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벌었지만 남은 질문…삼성증권 '증권사인가 은행인가'
순이익 1조 입성…브로커리지·WM 이끈 사상 최대 실적 IB 투자 경쟁 본격화…삼성증권만 다른 수익 구조 발행어음 인가 지연 장기화…투자 엔진 제약 성장률 격차 커지자 커진 '삼성은행' 논쟁
[녹색경제신문 = 정수진 기자] 삼성증권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순이익 1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국내 증시 호황 속 브로커리지와 자산관리(WM) 부문이 실적 성장을 이끌었지만, 시장의 시선은 성과의 규모보다 수익 구조에 향하고 있다. 고객자산 기반의 안정적 영업 모델이 위기 국면에서는 강점으로 평가받지만, 강세장에서는 자본시장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모험자본을 공급하고 위험을 감수하느냐가 증권사의 경쟁력으로 부각되면서 시장에서는 삼성증권을 두고 ‘증권사인가, 은행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지난해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 1조84억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순이익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증시 호황과 거래대금 증가가 맞물리며 브로커리지와 WM 부문이 실적 성장을 이끌었다.
실제 순수탁수수료 수익은 7463억원으로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 리테일 고객자산은 431조9000억원으로 42.8% 늘었고, 삼성증권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히는 고액자산가(HNWI) 고객 수도 48.5% 증가한 약 39만명 수준까지 확대됐다. 개인 고객 기반 확대가 안정적인 수수료와 이자 수익 증가로 이어진 모습이다.
문제는 실적의 '질'이다. 삼성증권 수익의 상당 부분이 예탁금, 신용융자 이자, 자산관리 수수료 등 고객자산 기반에서 발생하면서 안정성은 강화됐지만, 자기자본을 활용한 투자 확대나 신성장 동력 측면에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경쟁사들과 비교하면 사업 전략의 차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미래에셋증권은 스페이스X 등 글로벌 혁신기업 투자와 대체투자를 확대하며 투자은행(IB) 역량 강화에 집중해 왔다. 이러한 전략을 기반으로 지난해 해외법인 세전이익은 전년 대비 200% 증가한 4981억원을 기록하는 등 해외 투자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NH투자증권 역시 AI 반도체와 우주항공 등 신산업 분야에 직접 자본을 투입하며 모험자본 공급 기능을 확대하고 있으며, 한국투자증권 또한 해외 현지 투자와 글로벌 IB 사업을 늘리며 투자 기반 수익 구조 다변화에 나선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주요 증권사들이 자기자본을 활용한 투자 확대를 통해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삼성증권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해외 대체투자 등 고위험 자산에 대한 직접 베팅보다는 고객 신용융자 이자, 수수료, 기업공개(IPO) 주관 중심의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유지해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도적 한계도 존재한다. 삼성증권은 2017년 이후 발행어음 사업에 진입하지 못하면서 조달 기반 확대가 제한돼 왔다. 발행어음 인가를 받은 대형 증권사들이 조달 자금을 활용해 투자 규모를 키운 것과 달리, 삼성증권은 상대적으로 자기자본 활용도가 낮은 구조가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최근 코스피 상승과 함께 투자은행(IB) 수익이 확대되는 국면에서 증권사 간 성장 속도 격차도 뚜렷해지고 있다. 삼성증권의 지난해 영업이익과 순이익 증가율은 각각 14.2%, 12.2%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한국투자증권은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82.5% 증가한 2조3427억원, 순이익은 79.9% 늘어난 2조135억원을 기록하며 증권업계 최초로 순이익 2조원을 넘어섰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영업이익 1조9150억원, 순이익 1조5935억원으로 각각 61.2%, 72.2% 증가했다. 키움증권과 NH투자증권도 30~50%대 성장률을 기록하며 실적 개선 흐름을 보였다.
이에 비해 삼성증권의 실적 상승 속도는 상대적으로 완만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실적 순위 역시 2024년 2위에서 최근 5위권으로 내려오며 성장성 논쟁에 불을 붙였다.
삼성증권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의 핵심 경쟁력은 투자 역량인데 삼성증권은 대형 자산관리 하우스에 가까운 모습"이라며 "안정성 측면에서는 강점이지만 시장에서 '삼성은행'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러한 성향은 대주주 구조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삼성증권의 최대주주가 보험사인 삼성생명인 만큼 자산 보존과 리스크 관리 중심 문화가 조직 전반에 자리 잡았고, 공격적 투자은행보다는 리테일 기반 자산관리 모델이 강화됐다는 설명이다.
한편 삼성증권은 이를 전략적 선택으로 보고 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투자 규모가 작다는 평가에 대해 "단순한 투자 금액 비교일 뿐"이라며 "공격적 확장보다 안정성과 리스크 관리를 우선해 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실제 레고랜드 사태 등 시장 불안 국면에서 일부 증권사들이 유동성 압박과 제재를 겪은 것과 달리 삼성증권은 비교적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유지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투자 기능 확대 의지도 밝히고 있다. 삼성증권은 2028년까지 중소·벤처기업과 신기술 분야에 총 5조원 규모의 모험자본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며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