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Effect] 이재용의 전영현, 최태원의 곽노정
젠슨 황이 서울에서 4박5일을 보냈다.
삼겹살을 먹었다. 치킨을 먹었다. 총수들을 만났다. 사진에는 악수가 담겼다. 카메라는 총수들을 찍었다.
그런데 카메라에 잘 안 잡힌 자리가 있었다.
깐부치킨 강남점. 최태원 옆에 곽노정이 앉았다. 신라호텔. 이재용은 없었다. 전영현이 젠슨 황과 단독으로 마주 앉았다. 회동을 마친 전영현은 기자들에게 말했다. "오늘 가장 좋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총수 뒤에 기술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기술자들은 이번 방한의 실질이었다.
곽노정. 1994년 현대전자(SK하이닉스 전신)에 입사했다. 이후 30년, 한 회사다.
그 30년이 단순하지 않다. 현대전자는 2001년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다. 이름이 하이닉스반도체로 바뀌었다. 2012년 SK에 인수됐다. SK하이닉스가 됐다. 회사가 세 번 달라지는 동안 곽노정은 공장을 떠나지 않았다. D램·낸드 개발과 생산을 주도한 수율 전문가였다.
수율은 같은 웨이퍼에서 얼마나 많은 정품을 뽑아내느냐의 문제다. 기술이면서 현장이다. 책상에서 나오지 않는다. 2022년 사장에 올랐다. 그는 차세대 HBM 경쟁에서 속도전에 휘말려 미검증 공정으로 무리한 전환을 꾀하기보다, 이미 검증된 공정과 패키징 기술을 고수하는 결단을 내렸다. 화려한 '세계 최초' 타이틀보다 수율과 품질 안정성을 택했다. 취임 이후 HBM3, HBM3E를 잇따라 개발하며 HBM 시장 점유율 57%를 확보했다. 2025년 SK하이닉스 영업이익 47조2063억원. 역대 최대였다.
최태원이 젠슨 황 앞에서 "AI 팩토리 동맹"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곽노정이 만들어 놓은 숫자들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전영현. 1991년 LG반도체 D램 개발팀에서 시작했다. 경쟁사였다. 1997년 외환위기 빅딜로 LG반도체가 현대전자에 합병되자 200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로 이직했다. 회사가 사라진 자리에서 삼성으로 건너왔다. 메모리사업부장 시절인 2014년부터 2017년까지 20나노, 10나노 D램을 연이어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삼성 D램이 가장 강했던 시절이다.
그러다 반도체를 떠났다. 2017년 삼성SDI 대표이사로 이동해 배터리 사업을 맡았다. 첫 해부터 적자를 개선시켰다. 7년을 배터리에서 보냈다. 2023년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임명되었다. 사실상 경영 1선에서 물러나는 절차로 해석됐다. 하지만 불려왔다.
2024년 5월, 삼성전자 DS부문이 15조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하던 시점이었다. 취임식은 없었다. 사내 게시판에 취임사를 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삼성 반도체는 발톱 썩은 공룡이다." 사무실에 공룡 모형을 가져다 놓았다. R&D 지출을 수 배로 늘렸다. 2년 뒤, 신라호텔에서 "가장 좋은 이야기"가 나왔다.
곽노정은 "우리가 잘하고 있다"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다. 전영현은 "우리가 다시 할 수 있다"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다. 최태원의 언어는 크다. 전영현의 언어는 조심스럽다. 한쪽은 확장이고, 한쪽은 회복이다.
오너들은 알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기술자를 앞에 세웠다.
반도체는 회장이 만들지 않는다. 그런데 회장이 누구를 앞에 세우느냐가 회사의 현재를 말해준다.
이재용의 전영현. 최태원의 곽노정.
두 이름이 지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반도체를 설명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