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연대' 없는 삼성전자 노조, 설득력도 없다
동료 비극과 하청 노동 처우 외면한 '그들만의 투쟁' 연대 없는 요구엔 공감도 없어…5월 정신 상기해야
[녹색경제신문 = 정창현 기자] 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던진 메시지는 단순하다. 성공한 사람이 자기 성공을 모두 자기 능력의 결과로만 설명하기 시작하면, 그 성공을 함께 만든 운과 우연, 사회적 조건, 타인의 기여는 시야에서 지워진다는 것이다. 대신 그 자리에는 '내가 얻은 것을 굳이 나누지 않아도 된다'는 오만과 도덕적 면죄부가 들어선다.
삼성전자 노조의 태도는 이 경고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노조는 성과급 산정의 투명화와 OPI 상한 폐지, 글로벌 경쟁사 수준의 보상을 요구하며 인재 유출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인재들'과 자사의 막대한 이익을 함께 창출해 온 울타리 밖의 다른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외면해왔다.
노조 지도부의 발언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장은 하청업체와도 성과를 나눠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에 대해 "정규직은 공부도 많이 한 분들이고, 입사할 때 채용 조건이 달랐는데 일률적으로 같은 선에서 봐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하청 노조에서 몇 번 연락이 오긴 했는데 삼성전자 근로자를 위해서만 활동하기 때문에 일단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하청 노조가 원한다면 원청과 직접 교섭을 요구하면 될 일"이라고도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투쟁의 동력이 어떤 정서 위에 서 있는지를 압축해서 보여 주는 발언이다.
노조가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을 바탕으로 성과급을 더 달라고 투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은 아니다. 회사의 막대한 이익을 나눠 가지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연대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할 거라면 적어도 다수의 국민들이 편을 들어주고 공감해줄 것이란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3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화성사업장에서는 반도체 연구원 고(故) 김치엽 씨가 입사 1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은 HBM 개발 부진 속 사측의 과도한 성과 압박을 사망 원인으로 지목하며, 최근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삼성전자 노조가 인재 유출 방지를 명분으로 영업이익 15% 수준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바로 그 HBM 라인에서 벌어진 죽음이다.
하지만 현재 성과급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 노조는 김 씨의 죽음에 대해 목소리를 낸 적도,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측에 대책 마련을 요구한 적도 없다. 같은 라인을 거쳐 간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는 침묵하다가, 성과급 앞에서만 대동단결 하는 모습이 설득력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삼성전자 노조가 그동안 사회적으로 연대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왔다면 어땠을까. 하청·협력사 노동자의 처우와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 문제에 한 번이라도 의미 있는 목소리를 보탰다면. 그러한 연대의 정신이 이번 요구안에도 포함돼 있었다면. 노조가 요구하는 목소리는 지금과 전혀 다른 무게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여론 지형이 노조에 우호적이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성과급 요구 때문이 아니라, 그 요구가 서 있는 자리에 연대의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노조가 예고한 총파업 주간에 5월 18일이 함께 자리해 있다. 그날 광주 시민들이 보여 준 가장 빛나는 장면 중 하나는, 자기 집의 쌀독을 열어 모르는 이웃과 주먹밥을 나누고, 헌혈 줄을 길게 늘어뜨려 모르는 시민의 생명을 살린 모습이었다. 자기 울타리 바깥의 타인을 자기와 같은 운명 공동체로 받아들인 그 마음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을 가장 인간적인 기억으로 남게 만들었다. 46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에 그날과 같은 사회적 연대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는지를 묻는 일은 5월의 한국 사회가 해마다 마주해야 할 숙제다. 재계와 노동계도 그 숙제 앞에서 자유롭지 않다.
동시에 우리도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지금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누리는 정도의 호황과 막대한 이익이 다른 한국 기업의 몫이었다면, 그 회사의 임직원과 노조는 과연 달랐을까. 그게 '나'의 회사였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회사에 어떤 요구를 했을까. 우리의 시야 안에는 울타리 바깥의 다른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을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면,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그늘은 비단 삼성전자 노조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