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 할증료 5배 폭등... ‘6개월 시차’ 두고 하반기 물가 때린다

HMM·팬오션 등 할증료 최대 5배 폭등 ‘6~9개월 시차’ 두고 하반기 실물경제 강타 예고

2026-04-21     한승진 기자

[녹색경제신문 = 한승진 기자]

상선[사진=연합뉴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해운 유류할증료가 최대 5배까지 폭등하면서, 하반기 '물류발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등이 켜졌다. 해상 물류비 상승은 약 6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특성이 있어, 현재의 할증료 인상이 올 하반기 실물 경제를 타격하는 '지연된 인플레이션'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HMM, 팬오션 등 국적 선사들은 유가 급등에 따른 손실 보전을 위해 유류할증료를 일제히 상향했다. HMM은 남중국행 노선의 저유황유 할증료를 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20달러에서 100달러로 5배 올렸고, 팬오션 역시 140달러선까지 인상했다. 장금상선은 아예 ‘긴급 유류할증료(EBS)’ 카드를 꺼내 들며 TEU당 최대 150달러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장금상선 관계자는 “유류할증료는 이익 극대화 수단이 아니라 운항 적자를 막기 위한 실비 보전 개념”이라며 “유가 상승 폭이 운임 상승분을 압도하고 있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해운 유류비에 대한 정부의 직접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다. 한국해운협회 관계자는 “할증료는 이용 주체인 화주가 부담하는 구조”라며 “지원이 있다면 산업부나 중기부에서 물류 바우처 등을 통해 수출 화주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선사의 비용 부담이 화주를 거쳐 제품 가격으로 전이되는 연쇄 고리만 남은 셈이다.

여기에 최근의 '고환율' 기조는 물류비 부담을 배가시키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해상 운임과 유류할증료는 대개 달러화로 결제되기 때문에, 환율 상승은 수입 화주가 체감하는 실질 비용을 인상 폭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환율이 수입 물가를 밀어 올리는 상황에서 물류비용까지 가세하며 원가 압박을 전방위로 넓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과거 물류 대란 당시의 흐름이 재현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이 2022년 3월 발표한 '해상 운송비와 인플레이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43개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해상 운송비가 2배(100%) 오를 경우 소비자물가(CPI)는 약 0.7%포인트(p)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운 물류비는 항공과 달리 물가에 전이되는 속도가 느리다. 한국은행 역시 물류비 상승이 수입 물가를 거쳐 실제 물가에 반영되기까지 약 2~3분기(6~9개월)의 시차가 발생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즉, 지금 발생한 유류비 폭등의 여파는 올해 9월에서 11월 사이 하반기 물가에 본격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고금리와 원자재 가격 상승을 견뎌온 국내 제조 및 무역 기업들의 '마진 버퍼(여유 폭)'가 한계치에 다다랐다는 점도 치명적이다. 경기도 소재의 한 중소 수출입 무역업체 관계자는 "기본 운임도 부담인데 유류할증료까지 몇 배로 뛰니 이제는 물건을 팔아도 물류비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수준"이라며 "그동안은 거래처와의 관계 때문에 가격 인상을 억제해왔지만, 이대로라면 적자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추가적인 하반기 납품 단가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대기업에 비해 원가 상승분을 자체 흡수할 여력이 부족한 중소·중견 기업들은 물류비 추가 인상을 제품 가격에 즉각 반영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단순히 지연된 인플레이션을 넘어, 생존을 위한 기업들의 '밀어내기식 가격 인상'이 하반기 물가 불안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해운은 곡물, 원자재, 에너지 등 산업 필수재의 핵심 운송 수단이다. 유류할증료 상승은 원재료 수입가 인상을 부르고, 이는 다시 제조 원가 가중을 거쳐 가구, 가전, 식료품 등 최종 소비재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효과’를 일으킨다. 물류비 상승은 단순히 해운업계 내부의 문제를 넘어 국가 물가 관리 기조를 흔드는 복합 변수다.

현재의 할증료 인상을 단순한 비용 조정으로 간주할 경우 하반기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 파고에 직면할 수 있다. 정부가 수출 화주에 대한 정교한 지원책을 서둘러 마련해 물가 전이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