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VAC 줌업] 美·EU 친환경 공조 시장 잡아라…LG는 기술·삼성은 자본력+속도①
친환경 정책, IRA로 촉발된 가정용 보일러 대규모 교체... 가스에서 히트펌프로 LG는 원천기술, 삼성은 레녹스… 같은 시장, 다른 해법으로 맞붙은 양대 전자
HVAC(난방, 환기, 냉방) 시장은 최근 단순한 기계 산업을 넘어 '미래 기술의 집약체'로 불리며 기업 포트폴리오의 중심축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과 AI 산업의 급격한 팽창이 배경이다. 이 시장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앞다퉈 플레이어로 뛰어들면서 국내 주목도도 수직상승하고 있다. 이에 HVAC 시장이 새롭게 개화한 배경과 양사의 사업·기술 전략을 구체적으로 짚어본다.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한 프리미엄 공조(HVAC) 시장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점찍고 본격적인 점유율 경쟁에 돌입했다. 가정용 냉난방의 친환경 전환으로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에어컨 시장과는 결이 다른 신규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시장은 LG전자가 2019~2020년경부터 시장성을 보고 선제적으로 움직여 온 섹터다. 반면 삼성전자는 2024년 이후 대형 인수·제휴를 통해 본격적으로 판을 키우며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히트펌프 전환 '강제화'... 시장 개화 목전
6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북미와 유럽은 공조 시장은 구조적인 전환 국면에 들어섰다. 에어컨 단품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지만, 강력한 환경 규제와 이에 따른 시설 교체 보조금으로 인한 수요가 프리미엄 공조 시장을 새롭게 창출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은 여전히 주거 난방의 상당 부분을 가스 보일러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영국만 보더라도 2024년 기준 신규 설치된 가스 보일러가 히트펌프 설치보다 15배 이상 많았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전환 속도가 더디다.
문제는 가스 난방이 대규모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기후 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유럽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낮추려는 지정학적 니즈가 발현됐고, 미국은 바이든 정부 시절 시행된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를 통해 히트펌프 설치를 적극 장려해 왔다.
히트펌프는 외부 공기·지열·수열의 열을 이동시켜 난방과 냉방을 동시에 수행하는 고효율 냉난방 시스템이다. 겨울에는 외부 열을 실내로 끌어와 난방을 하고, 여름에는 실내 열을 외부로 배출해 냉방을 하는 구조로, 차세대 친환경 공조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 각국의 규제는 히트펌프 전환을 사실상 강제하는 방향으로 강화되고 있다. 독일은 2024년부터 신축 및 기존 건물의 난방 시스템 교체 시 에너지 사용량의 65%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가스 보일러 단독 설치는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히트펌프 수요가 급증하는 계기가 됐다.
영국 역시 2035년까지 가스 보일러 설치를 전면 금지할 계획이며, 현재 히트펌프 설치 시 가구당 최대 7500파운드(약 1300만 원)를 지원하는 ‘보일러 업그레이드 스킴(BUS)’을 운영 중이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OBBBA(One Big Beautiful Bill Act) 통과로 올해부터 IRA 기반 보조금 지급이 제한됐지만, 히트펌프가 친환경성과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갖는 구조적 장점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냉난방 트렌드가 자리 잡으면서 세액공제 여부와 무관하게 히트펌프 수요가 형성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착실히 바닥 다진 LG, 레녹스 합작 피치 올리는 삼성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북미와 유럽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유니터리(Unitary) 공조 시스템을 히트펌프 방식으로 대체하는 전략을 택했다. 기존 볼륨 시장을 유지하면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겠다는 계산이다.
현재 기술 측면에서는 LG전자가 삼성전자보다 한발 앞서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LG전자는 2000년대 중반부터 히트펌프를 에어컨의 파생 기술이 아닌 독자적인 기술군으로 분류해 연구개발에 투자해 왔다.
유니터리와 결합된 현재의 히트펌프 구조 역시 2010년대에 이미 준비를 마쳤다. 이를 통해 유럽 시장에서 히트펌프 관련 기술 DNA를 먼저 축적했고, 북미 유니터리 표준에도 비교적 빠르게 적응했다는 평가다.
LG전자는 히트펌프의 핵심 부품인 컴프레서와 모터를 직접 설계·생산하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갖추고 있다. 특히 영하 25도 이하의 한랭 환경에서도 난방 효율 저하를 최소화하는 인버터 히트펌프 기술은 업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알래스카와 노르웨이 오슬로 등에 히트펌프 연구 거점을 세워 극한 환경에서 성능 검증을 마친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반면 삼성전자는 전통적으로 유니터리보다는 개별 공조, 즉 덕트리스 제품에 강점을 가져왔다.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삼성전자는 2024년 5월 미국 가정용 냉난방 솔루션 전문 기업인 레녹스(Lennox)와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레녹스의 유니터리 기술과 영업·유통망을 흡수해 북미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겠다는 전략이다.
1895년 설립된 레녹스는 트레인(Trane), 캐리어(Carrier)와 함께 미국 3대 공조 기업으로 꼽힌다. 북미 전역에 700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한 강력한 유통망이 최대 강점이다.
삼성전자는 레녹스가 구축해 온 유니터리 인프라 위에 자사의 인버터 기술과 스마트싱스(SmartThings) 기반의 에너지 관리 기능을 결합해 ‘Lennox powered by Samsung’ 브랜드로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북미 주택의 70% 이상이 중앙 덕트를 활용한 유니터리 방식으로 냉난방을 하는 만큼, 이번 협업은 삼성전자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영역을 단기간에 보완하는 승부수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LG가 기술 축적의 시간으로 앞서 있었다면, 삼성은 레녹스를 축으로 시장 접근 속도를 끌어올리는 전략”이라며 “프리미엄 공조 시장을 둘러싼 양사의 경쟁은 이제 본격적인 체력전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