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Effect] 경쟁보다 협력… 정기선이 조선업의 미래를 읽는 방식

미국 MRO·캐나다 잠수함 사업…HD현대를 움직이는 새로운 항로

2026-05-29     이충진 기자

기업의 미래는 CEO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먼저 시작된다.

조선업의 오래된 문법은 단순했다. 더 많은 선박을 수주하고, 경쟁사를 앞서는 것. 그러나 정기선 HD현대 회장의 시선은 처음부터 달랐다. 그의 눈은 울산 조선소의 도크보다 국경 밖 공급망을 더 자주 향했다.

지난 28일 HD현대중공업은 캐나다 데이비조선소와 조선·함정 사업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HD현대중공업은 현재 한화오션과 함께 최대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초계잠수함 사업(CPSP)에 참여하고 있다. 사업 규모도 주목할 만하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움직임이 보여주는 전략의 결이다.

2023년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IT 전시회 CES에서 정 회장은 HD현대의 미래 비전으로 '오션 트랜스포메이션'을 제시했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바다가 가진 잠재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말은 수주 목표나 경쟁사가 아니라, 해양 산업 생태계 전체를 이야기한 것이었다. 그것은 상대를 밀어내는 싸움이 아니라, 공급망 안으로 먼저 들어가는 경쟁에 가까웠다.

이 시각은 그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을 거쳐 글로벌 컨설팅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일한 정 회장이 바라본 산업은, 공장 안에서 완성되지 않았다. 시장과 금융, 공급망과 기술, 국가 정책까지 연결된 거대한 생태계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전략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5월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제이미슨 그리어를 만난 자리에서 정 회장은 "미국 조선산업 재건에 필요한 역할이 있다면 기꺼이 참여하겠다"며 공동 기술개발과 인력 양성 방안을 제안했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도 같은 흐름이다. 올해 2월 캐나다 국방조달 담당 장관이 직접 HD현대를 찾아 건조 역량을 확인했고, 한국 정부도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원팀 체제를 적극 뒷받침하고 있다.

물론 위험도 있다. 조선과 방산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 미국과 캐나다의 정책 변화는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그러나 그 불확실성 속에서도 HD현대의 방향은 분명하다. 정주영 창업주의 현대가 울산 앞바다에 세계 최대 조선소를 세웠다면, 정 회장의 HD현대는 국경 밖 안보 공급망 속에서 새로운 성장 공간을 찾고 있다.

결국 기업은 CEO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닮아간다. 정기선은 HD현대의 다음 항로를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