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뒷談] 한국 휩쓸고 간 젠슨 황…실속은 LG가 챙겼다
"데이터센터 함께 설계"…LG전자 HVAC, LG CNS 수혜 휴머노이드 제조 협력 가시화…구광모 회장 화제성도 성과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4박 5일 방한 일정이 마무리됐습니다. 방한 전부터 국내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군 영향력과 60대 CEO라고는 믿기 힘든 광폭 행보, 인파를 구름처럼 몰고 다녔던 화제성을 돌아보면 체감상 일주일은 더 머물다 간 듯 여운이 남습니다.
황 CEO는 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당시 방한했을 때보다 훨씬 다양한 한국 기업들과 소통하며 접점을 넓혔습니다. 5일 ‘삼쏘회동’에 함께했던 SK, LG, 네이버를 비롯해 현대차, 삼성, 두산까지 국내 주요 그룹 수장들과 쉴 틈 없는 스킨십을 이어갔습니다. 다만 단기간에 워낙 많은 기업을 만나다 보니, 일각에서는 기업별 사업 협의의 밀도는 다소 떨어졌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재계에서는 이번 방한에서 가장 내실 있는 성과를 챙긴 기업으로 SK그룹에 더해 LG그룹을 꼽는 분위기입니다. 황 CEO가 8일 LG트윈타워에서 그룹사 경영진과 회동한 뒤 취재진과 만나 밝힌 내용만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1분 30초 남짓한 짧은 발언이었지만 현재 엔비디아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미래 사업 상당 부분을 LG와 함께 추진하겠다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내놨기 때문입니다.
우선 데이터센터 사업은 향후 1~2년 내 실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로 꼽힙니다. 황 CEO는 "우리는 미래의 데이터센터를 설계하는 일에도 LG와 힘을 모으고 있다"며 "데이터센터에는 냉각 기술과 전력 공급 시스템, 전체 설계 및 건설 역량이 필수적인데 LG는 이 분야에서 환상적인 역량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황 CEO의 발언은 단순 연구개발(R&D) 협력을 넘어 실제 사업 기회 확대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업계에서는 황 CEO가 언급한 "시장에서도 함께 협력하고 있다"는 표현을 공동 영업과 프로젝트 수주까지 염두에 둔 메시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표준 설계와 레퍼런스 아키텍처를 제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파트너사들과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델 테크놀로지스, HPE, 슈퍼마이크로 등이 주요 파트너 역할을 담당해왔습니다.
LG가 이 밸류체인에 본격적으로 합류할 경우 단순히 엔비디아와의 협업을 넘어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시장 전반에서 사업 기회를 확대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엔비디아 파트너'라는 브랜드 효과는 향후 글로벌 고객 확보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무기가 됩니다.
그룹사 가운데서는 LG전자의 ES사업본부와 LG CNS가 직접적인 수혜를 받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ES사업본부는 기존 HVAC(냉난방공조) 사업을 기반으로 칠러(Chiller), 냉각수 분배장치(CDU), 액침냉각 등 AI 데이터센터용 열관리 솔루션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만약 엔비디아 AI 인프라 생태계에서 LG 장비가 공식 인증을 받게 된다면, 글로벌 고객들이 우선 검토하는 표준 사양 후보군에 오르게 됩니다. LG전자는 현재 이 분야에서 버티브, 슈나이더 일렉트릭, 트레인 테크놀로지스 등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 중입니다.
LG CNS는 데이터센터 구축과 클라우드 전환, AI 인프라 통합(SI)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 사업을 미래 핵심 성장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데이터센터 구축 전반을 아우르는 기업은 LG CNS가 거의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엔비디아가 AI 인프라의 표준 아키텍처를 제공하고 LG전자가 냉각 솔루션을 맡는다면, LG CNS는 데이터센터 설계와 구축, 시스템 통합을 담당하며 프로젝트 전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피지컬 AI 협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황 CEO는 "우리가 함께 협력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는 로보틱스"라며 "미래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구현하기 위해 기계 시스템뿐만 아니라 모터 기술 분야에서도 LG와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엔비디아는 휴머노이드 개발 플랫폼 아이작(Isaac)과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그루트(Project GR00T)를 앞세워 피지컬 AI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지만, 실제 하드웨어 설계와 제조 역량은 글로벌 제조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력을 계기로 LG가 엔비디아 피지컬 AI 생태계의 핵심 제조 파트너로 자리 잡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가 로봇의 두뇌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담당한다면 LG는 이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역할을 맡는 그림입니다. 향후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열릴 때, 엔비디아의 뇌를 탑재한 로봇의 핵심 구동부와 본체를 LG가 공급하거나 아예 위탁 생산(CMO)하는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옵니다.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폭스콘의 관계처럼 AI 시대 로봇 산업에서도 플랫폼 기업과 제조 기업 간 분업 체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황 CEO가 "로봇 시스템부터 오늘과 내일의 AI 팩토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하나의 원팀(One Team)으로 일하고 있다"고 강조한 것도 맥을 같이 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회동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직접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총괄하며 그룹 차원의 역량을 결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평소 대외 노출이 적고 조용한 경영 스타일로 알려졌던 구 회장은 이번 방한 과정 내내 전면에서 그룹 일정을 진두지휘했습니다.
특히 홍대 '삼쏘회동'을 통해 20대 이하 젊은층에게 구 회장의 인지도를 높인 것도 숨은 성과로 꼽힙니다. 회동 당시만 하더라도 현장에서 구 회장을 크게 알아보는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이후 SNS를 중심으로 구 회장의 모습이 빠르게 확산되며 대중과의 접점도 넓어졌습니다.
재계에서는 총수의 대중 친화적 이미지가 단순한 화제성을 넘어 기업 브랜드 가치와 인재 확보, 미래 사업에 대한 투자자 신뢰를 높이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 AI 시대를 이끄는 글로벌 기업 수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 자체가 LG가 지향하는 미래 비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