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VAC 줌업] 최대 전장은 B2B, 친환경성능·고도화 옷 입고 '슈퍼싸이클'②
물류창고·공장·빌딩·공공기관 등 정통 B2B 시장 성장세 칠러 앞선 LG, 삼성은 플랙트 인수로 단기간에 벌크업
HVAC(난방, 환기, 냉방) 시장은 최근 단순한 기계 산업을 넘어 '미래 핵심 기술의 집약체'로 불리며 기업 포트폴리오의 중심축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과 AI 산업의 급격한 팽창이 배경이다. 이 시장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앞다퉈 플레이어로 뛰어들면서 국내 주목도도 수직상승하고 있다. 이에 HVAC 시장이 새롭게 개화한 배경과 양사의 사업•기술 전략을 구체적으로 짚어본다.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글로벌 B2B 공조(HVAC) 시장을 차세대 성장 축으로 삼고 다른 해법으로 일합을 겨룬다. LG전자가 칠러와 히트펌프를 앞세워 대형·중소형 상업시설 전반을 아우르는 ‘정공법’을 택했다면, 삼성전자는 M&A와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후발주자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는 전략이다.
양사의 전략은 B2B HVAC 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맞물리며 힘을 얻고 있다. 상업용 공조 시장에서 노후 설비 교체와 에너지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단발성 수요가 아닌 장기적인 ‘수주 파이프라인’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공조 시장의 슈퍼 사이클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이슈가 집중된 데이터센터를 제외하더라도 물류창고·공장·빌딩·공공기관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상업용 HVAC 영역에서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삼성과 LG 모두 이 시장을 단순한 설비 판매가 아닌, 플랫폼과 애프터 서비스를 묶은 장기 사업으로 재정의하며 주도권 경쟁에 나선 모습이다.
대형 상업시설, 칠러 정통강자 LG와 AHU로 비집는 삼성
상업용 공조 시장은 규모와 용도에 따라 요구 기술이 다르다. 대형 상업시설에서는 LG전자가 상대적 우위를 점해왔다는 평가가 일반적인데, 핵심은 칠러(Chiller) 기술이다. 칠러는 냉매 대신 차갑게 만든 물을 순환시켜 건물을 식히는 초대형 냉각 설비로, 한 대가 가정용 에어컨 수백 대에 맞먹는 냉방 능력을 갖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2011년 LS엠트론 공조사업부 인수를 통해 칠러 원천 기술을 확보했고, 고효율 압축기 기술을 바탕으로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렸다. 물을 사용하는 구조상 냉매 배관 거리 제약이 없어 대형 현장에서 유지보수와 운영 효율 면에서 강점이 뚜렷하다. 현재 대형 상업시설에서 칠러가 일반적으로 쓰이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그간 상대적으로 대형 HVAC에서 뒤쳐져 있었다. 삼성이 그간 주력한 것은 가변 냉매 유량(VRF)과 덕트리스 방식인데 둘 다 가정용 혹은 중소형 시설용으로, 대형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기술적 바탕이 없었다는 평가다.
그러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1월 독일의 플랙트(Fläkt) 그룹을 인수하며 판을 흔들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한화 약 2조 5000억원 규모로(지분 100%) 플랙트를 인수했는데, 이는 HVAC 시장에서 손꼽히는 대형 M&A로 평가된다.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100년 역사의 플랙트는 AHU(Air Handling Unit, 공기조화기)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다. AHU는 칠러가 만든 찬물을 이용해 공기를 정화하고 온·습도를 조절한 뒤 실내로 공급하는 설비로, 병원·클린룸·데이터센터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대형 영역에서는 두 회사의 기술이 정면 충돌하기보다 보완적으로 맞물리는 구조라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현재 플랙트는 공기 제어에 강점이 있는 반면, 대형 칠러 라인업은 상대적으로 투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플랙트가 압도적인 강점을 갖고 있는 건 AHU고 칠러 라인업은 부차적이기 때문에 LG와 협업하는 현장들도 있다"며 "다만 삼성이 플랙트를 인수하면서 칠러 라인업을 확대해 밸류체인을 강화하는 방향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 향후 경쟁구도가 더 본격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네트워크 망에서 갈리는 중소형 B2B 시장... LG선두, 삼성 맹추격
중소형 HVAC 시장에서도 LG전자가 자체 기술력으로 우위를 점한 가운데, 삼성전자가 자본력을 바탕으로 격차를 좁히는 그림이 펼쳐지고 있다.
유럽 중소형 HVAC 시장은 가스 보일러 규제 강화와 전기화 정책에 따라 히트펌프 수요가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덕트 시공이 어려운 노후 건물이 많아 덕트리스 기반 히트펌프와 VRF 시스템의 비중이 높다.
이 시장에서 LG전자는 공기열 히트펌프를 앞세워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레퍼런스를 쌓아왔다. 유럽 HVAC 시장에서 일본 다이킨(Daikin)이나 미츠비시(Mitsubishi), 유럽 보쉬(Bosch)와 같은 전통 강자가 주도하고 있지만 한국 업체 중에서는 LG가 삼성보다 더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왔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북미 지역의 중소형 HVAC 시장은 구조적으로 유니터리(덕트 기반) 시스템의 비중이 높다. 단독주택과 소형 상업시설 상당수가 덕트 설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히트펌프형 유니터리 제품 경쟁력이 시장 성패를 좌우한다.
이 구도에서도 LG전자가 유니터리 히트펌프 라인업과 현지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삼성보다 한발 앞서 있다. 북미 덕트리스 시장에서 LG는 10~15%의 점유율로 시장 주요 플레이어에 이름을 올리며 설치 네트워크를 확보한 상태다.
다만 삼성전자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삼성은 북미 최대 HVAC 업체 중 하나인 레녹스(Lennox)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덕트리스 및 VRF 제품을 현지 유통망에 본격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기존 설치업자·딜러 네트워크가 강한 북미 시장 특성상, 이 합작 구조는 삼성의 약점으로 지적돼 온 채널 경쟁력을 빠르게 보완하는 수단으로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 캐리어, 다이킨, 미츠비시와 같은 정통 공조 브랜드와 비교하면 삼성과 LG는 둘다 후발주자의 입지"라며 "하지만 한국기업들은 IT 생태계에서 레거시 기업들과 차별점이 있고 최근 가정과 소형 건물들에서도 스마트 공조 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삼성과 LG가 점유율을 크게 늘릴 수 있는 틈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