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룰 전면 확대해도 해외 거래소는 '나 몰라라'…실효성 논란
닥사 소속 27개 거래소 "해외 거래소 협조 가능성 낮다" 공동 반발 두나무 1심 승소에도 FIU 강행…"규정 만들어도 집행 수단 없어"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트래블룰 적용 범위를 100만원 미만 소액 거래까지 전면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해외 거래소의 협조 가능성이 낮아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트래블룰은 가상자산을 이전할 때 송·수신자의 신원 정보를 확인·기록하도록 한 자금세탁방지 제도다. 흔히 '코인 실명제'로 불린다. 한국은 2022년 3월 25일 세계 최초로 트래블룰을 의무화했지만, 도입 당시에는 100만원 이상 거래만 규제 대상으로 삼았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며 이 기준금액을 아예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가상자산 이전거래 건수의 60%가 100만원 미만인 만큼, 소액 거래를 통한 규제 우회와 자금세탁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해외다. 개정안에는 국내 거래소가 해외 거래소·개인지갑과 거래할 경우에도 트래블룰을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실상 해외 거래소도 송·수신자 정보를 제공해야 거래가 처리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냐"는 반응이 나온다. 국내 가상자산사업자(VASP) 27곳은 지난달 29일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를 통해 당국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트래블룰은 국가마다 규제 차이가 크고, 정보 유출 우려 등으로 해외 거래소가 협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해외 거래소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개정 시행령상 해외 거래소·개인지갑과의 거래에서 고객 확인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면 거래가 제한된다. 에어드롭(무상 배포) 등 비정형적 입금도 마찬가지다. 기존에는 미신고 VASP로부터의 입금만 아니면 별다른 제약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송·수신업자 양측에서 확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수신사업자에게도 트래블룰 의무가 새로 부과되는 점도 논란이다. 업계는 "가상자산은 구조상 송신인이 수신인의 계좌에 일방적으로 전송하는 게 가능해 사실상 거래 거절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정보 확인이 안 된 입금은 반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반환 과정에서 시세가 변동되면 이용자가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설명이다.
규제 공백 문제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다. FIU는 100만원 미만 거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던 시절에도 거래소들을 제재해왔고, 두나무(과태료 352억원·영업일부정지 3개월), 코빗(과태료 27억원), 빗썸(과태료 368억원·영업일부정지 6개월), 코인원(과태료 52억원·영업일부정지 3개월) 등 주요 거래소들이 잇따라 수십~수백억원대 제재를 받았다. 지난달 9일 서울행정법원은 두나무가 FIU를 상대로 낸 영업정지 처분 취소 소송 1심에서 "100만원 미만 거래에 대한 구체적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두나무가 나름의 조치를 취한 만큼 고의·중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두나무 손을 들어줬다. 업계에선 "이제 와서 법으로 굳히는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FIU는 "트래블룰 확대를 포함한 이번 대책을 통해 가상자산 거래의 투명성과 자본시장 신뢰를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려면 해외 거래소와의 공조 체계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규정은 만들었지만 집행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