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알고리즘] 불황은 '시장 탓', 호황은 '내 덕'… 롯데케미칼의 이중잣대

2026-05-26     이충진 기자

대중의 시선은 차갑다. 기업이 내놓은 화려한 흑자 성적표에 무작정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지난 11일, 롯데케미칼은 올해 1분기에 735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10분기 만에 적자에서 벗어났다고 밝혔다. 회사는 실적 발표를 통해 "기민한 원료 조달과 가동률 탄력적 조정 등 생산운영 최적화로 수익성을 개선했다"고 자평했다. 뼈를 깎는 경영 효율화가 결실을 보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장의 진단은 다르다. 이번 실적 반등의 결정적 배경에는 중동 지정학 리스크와 '래깅 효과(Lagging Effect)'가 자리 잡고 있다. 회사 측 설명에도, 과거 원료값이 상대적으로 쌌을 때 사둔 재고로 제품을 팔면서 생긴 시세 차익인 래깅 효과가 약 2500억 원에 달한다고 명시돼 있다. 혁신보다는 외부 환경의 변수가 맞아떨어져 막대한 이익을 남긴 셈이다.

이번 흑자 발표가 대중의 뇌리에 남긴 씁쓸한 기시감은 뚜렷하다. 천문학적인 적자의 늪에 빠져 있을 때, 기업의 태도는 지금과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실적이 곤두박질칠 때마다 롯데케미칼은 철저히 외부 환경을 앞세웠다. 지난 해에도, 불과 올해 초에도, 회사는 어김없이 “중국 범용 석유화학제품의 공급 과잉 영향으로 적자 흐름이 이어졌다”는 핑계를 댔다. 실패는 통제 불가능한 시장 탓이고, 뜻밖의 성공은 자신들의 기민한 경영 성과라는 얄팍한 잣대다.

물론 틀린 설명은 아니다. 그런데 흑자 전환의 배경에도 어김없이 중동의 지정학 리스크와 가격 효과가 거론된다.

시장 변수가 크게 흔들리는 것이 석유화학 산업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대중은 묻게 된다. 시장 변수의 영향이 불가피한 현실 속에서, 수 억원의 연봉을 받는 경영진이 온전히 스스로의 '경쟁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뼈아픈 질문은 다음이다.

흑자 전환의 축배 뒤에서도 롯데케미칼은 충남 대산과 전남 여수에 있는 핵심 설비(NCC)의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낡은 사업을 덜어내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체질을 바꾸는 것은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업 재편과 생산 조정의 직접적 충격은 대체로 노동자와 지역 사회가 먼저 감당하게 된다.

외부 변수 덕분에 얻게 된 2500억 원이라는 이 막대한 이익은, 혹 지금 회사가 추진하고 있는 뼈아픈 구조조정의 충격을 줄이는 데 쓰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존을 위해 공장을 멈추고 라인을 줄여야만 하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이 뜻밖의 흑자는 현장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고 지역 사회가 입을 타격을 완충하는 안전망으로 작동할 여력이 되지는 않았을까.

대산과 여수의 석유화학 공단은 수많은 하청 업체 직원들의 땀방울과 수만 명 노동자 가족의 삶이 얽힌 거대한 생태계다. 회사가 살겠다며 라인을 지워내는 순간, 여의도의 주가 차트는 반등할지 몰라도 지방 도시의 일상과 경제는 즉시 얼어붙는다.

실적이 무너질 때는 시장을 탓하고, 흑자가 나면 그 이익을 사유화하며, 회복의 고통은 현장으로 밀어내는 구조. 온전한 경쟁력이 증명되지 않고, 생존의 충격을 지역사회가 가장 먼저 체감해야 하는 이 씁쓸한 굴레가 변하지 않는 한, 대중의 차가운 질문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