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엔 드러낸 금융지주 속내…“생산적·포용금융 확대, 건전성 리스크 될 수도”
美 사업보고서에 새로 담긴 ‘위험 신호’…국내 공시엔 없던 내용 공개 “연체율·자산건전성 악화 우려”…생산적·포용금융 부담 지적한 금융지주들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정부가 추진 중인 생산적·포용금융 정책을 잠재적인 경영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이 내용은 국내 공시가 아닌 미국 증권시장 제출용 사업보고서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나 금융권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 정책 기조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를 국내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던 금융사들이 해외 투자자 대상 문서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우려를 담아낸 셈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2025회계연도 사업보고서를 지난달 말 미국 증시에 제출했다.
이들 금융사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하고 있어 현지 공시 의무를 부담한다. 다만 국내 4대 금융지주 가운데 하나금융지주는 이번 제출 대상에서 제외됐다.
눈길을 끈 부분은 사업보고서 내 ‘투자 위험요인(Risk Factors)’ 항목이다. 미국 시장 공시는 향후 발생 가능한 사업상 위험 요소를 폭넓게 공개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해 보고서에는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 관련 정책 위험이 새롭게 추가됐다.
KB금융은 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가 금융 취약계층과 저소득층 차주에 대한 금융 접근성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정책 기조에 맞춰 은행들이 영업 관행을 조정할 경우 고객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KB금융은 “정부의 포용금융 정책 대응 과정에서 사업 관행 변화가 요구될 수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연체율 상승과 자산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
신한금융 역시 유사한 시각을 드러냈다. 정부의 포용금융 확대 정책이 금융 취약계층 대출 접근성을 높이는 효과는 있지만, 이에 대응하기 위한 영업 전략 수정이 잠재적인 부실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위험요인으로 제시했다.
신한금융은 정책 대응 과정에서 대출 심사 및 영업 방식 변화가 불가피해질 수 있으며, 이러한 변화가 고객 부실 가능성을 키워 장기적으로 연체율 상승과 자산건전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우리금융은 생산적 금융을 직접 언급하며 보다 구체적인 우려를 드러냈다.
우리금융은 보고서에서 최근 한국 정부가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정책 과제로 제시하며 금융권에 전략 산업과 생산 부문에 대한 대출·투자 확대를 독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 가계대출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산업 지원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의미한다.
다만 우리금융은 이 과정에서 금융사가 본래 위험관리 기준상 지원하지 않았을 영역까지 금융 공급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금융은 “정책적 요구에 따라 기존과 다른 부문에 자금을 공급하게 될 경우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나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순이자마진(NIM)에 대한 압박 가능성도 언급했다. 대출 포트폴리오 변화와 정책 대응 비용 증가가 수익성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고, 사업 관행 변화가 대출 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내용이 단순한 의견 제시를 넘어 해외 투자자 관점에서의 위험 공시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 상장 기업들은 향후 투자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리스크를 폭넓게 공개해야 한다. 때문에 국내 공시보다 훨씬 보수적인 수준의 위험요인 기술이 포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만 생산적·포용금융 관련 문구는 지난해 사업보고서에는 없었던 항목이다. 올해 처음으로 새롭게 포함됐다는 점에서 최근 정부 정책 변화가 금융지주들의 리스크 인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 확대 자체는 정책적 필요성이 큰 과제이지만, 금융사의 건전성과 수익성, 위험관리 원칙 사이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가 향후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경기 둔화와 연체율 상승 우려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책금융 역할 확대가 금융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