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업계, 중국발 공급과잉에 구조적 적자 고착…구조조정 출발선서 제자리

주요 석유화학사 적자 지속, 범용 중심 사업구조 한계 드러나 정부 주도 구조개편 추진에도 산단별 논의 속도 차이 석유화학과 정유업계 실적 격차에 구조조정 인식 온도차

2026-02-11     정창현 기자

[녹색경제신문 = 정창현 기자]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중국발 공급과잉과 글로벌 수요 둔화의 이중고 속에서 장기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이 2024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줄줄이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면서, 업황 악화가 일시적 조정이 아닌 구조적 불황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롯데케미칼과 한화솔루션,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대부분 석유화학 부문에서 적자를 냈다.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 사업 부진으로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한화솔루션 역시 케미칼 부문의 마진 악화로 적자 흐름을 이어갔다. LG화학은 연결 기준으로는 흑자를 유지했지만, 배터리 자회사 실적을 제외하면 석유화학을 포함한 본업은 적자로 돌아섰다. 사실상 주요 업체 가운데 석유화학 사업에서 안정적인 흑자를 유지한 곳은 드물었다.

이 같은 부진의 배경에는 중국 화학기업들의 대규모 증설로 촉발된 공급 과잉이 자리 잡고 있다.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범용 제품 가격이 장기간 약세를 보이면서, 나프타분해설비(NCC) 중심의 사업구조를 유지해 온 국내 기업들은 수익성 방어에 한계를 드러냈다. 고부가 제품 비중이 낮은 구조 자체가 업황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형태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업황 악화가 장기화되자 정부는 석유화학 산업 전반에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을 요구하고 나섰다. 여수·대산·울산 등 주요 석유화학 단지에 입주한 기업들은 생산설비 감축과 고부가 제품 확대를 골자로 한 사업재편 계획안을 제출했으며, 정부는 이를 토대로 금융·세제 지원과 규제 완화 여부를 검토 중이다. 다만 최종 사업재편계획서 제출과 승인 절차는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롯데케미칼

현재까지 구체적인 심사 단계에 올라간 사례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추진 중인 대산 산단 프로젝트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승인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업계에서는 첫 승인 사례가 나와야 정부의 지원 기준과 구조조정 가이드라인이 명확해질 것으로 보고 있지만, 심사가 길어지면서 다른 산단의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늦춰지고 있다.

산단별로도 구조조정 논의의 온도차가 뚜렷하다. 대산 산단이 비교적 앞서 있는 반면, 울산과 여수 산단은 설비 통합과 감축 범위를 두고 기업 간 협의가 이어지고 있는 단계다. 자금 부담, 인력 조정, 노사 문제까지 얽혀 있어 실제 구조조정이 실행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석유화학과 정유 업계 간 인식 차이도 구조조정 속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적자가 누적된 석유화학 기업들은 정부 대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정제마진 개선으로 흑자를 유지 중인 정유사들은 상대적으로 관망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실적 격차가 구조조정 필요성에 대한 체감 온도를 가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 업황은 단순한 경기 사이클 조정이 아니라 사업 구조 자체를 다시 짜야 하는 국면”이라며 “정부의 첫 구조조정 승인 사례가 나오기 전까지는 기업들도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설비 감축과 통합은 결정 자체보다 실행 과정이 더 복잡하다”며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최소 1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