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최학배 하플사이언스 대표 "퍼스트인클래스 위한 새 평가기관 필요"

문정바이오포럼서 주제발표, AI 결합형 평가 시스템 제언 "IPO 일변도 탈피…회수 경로 다각화, 정부 차원 보장 필요"

2026-05-28     민보영 기자
최학배

[녹색경제신문 = 민보영 기자] "글로벌 블록버스터급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 세계 최초 신약)'는 안전한 발상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행 평가 체계는 '검증 부족'이라는 이유로 혁신 바이오벤처 자산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혁신신약을 다루는 비상장 바이오벤처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기존 평가 틀에서 벗어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신약 개발 기간은 긴 반면 투자 회수 주기는 짧은 바이오 생태계 환경에 맞는 평가 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27일 서울 송파구 한스바이오메드 벨라젤 홀에서 개최된 '제7회 문정바이오CEO포럼'에서 최학배 하플사이언스 대표는 '혁신신약을 개발하는 비상장 바이오 기업의 어려움과 해결방안에 대한 제안'을 주제로 발표하며 이 같이 밝혔다.

최 대표는 신약 개발 기간은 장기적인 반면 투자 회수 주기는 매우 짧은 '시간의 불일치'가 존재하며, 학술적 연구 성과와 실제 투자 가능한 개발 자산 사이의 평가 기준이 다른 '평가의 불일치'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체계는 검증된 타깃, 질환을 표준적으로 재현하는 동물 모델의 존재 여부를 필수적으로 따지며 후기 임상 데이터와 기업의 재무 안정성, 그리고 기업공개(IPO)를 통한 명확한 회수 경로를 주로 요구한다.

반면 혁신 바이오벤처가 다루는 물질은 타깃 자체가 완전히 새롭거나 기존 역할을 새롭게 해석해야 하므로 표준 동물 모델이 없어 인간 질환 재현성에 제한이 따르고, 실험 모델 자체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비교할 대조군이나 기준(Benchmark)이 없는 퍼스트 인 클래스 신약을 만들기 어렵다고 했다. 기존 치료제가 해결하지 못한 병태생리적 원인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고, 새로운 작용기전(MOA)의 혁신성을 증명해야 하기에 난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최 대표는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전후로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데, 정작 이 시기 투자가 단절되는 '자금의 불일치'가 존재한다"며 "부처별 과제 단위의 단발성 지원 제도가 신약 개발의 전주기적 연속성과 충돌하는 '제도의 불일치' 역시 생태계 안착을 가로막고 있다"고 밝혔다. 초기 연구 성과를 '개발 자산', '투자 자산'을 거쳐 궁극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거래 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배경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 대표는 임상 전문가뿐만 아니라 병태생리학자, MOA 학술 전문가, 미개척 데이터를 연결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활용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혁신신약 평가위원회'를 신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존의 기준에 부합하는지 검증하는 방식을 넘어, 새로운 기준을 세워서라도 해당 물질이 인류의 질병을 본질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판단하는 'AI 결합형 혁신신약 평가 시스템(AI Augmented First-in-class Evaluation System)'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와 함께 국가 R&D 자산의 매몰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 정책의 전면적인 재설계와 구체적인 제도적 대안도 제시됐다. 정부가 그동안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확보한 우수 바이오 자산들이 자금난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연속성 있는 지원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구체적으로 우선 과제 단위의 단절된 지원 방식을 과감히 탈피해 비임상 단계부터 임상 초기, 최소 임상 2a상(2A) 단계의 개념증명(POC) 달성 시점까지 공백 없이 자금을 이어주는 '연속형 지원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국내 바이오기업의 엑시트 구조가 기업공개(IPO)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며 "대기업이나 중견 제약사가 바이오벤처를 적극적으로 인수할 수 있도록 기업 인수 시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다중 회수 경로(Multi-Exit)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본시장과 투자업계를 향한 강한 인식 전환의 주문도 이어졌다. 국내 바이오 생태계가 오직 IPO 성공만을 유일한 돌파구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글로벌 제약사와의 조기 라이선스 아웃(기술수출)을 적극적인 수익 및 리스크 분산 전략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시각이다.

최 대표는 "최근 정부 등에서 1500억 원 규모의 임상 3상 펀드를 조성하는 등 리스크가 적어 보이는 후기 자산 투자가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후기 자산이 무조건 더 안전하거나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리스크가 적은 초기 임상 단계에서 글로벌 파트너에게 기술을 이전하고 선급금과 단계별 마일스톤을 확보하는 '조기 회수형 모델'이 국내 비상장 벤처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데 훨씬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포럼을

한편 이번 행사에는 윤선주 에이피트바이오 대표 외에도 포럼 회장을 맡고 있는 조용준 동구바이오제약 대표와 초대 회장인 이병건 플래그십파이오니어링 특별고문,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건전한 바이오 생태계 유지를 위한 비상장 바이오기업의 생존 전략'을 주제로 진행된 이번 포럼은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 무엇이 가로막고 있는가(김영옥 K-바이오전략연구원장) ▲위기의 비상장 바이오, 생존을 넘어 성장으로(이태규 스케일업파트너스 대표) ▲건전한 바이오 생태계 유지를 위한 비상장 바이오 기업의 생존 전략과 시스템 개선 방안(박영민 국가신약개발사업단장) 등의 발표로 구성됐다.

조용준 대표는 환영사에서 "최근 제약바이오 산업은 글로벌 투자 위축과 개발 리스크 증가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오늘 논의가 단순히 어렵다는 진단에 그치지 않고 산업의 지속가능성과 기업의 투자·정책이 어떻게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인지 구체화하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