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원유·석유제품 스와프' 합의… '에너지 안보 공조' 맞손
중동발 호르무즈 공포에… 한일, ‘에너지 스와프’ 가동하기로 VLCC 용선료 폭등 속 ‘에너지 고립 섬’ 탈출 위한 지리적 인접성 극대화 위기 상황 앞에서 아시아 프리미엄 출혈 경쟁 종식 선언
[녹색경제신문 = 박성진 기자]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로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한국과 일본이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석유제품을 직접 맞교환하는 ‘에너지 스와프 동맹’을 맺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 19일 경북 안동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위기 상황 발생 시 양국이 비축한 에너지 자원을 즉각 상호 융통하는 ‘원유·석유제품 스와프 체계’ 구축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중동 정세 악화 등으로 어느 한쪽에 에너지 수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양국은 비축하고 있는 물량을 즉각 상호 융통해 공급 공백을 메우게 된다. 양국 정상은 위기 시 불필요한 수출 제한 조치를 자제하고 전방위적 안보 협력을 확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아울러 다카이치 총리는 한일 양국이 긴밀히 공조해 자원 공급망 위기를 겪는 여타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심화하자는 '아시아 에너지·자원 공급망 강화 파트너십(POWER Asia)'을 제안했고, 이 대통령은 이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합의는 과거 다자간 시장 개입이나 정부와 민간 기업 간의 상업적 대여에 그쳤던 에너지 공조의 틀을 깨고, 국가 대 국가가 실물 자원을 맞교환하기로 약속한 고도화된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지정학적으로 고립돼 있던 동북아의 두 ‘에너지 섬’이 각자도생 대신 실리적 연대를 선택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위기 속에서 강력한 공동 생존판을 마련한 것이란 평가다.
실제로 산업통상부와 일본 자원에너지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원유의 70~8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일본은 원유 수입량의 90% 이상을 호르무즈 해협 경유에 의존하고 있어 중동발 리스크에 극도로 취약한 구조다.
LNG 역시 세계 2위(일본)와 3위(한국)의 수입 대국이면서도 그동안 겨울철 한파나 공급망 위기 시 현물 물량을 선점하기 위해 서로 가격을 올리며 ‘아시아 프리미엄’이라는 출혈 경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중동 분쟁이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 양국은 더 이상 공멸할 수 없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물류 비용 측면에서도 이번 스와프는 현실적인 돌파구다. 글로벌 해운·조선 시황 분석 기관 클락슨리서치(Clarksons Research)에 따르면, 평소 하루 2~3만 달러 선이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용선료가 최고 50만 달러까지 폭등하면서 국내 정유 업계의 해상 운임 부담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미주나 아프리카 등 원거리 대체 조달은 수십 일의 시차가 발생하지만, 하루 이내 해상 수송이 가능한 한일 양국이 원유를 스와프하면 막대한 용선료 유출을 막고 단기 공급 공백을 즉각 메울 수 있게 된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녹색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지금처럼 중동 리스크로 수급이 어려운 위기 상황에서 매우 실효성 있는 조치”라며 “2000년대 중반 에너지 주요 수입국인 한·중·일 사이에서 에너지 스와프가 논의된 적이 있지만 외교적 이견 등으로 유야무야된 바 있다. 이번 한일 양국이 체결한 실물 스와프가 본격 가동되면 위기 상황에서 실질적인 안전판 역할을 하며 수급 안정화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일 양국은 구체적인 실행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원유·석유제품 스와프 및 상호 공급과 관련된 민관 대화를 장려하고, 세부 실행 방안을 공동으로 검토해 나갈 계획이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녹색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한일 양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크고, 소비 산업구조가 비슷하며, 지리적으로 가까워 위기 상황에 협력하면 시너지가 크다고 판단해 이번 스와프를 추진했다”며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합의를 바탕으로 향후 실무협의를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