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빠진 HMM 매각…중동 전쟁·부산 이전 '내우외환'

이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에 유가·보험료 급등 비상 정부, 지방선거 앞 '부산 이전' 압박…노조 총파업 예고

2026-03-04     정창현 기자

[녹색경제신문 = 정창현 기자] 산업은행이 추진 중인 국적선사 HMM의 매각 작업이 겹겹이 쌓인 악재로 인해 표류하고 있다.

당초 조속한 매각을 검토하던 산업은행은 정부의 본사 부산 이전 추진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공격으로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HMM의 기업가치 하락과 매각 지연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4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이란 공격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며 HMM의 경영 불확실성이 커졌다. 호르무즈 해협은 국내 유조선과 벌크선의 핵심 항로로, 이곳이 봉쇄될 경우 선박 운항 시간 연장에 따른 운송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 비록 운임이 일부 오를 순 있으나, 원유 가격 급등과 보험료 인상 등 비용 부담이 이를 상쇄해 실익은 크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현재 HMM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 중인 컨테이너선 1척을 두바이항에 정박시키고 긴급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영국해사무역기구(UKMTO) 등 외신에 따르면 이미 이란혁명수비대의 선박 피격으로 인명 피해까지 발생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급망 불안으로 운임이 일시 상승할 수 있지만, 세계 경제 위축으로 물동량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매각의 또 다른 걸림돌은 '본사 부산 이전'을 둘러싼 정치적 압박이다.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HMM 매각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정부가 추진 중인 부산 이전이 완료된 다음에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동남권 민심을 고려한 정부 여당의 기조에 발을 맞춘 것으로, 당분간 매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사를 공식화한 셈이다.

[사진=HMM]

이와 관련 HMM 내부의 반발은 극에 달하고 있다. HMM 육상노동조합은 3일 입장문을 통해 "기업의 내실보다 정치적 목적을 우선시하는 본사 이전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노조 측은 이번 달 주주총회에서 우호적인 사외이사 선임을 시작으로 5월 임시주총에서 본사 소재지 변경이 확정될 것으로 보고, 이사진에 대한 배임죄 고소와 주총 의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노조는 단체행동의 수위도 높이고 있다. 3월 2주차부터 장외투쟁에 돌입하며, 다음 달 2일에는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의 총파업 결의대회를 계획 중이다. 특히 이들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활용해 부산 이전 안건이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총력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경영진과 노조 간의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며 내부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해수부 이전과 동남권 투자공사 설립과 더불어 "HMM 이전도 곧 하겠다"며 국정과제 완수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실적 저하 우려와 노사 갈등,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HMM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기업을 찾기는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HMM의 최대 주주는 작년 9월 말 기준 지분 35.42%를 보유한 산업은행이며, 한국해양진흥공사가 35.08%로 뒤를 잇고 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거대 해운사가 정치적 논리와 글로벌 분쟁이라는 거친 파도에 휩쓸리면서, '국적 선사 정상화'라는 본래의 매각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