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조 대미투자 맡길 초대 사장에 또 산업관료?…박원주 유력설에 커지는 ‘투자 전문성’ 논란
500조원대 투자기관인가, 산업부 정책 집행기구인가 박원주의 강점, 이번엔 약점 될 수도 월성 1호기 논란도 부담…법적 책임과 별개로 검증 필요 트럼프 정부 상대해야 하는데…정무형 관료로 충분한가 업계는 “KIC·PE·IB 출신이 맞다” 첫 인선부터 ‘낙하산’ 논란 피하려면 공개 검증해야
[녹색경제신문 = 한순구 기자]
3500억달러, 원화로 약 500조원대에 달하는 대미 투자 컨트롤타워의 초대 수장 인선을 두고 금융투자업계와 산업계 안팎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미전략투자공사 초대 사장에 박원주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박 전 수석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 에너지자원실장, 특허청장,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거친 정통 산업 관료다. 조선·반도체·에너지·공급망 등 전략산업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는 있다. 그러나 한미전략투자공사의 본질이 단순 산업정책 집행이 아니라 대규모 해외 투자 재원의 조성·관리·집행이라는 점에서 “초대 사장은 산업 관료보다 글로벌 투자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500조원대 투자기관인가, 산업부 정책 집행기구인가
한미전략투자공사는 다음 달 18일 대미투자특별법 발효에 맞춰 출범한다. 공사는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이행을 위한 핵심 기관이다. 이 가운데 조선업에 1500억달러, 에너지·반도체·핵심광물·인공지능(AI)·바이오 등 전략산업에 2000억달러가 투입된다. 전략산업 투자는 연간 200억달러 한도로 집행된다.
문제는 이 조직이 기존 산업부 산하기관과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한미전략투자공사는 투자 재원을 조성하고, 사업을 관리하며, 미국과 협의하고, 국회 보고 절차까지 거쳐야 한다. 사실상 국가 단위 투자은행이자 국부펀드형 운용기관에 가깝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500조원대 재원을 다루는 조직이라면 정책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투자 리스크를 보고 가격을 매길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한국투자공사(KIC) 운영위원, 국부펀드, 사모펀드(PE), 글로벌 IB 출신처럼 실제 대규모 자금을 운용해본 인사가 초대 사장으로 가야 한다는 게 업계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박원주의 강점, 이번엔 약점 될 수도
박 전 수석은 산업부 대변인, 기획조정실장, 산업정책실장, 에너지자원실장 등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 말기에는 산업부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청와대 경제수석에 발탁됐다. 당시 요소수 사태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 대응이 주요 배경으로 꼽혔다.
하지만 바로 그 경력이 이번에는 논란의 지점이 되고 있다. 한미전략투자공사가 산업부 색채가 강한 인물을 초대 사장으로 앉힐 경우, 조직이 독립적인 투자 플랫폼이 아니라 부처 정책 집행기구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조선, 반도체, 에너지 산업을 안다는 것과 500조원대 투자 재원을 굴릴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초대 사장 인선이 관료 순환 인사처럼 비치면 민간 자본과 해외 파트너를 끌어들이는 데도 한계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월성 1호기 논란도 부담…법적 책임과 별개로 검증 필요
박 전 수석을 둘러싼 과거 논란 중 가장 민감한 사안은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문제다. 박 전 수석은 당시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을 맡았다. 당시 야당은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박 전 수석을 고발했지만, 그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 만큼 이를 형사 책임처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미전략투자공사의 주요 투자 대상에 에너지, 원전, LNG, 전력망, 핵심광물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과거 에너지 정책 논란의 한복판에 있었던 인물이 초대 수장으로 적절한지에 대한 검증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법적 책임 여부와 별개로 500조원대 국가 투자기관의 초대 수장은 정치적 논란에서 최대한 자유로운 인물이어야 한다”며 “특히 에너지 분야 투자 판단이 필요한 조직이라면 과거 탈원전 논란과 연결된 인사를 놓고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 상대해야 하는데…정무형 관료로 충분한가
한미전략투자공사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조선, 반도체, 에너지, 핵심광물 등 민감한 산업 협상을 해야 한다. 관세, 보조금, 세액공제, 현지 고용, 기술 협력, 공급망 재편 문제가 동시에 걸려 있다.
초대 사장에게 필요한 역량은 국내 부처 조율만이 아니다.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 의회, 글로벌 금융기관, 현지 로펌과 투자은행까지 상대해야 한다. 사실상 외교·산업·금융을 동시에 다루는 자리다.
전직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이 자리는 장관급 산업정책 조정자가 아니라 미국과 투자 조건을 놓고 협상해야 하는 딜메이커에 가깝다”며 “관료 출신 인사가 안정감은 줄 수 있겠지만, 시장이 원하는 것은 투자 구조를 짜고 손실 가능성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KIC·PE·IB 출신이 맞다”
현재 후보군으로는 박 전 수석 외에도 최희남 전 한국투자공사 사장, 윤태식 전 관세청장 등이 거론된다. 이 가운데 금융투자업계에서는 KIC 등 국부펀드 운용 경험이 있는 인사나 사모펀드·글로벌 IB 출신 인사가 더 적합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한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한미전략투자공사는 이름 그대로 투자공사이지 산업진흥원이 아니다”라며 “산업정책 경험이 필요하다면 이사회나 운영위원회에서 보완하면 된다. 하지만 사장은 돈을 굴려본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초대 사장 인선은 조직의 성격을 결정한다”며 “산업부 관료가 가면 산업부의 정책 집행기관이 되고, 투자 전문가가 가면 민간 자본과 해외 금융기관을 끌어들이는 투자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첫 인선부터 ‘낙하산’ 논란 피하려면 공개 검증해야
정부는 한미전략투자공사를 세종시에 설립하고, 출범 초기에는 최소 인력으로 운영한 뒤 50명 안팎 규모로 조직을 확대할 계획이다. 공사 사장은 재정경제부 장관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임기는 3년이다.
초대 사장은 향후 500조원대 대미 투자 방향을 좌우하게 된다. 어떤 기업이 수혜를 받고, 어떤 산업에 자금이 배분되며, 미국과 어떤 조건으로 투자 협상을 할지가 모두 이 조직을 통해 결정된다.
그만큼 인선 과정도 투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전 수석이 최종 후보라면 정부는 그의 투자 운용 실적, 미국 측 네트워크, 월성 1호기 논란에 대한 입장, 이해충돌 가능성,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 관리 능력을 공개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한 국회 관계자는 “500조원짜리 기관의 초대 사장을 조용히 낙점하듯 정할 일은 아니다”라며 “산업정책 경력만으로 적임자라고 보기에는 이 조직이 맡을 돈과 권한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결국 쟁점은 박원주 개인의 이력만이 아니다. 한미전략투자공사를 산업부 중심의 정책 집행기관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글로벌 투자 전문가가 이끄는 국가 투자 플랫폼으로 만들 것인가. 초대 사장 인선은 그 방향을 보여주는 첫 시험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