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히트펌프 시장 본격 개화···"전기요금·건축법 손 봐야"
“공동주택·전기요금·표준화 해결이 핵심”···제도 선행돼야 PVT 결합 주목, 기존 태양광 대비 히트펌프 효율 큰 폭 개선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히트펌프 산업은 단순 냉난방 기기 시장이 아니라 건물 에너지 인프라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21일 한국미래기술연구원이 개최한 ‘히트펌프 산업 확대와 기업의 신사업 진출 전략’ 세미나 현장에서는 이 같은 평가가 반복적으로 나왔다. 이날 행사에는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에너지경제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 국내 주요 연구소 소속 연구진이 발표자로 참여해 국내 히트펌프 산업의 성장 가능성과 제도 과제, 태양광열(PVT) 융합 기술 흐름 등을 집중 조망했다.
첫 발표를 맡은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은 공기열 히트펌프의 재생에너지 인정 이후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권 소장은 “히트펌프는 건물 전기화와 탄소중립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이라며 “2030년 전후 국내 시장이 폭발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2035년까지 히트펌프 누적 350만대 보급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 중이다. 특히 2030년 이후 보급 속도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구조로, 업계에서는 이 시점을 국내 HVAC 산업 재편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다만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공동주택 시장 진입이 핵심 과제로 꼽혔다.
권 소장은 “현재는 단독주택과 공공건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지만, 결국 공동주택 시장이 열려야 산업 규모가 본격적으로 커질 수 있다”며 “전기요금 체계와 건축 규제, 설치 공간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원 정책과 함께 규제 병행 필요성도 강조됐다. 권 소장은 “프랑스·영국·독일·노르웨이 등 히트펌프 보급률이 높은 국가들은 설치 보조금뿐 아니라 신축 건물 내 화석연료 난방 금지 등 강력한 규제를 병행해 전환을 가속화했다”며 “국내도 단순 보조금 중심 정책만으로는 보급 확대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발표에 나선 오세신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 역시 공동주택 중심 보급 확대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실적 한계를 짚었다.
오 실장은 “유럽에서는 공동주택 대상 대형 히트펌프 적용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국내는 아직 초기 단계”라며 “전기요금 부담과 초기 설치비가 가장 큰 장애요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주택용 누진제 ▲축열조 설치 공간 부족 ▲소음 및 배관 문제 ▲국내 바닥난방 구조 등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오 실장은 “히트펌프는 단순 설비 산업이 아니라 건축·배관·전력·열관리 시스템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산업”이라며 “공동주택 표준모델과 시공 매뉴얼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오 실장은 중소 제조사를 위한 세액공제 등 진입장벽 완화 정책을 통해 기업 간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 접근성을 높일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기존 보일러 중심 난방 시장 인력이 히트펌프 기술 인력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도 정비 필요성도 언급됐다. 현재 히트펌프 시공이 난방공사업 범위에서 제외돼 있는 법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이용합리화법상 ‘특정열사용기자재’에 히트펌프를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현행법상 '난방공사'의 정의가 가스보일러나 기름보일러, 지역난방 같은 전통적인 화석연료 방식에 맞춰져 있다. 이 때문에 '히트펌프'는 법적인 '난방공사업' 시공 범위에 명확히 들어가 있지 않아 법적 관리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현재는 주택 설계도면 가이드라인에 히트펌프가 빠져있다. 이로 인해 건축가나 설계사들이 히트펌프를 넣고 싶어도 도면에 어떻게 공식적으로 반영해야 하는지 기준이 없는 실정이다. 이 역시 빠르게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히트펌프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태양광열(PVT) 결합 모델도 주요 화두로 제시됐다.
주홍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존 태양광이 전기 생산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열까지 함께 활용하는 방향으로 시장이 이동하고 있다”며 “PVT와 히트펌프를 결합하면 전기·급탕·난방·열저장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통합 에너지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PVT(PhotoVoltaic-Thermal)는 태양광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까지 함께 회수하는 기술이다. 일반 태양광이 태양에너지 일부만 전기로 활용하는 반면, PVT는 폐열까지 활용해 전체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주 책임연구원은 유럽 주요국들이 이미 PVT와 히트펌프 결합 모델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독일·프랑스·네덜란드·오스트리아 등은 PVT를 히트펌프 효율 개선 기술로 인정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전기와 열을 각각 분리 보상하는 체계까지 도입했다는 설명이다.
주 연구원은 “유럽은 단순 태양광 보급을 넘어 전기와 열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통합 활용하느냐 중심으로 정책 방향이 이동하고 있다”며 “PVT는 히트펌프 효율을 높이는 핵심 열원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