ESS, 히트펌프, 에어컨을 하나의 에너지 관리 시스템으로 통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후가 바뀌면서 에어컨 보급율이 20% 안팎이던 유럽 시장에 기회의 문이 열리게 됐는데, 정작 유럽 기업들은 기술규제로 이 수혜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국내 기업들은 유럽 법인 성과가 저조하던 시절에도 버티면서 공급망과 유통망을 관리해왔는데, 그 과실을 본격적으로 거둘 시기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