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경고 하루 만에…5대 은행 동시에 '신용대출 빗장' 걸었다
농협 우대금리 축소·신한 '잠자는 마통' 감액·하나 한도 1억 통일 5월 기타대출 5조3000억, 57개월 만 최대…당국 경고 하루 만에 대응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비상 관리체계를 가동한다고 밝힌 지 단 하루 만에 주요 은행들이 일제히 신용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금리를 올리고,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줄이고, 비대면 채널까지 닫는 조치가 거의 동시에 쏟아졌다. 코로나19 시기 영끌·빚투 열풍이 불었던 2021년 8월 이후 57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을 기록한 신용대출에 대해 은행권이 "더는 못 본다"는 신호를 일제히 보낸 셈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은 오는 15일부터 전 신용대출 상품의 우대금리를 약 0.1%포인트 축소한다. 우대금리를 줄이면 그만큼 실제 대출금리가 오르는 효과가 있다.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위해 주택담보대출 우대금리도 0.2%포인트 축소하기로 했다.
같은 날 신한은행은 '신용대출 선제적 관리방안'을 시행한다. 약정금액 3000만원을 초과하는 마이너스통장 중 약정기간 및 만기 직전 3개월 기준 한도 사용률이 10% 미만인 계좌는 만기 연장 시 최대 20%까지 한도를 감액한다. 사실상 '잠자는 마통'부터 정리하겠다는 의미다. 대면·비대면 신용대출 합산 일별 접수량이 내부 관리 기준을 넘을 경우 비대면 신용대출 신청도 제한한다. 다만 서민금융대출과 상생대환대출 등 취약계층 지원 상품은 제외했다.
하나은행은 이날부터 신용대출 신규 신청 시 차주의 연 소득과 관계없이 개인별 최대 한도를 1억원으로 제한했다. 현재 신용대출은 지난해 6·27 부동산 대출 규제에 따라 연소득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지만, 고액 연봉자의 경우 1억원을 초과하는 대출도 가능했던 만큼 사실상 고소득자를 겨냥한 추가 규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마이너스통장 만기 연장 시 미사용 한도를 줄이는 조치도 강화한다. 기존에는 상품 특성에 따라 일부 예외를 인정했지만 앞으로는 예외 조항 없이 규정에 따른 감액 조치를 적용할 방침이다.
우리은행과 경남은행은 대출 비교 플랫폼을 통한 비대면 신용대출 갈아타기 접수를 중단했다. 카카오페이·네이버페이·핀다·토스·뱅크샐러드 등 플랫폼을 통한 신규 유입을 차단해 신용대출 증가 속도를 늦추겠다는 취지다.
조치 내용은 은행마다 다르지만 타이밍은 똑같다. 모두 12일 발표됐거나 15일부터 일괄 시행된다. 통상 은행권 자율 규제는 내부 검토와 시스템 반영에 며칠에서 몇 주가 걸린다. 그런데 이번엔 당국이 비상관리체계를 선언한 다음 날 곧바로 구체적인 조치들이 쏟아졌다. 이미 상당 부분 준비돼 있던 카드를 동시에 꺼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금융당국의 압박이 그만큼 강했다는 신호이자, 은행들이 "우리도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모습을 경쟁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배경에는 심상치 않은 수치가 있다. 금융위원회의 '5월 가계대출 동향(잠정)'에 따르면 지난달 마이너스통장과 신용대출 등이 포함된 기타대출은 5조3000억원 증가했다. 코로나19 시기 영끌·빚투 열풍이 불었던 2021년 8월(7조9000억원) 이후 57개월 만의 최대 증가폭이다. 특히 신용대출은 전월 9000억원 감소에서 3조4000억원 증가로 급반등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전날 관계부처 합동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열고 가계대출 증가 추세가 안정될 때까지 '가계부채 비상 관리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관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매주 점검회의를 열어 이행 상황을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조치를 두고 당국의 자율 관리 주문이 사실상 업권 전반의 '신용대출 긴축 모드'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각 은행이 비슷한 시점에 비슷한 조치를 쏟아내면서, 정작 자금이 필요한 실수요자와 중저신용자가 일시에 대출 문턱이 높아지는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풍선효과로 2금융권이나 비대면 플랫폼 우회 경로로 수요가 옮겨갈 가능성도 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