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복상장 원천 금지 공식화...대기업 계열사 IPO·자금조달 ‘경고등’
금융당국, 중복상장 금지 공식화 SK에코플랜트·올리브영·HD현대로보 등 IPO ‘개점휴업’ 일각에선 기업 신사업 동력 상실 지적도
[녹색경제신문 = 나희재 기자] 정부가 이른바 ‘쪼개기 상장(중복상장)’에 제동을 걸면서 기업공개(IPO)를 추진해온 대기업 계열사들의 자금 조달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 상장을 통한 외부 자본 유입이 사실상 막히면서, 기업들은 합병·지분 매입 등 대체 시나리오를 본격 검토하는 분위기다. 특히 중복상장 금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발표가 지연되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은 한층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18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에서 금융당국은 중복상장에 대해 상장 심사 개선 등 제도 보완 수준을 넘어, 원칙적으로 제한하되 예외는 엄격히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IPO를 전제로 자금 조달 계획을 세워온 대기업 계열사들은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일반주주 보호가 당연시되는 정상적인 자본시장을 만들겠다”며 “모회사와 자회사의 동시 상장으로 일반주주의 권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고, 엄격한 심사를 통해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외부 차입 등 신용 기반 조달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부 현금흐름만으로는 배당 확대와 설비 투자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기에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시급한 대응이 요구되는 곳은 SK에코플랜트다. 회사는 2022년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6000억원 규모의 전환우선주(CPS)를 유치하며 2026년 7월까지 상장을 완료하는 조건을 설정했다. 기한 내 IPO가 무산될 경우 배당률이 단계적으로 상승하는 구조로, 재무 부담이 급격히 확대될 수 있다.
다만 최근 SK에코플랜트는 FI들이 보유한 지분을 매입하겠다는 현금 상환안을 제시하며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알려졌다.
HD현대로보틱스는 물적분할 후 재상장이라는 구조 자체가 규제와 정면 충돌하는 사례다. 회사는 올해 초 주관사단을 선정하며 IPO에 속도를 냈지만, 모회사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정책 리스크와 결합되며 상장 추진 동력이 약화되는 모습이다. 대규모 투자 재원 확보가 시급한 상황에서 자금 조달 경로 재설정이 불가피해졌다.
IPO 대신 ‘합병 카드’가 부상하는 사례도 있다. CJ올리브영은 지주사 CJ와의 합병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지분 구조상 합병을 통해 오너 일가의 지주사 지배력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에너지 역시 프리 IPO 이후 본 IPO보다는 지주사와의 합병 또는 지분 교환 시나리오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롯데바이오로직스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송도 생산시설 구축을 위해 이미 1조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했지만, 추가 투자 재원 확보가 필요한 상황에서 IPO가 막힐 경우 대체 자금 조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IPO 시장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책 방향을 둘러싼 비판도 적지 않다. 신사업 육성을 위해 외부 자본을 유치하고 독립 법인으로 성장시키는 ‘분사-상장’ 모델이 사실상 차단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시장에서는 전면 금지보다는 주주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방식의 정교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식매수청구권 확대나 신주 우선배정 등 보완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괄 규제에 나선 것은 과도한 접근이라는 평가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사들의 상장 예비심사 청구 자체가 줄어들면서 당분간 IPO 시장 냉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복상장 허용 기준과 예외 범위를 조속히 명확히 하지 않으면 자본시장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책 불확실성이 길어질수록 기업과 투자자 모두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