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는 넘치고 범죄는 늘었다… ‘이전 공약’만 남발되는 교정 인프라의 현실
과밀 수용·가석방 확대·이전 표류… 치안 체계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한 방에 여섯 명이 기준인데 여덟 명까지”… 이미 붕괴된 수용 여건 범죄는 줄지 않는데 수형자는 늘었다 수사도 막힌다… “구속시키고 싶어도 넣을 곳이 없다” 과밀 해소책은 가석방 확대… 임시방편 논란 20년째 미뤄진 이전… 전주교도소가 보여주는 행정의 민낯 그런데 정치권은 ‘이전 공약’만 던진다 교도소는 혐오시설인가, 국가 인프라인가 “교도소가 너무 좋다”… 강경 여론도 분출 인간 존엄성 논쟁… 그러나 현장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결국 해법은 ‘늘리는 것’이다
[녹색경제신문 = 한순구 기자]
전국 교정시설의 과밀 수용 문제는 더 이상 우려의 단계가 아니다. 법무부와 국회 자료를 종합하면, 국내 교정시설 열 곳 중 여덟 곳은 이미 정원을 초과해 운영 중이다. 평균 수용률은 120%를 넘고, 일부 노후 교도소의 경우 130%를 상회한다. 애초 6명 수용을 기준으로 설계된 방에 8명 이상이 생활하는 상황이 적지 않다.
1970년대에 지어진 교도소들이 여전히 주력 시설로 사용되면서, 공간 부족은 상시화됐다. 특히 여성 수용자의 경우 정원의 두 배를 넘는 시설도 확인되고 있다. 전주교도소는 수용률이 120%를 웃돌고, 여성 수용자는 정원 대비 200%에 육박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범죄는 줄지 않는데 수형자는 늘었다
교정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른 배경에는 범죄 구조의 변화가 있다. 전체 범죄 발생 건수는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사기·보이스피싱 등 경제범죄와 마약 범죄는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마약사범은 최근 5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고, 반복성이 강한 사기 범죄 역시 재범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수형자 수는 2022년 이후 빠르게 증가해 현재 약 6만 명 수준에 이르렀다. 3년 기준 재범률은 24% 안팎으로 유지되고 있는데, 절대적인 수형자 수가 늘면서 교정시설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수사도 막힌다… “구속시키고 싶어도 넣을 곳이 없다”
교도소 과밀 문제는 교정 행정에 그치지 않고 수사 단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찰과 검찰 현장에서는 구속영장을 발부받고도 수용 여력이 없어 집행이 늦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결국 불구속 수사가 늘어나고, 사건 처리가 지연되며, 피해자 보호에도 공백이 생긴다는 지적이다.
현장 수사관들 사이에서는 “교도소가 막히면 치안 시스템 전체가 막힌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과밀 해소책은 가석방 확대… 임시방편 논란
정부는 교정시설 과밀을 해소하기 위해 가석방 확대 정책을 선택했다. 월평균 1천 명 수준이던 가석방 허가 인원은 올해부터 1천3백 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법무부는 재범 위험도가 낮은 수형자를 중심으로 선별 가석방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설을 늘리지 않고 사람만 내보내는 방식은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사기·마약 등 재범 가능성이 높은 범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가석방 확대는 사회적 불안만 키운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20년째 미뤄진 이전… 전주교도소가 보여주는 행정의 민낯
전주교도소 이전 사업은 교정 인프라 행정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72년 개청한 전주교도소는 시설 노후와 과밀 문제로 20년 전부터 이전이 논의됐지만, 각종 행정 절차와 예산 문제로 완공 시점은 2019년에서 2027년, 다시 2030년으로 계속 미뤄지고 있다.
보상비는 당초 70억 원에서 500억 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불어났고, 설계비는 예산에 반영됐지만 토지 보상비와 이전 보상비 약 63억 원이 부족해 착공 시점조차 불투명하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토지값과 사업비만 치솟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이전 공약’만 던진다
이런 상황에서 교도소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약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허석 전 순천시장은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순천교도소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서면 선평리에 위치한 순천교도소를 외곽으로 옮기고, 기존 부지에는 박물관·미술관 등 문화시설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교정시설 이전은 법무부 동의, 타당성 조사, 예비타당성 검토, 도시계획 변경, 입지 선정과 토지 매수까지 최소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사업이다. 순천교도소 역시 인근 아파트 단지 조성 이후 이전 요구가 제기돼 왔지만, 현실성 없는 구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역 안팎에서는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박물관을 지어 누가 오느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온다. 교도소를 없애겠다는 말은 표를 얻기 위한 ‘눈앞의 사탕’일 뿐, 실제로는 신축이나 증축을 통해 교정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교도소는 혐오시설인가, 국가 인프라인가
전문가들은 교도소를 단순한 혐오시설로 보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교정시설은 수천 명의 교정 공무원과 의료·급식·시설 관리 인력이 상주하는 국가 핵심 인프라다. 가족 단위 이주와 소비 유발 효과도 크다.
태백, 원주, 창원 등 일부 지역에서는 교도소 이전·신축을 지역 경제 회복의 계기로 삼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부산처럼 주민 반발과 정치적 부담으로 이전 논의가 표류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교도소가 너무 좋다”… 강경 여론도 분출
교정 정책을 둘러싼 여론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교도소가 너무 편해 범죄 억지력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교정 복지를 축소하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일본과 중국의 엄격한 교정 환경을 언급하며, “잠깐 들어가 쉬다 나오는 곳이 아니라 들어가기 무서운 곳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형제 실질적 재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고, 극단적으로는 태형과 같은 체벌까지 거론하는 여론도 등장했다. 이는 제도 도입 가능성보다는 현 교정 정책에 대한 강한 불신과 분노가 표출된 결과로 해석된다.
인간 존엄성 논쟁… 그러나 현장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과밀 수용과 쪽잠, 새우잠 등 수용 환경이 인간 존엄성을 침해한다고 여러 차례 개선을 권고해 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수형자의 편의보다 교정 인력의 안전과 피로 관리가 우선”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교정 공무원들은 과중한 업무와 인력 부족 속에서 탈진 직전까지 몰리고 있다. 교정 환경 논쟁이 수형자 중심으로만 흐르면서, 정작 현장을 지키는 인력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해법은 ‘늘리는 것’이다
전문가들과 현장 관계자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해법은 명확하다. 가석방 확대나 이전 공약이 아니라, 교정시설의 신축과 증축을 통한 물리적 수용 능력 확보다. 특히 인구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에 교정시설을 분산 배치하는 것은 국가 치안과 지역 균형 발전을 동시에 고려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교도소 문제는 범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사 지연, 사회 불안, 재범 증가로 이어지는 치안 전반의 문제다. 교정시설을 외면한 채 문화시설과 재개발만 외치는 공약은 현실을 외면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