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거래소 '5분 잔고대조' 이달 말 데드라인…업비트 빼고 '속도전'
빗썸 62조 오지급 사태 후 금융위 5월까지 의무화…검증 시간 부족 우려 업비트 이미 운영 중…나머지 거래소는 촉박한 일정에 사고 리스크 우려
[녹색경제신문 = 박금재 기자]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들이 5분 단위 잔고 대조 시스템 의무화 데드라인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업비트를 제외한 나머지 거래소들은 촉박한 일정에 오히려 새로운 시스템 리스크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 2월 6일 빗썸에서 발생한 역대급 오지급 사고다. 빗썸은 695명을 대상으로 랜덤박스 이벤트 보상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직원이 단위 입력을 잘못해 1인당 2000원 상당의 비트코인 대신 비트코인 2000개(약 1900억원)를 지급했다.
총 오지급 물량은 62만개로 당시 시세 기준 약 60조원에 달했으며 이는 빗썸 실제 보유량 4만6000개의 13배를 웃도는 수치였다. 사고 인지 35분 만에 거래·출금이 차단됐고 전체의 99.7%인 61만8212개가 회수됐지만 125개(약 130억원)는 회수되지 못했다.
사고 당시 일부 이용자들이 오지급받은 비트코인을 매도하면서 빗썸 내 비트코인 시세가 한때 9800만원에서 8100만원으로 급락하는 혼란도 빚어졌다. 2018년 삼성증권의 유령 주식 사태와 판박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은 사고 직후 긴급대응반을 꾸려 약 한 달간 5대 거래소의 이용자 자산 보관현황과 내부통제 시스템을 전수 점검했다. 그 결과 빗썸 등 일부 거래소가 잔고 대조를 하루 단위로만 수행하고 있었고 대부분 명확한 내부 기준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작업이 개입되는 고위험 거래 처리 과정 전반에 걸쳐 리스크 식별과 통제가 소홀했다는 점도 확인됐다. 신진창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4월 6일 간담회에서 "오지급 사태의 표면적 원인으로 지목된 인적 오류를 넘어 거래소에 누증된 구조적·관행적 문제점도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는 4월 6일 5대 가상자산거래소 대표와 DAXA가 참석한 간담회를 열고 이달까지 모든 거래소에 5분 주기 상시 잔고 대조 시스템 구축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새로운 제도의 핵심은 장부상 보유량과 실제 보유량을 5분마다 자동으로 대조하는 것이다.
대규모 불일치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거래를 차단하는 킬스위치 기준도 도입된다. 외부 회계법인 실사 주기는 기존 분기에서 월 단위로 단축되고 공시 범위도 종목별 지갑 및 장부상 보유 수량까지 확대된다. 고위험 거래에는 제3자 교차 검증 의무화, 금액별 다중 승인 체계가 적용된다. 위험관리책임자(CRO) 임명과 위험관리위원회 구성도 의무화된다. 이번 제도 개선 내용은 향후 2단계 가상자산법에 반영돼 위반 시 영업정지·과태료·임직원 제재 근거가 마련될 예정이다.
문제는 데드라인이 촉박하다는 점이다. 업비트는 이미 5분 단위 잔고 대조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나머지 거래소들은 구축 작업이 한창이다. 코인원 관계자는 "당국과 논의한 시일에 맞춰 해당 시스템 구축·도입하기 위해 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거래 데이터 규모가 방대한 데다 5분 단위로 장부와 일치시키는 작업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코인별로 전송 속도와 확인 시간이 서로 다른 데다 점검 과정에서도 이용자의 입출금과 거래가 동시에 발생하는 구조여서 실시간 정합성을 맞추는 데 난이도가 높다.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거래소들은 "이용자 보호를 위한 필수 투자"라며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지만 검증 시간이 부족해 오히려 새로운 사고 위험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의무화의 배경에는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규모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달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현재 약 1100만명의 이용자가 70조원 규모의 가상자산을 거래소에 맡기고 있다.
이번 빗썸 사태에서도 드러났듯 내부통제 시스템의 허점은 단순한 운영 리스크를 넘어 시장 전체의 가격 왜곡과 투자자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당국은 자율규제 이행 여부를 분기별로 점검하고 위반 시 업계 차원의 제재도 병행할 방침이다. 데드라인이 다가오는 만큼 거래소별 시스템 구축 현황과 완성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