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굴기] '1c 공정' 반전 카드 주효…HBM ‘퍼스트무버’ 잰걸음 ①

1c 공정 선제 도입으로 HBM4 고객 성능 기준 끌어올려 엔비디아 공급망 동반 ‘퍼스트벤더’ 진입 시나리오 부상

2026-02-04     문슬예 기자
삼성전자의

[녹색경제신문 = 문슬예 기자]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 판도를 새롭게 짜고 있다. HBM4에서 주요 고객사인 엔비디아 공급망에 동반 ‘퍼스트 벤더’로 진입할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존재감이 커진 것이다. 5세대 HBM3E에서 SK하이닉스보다 약 1년 반, 마이크론보다도 뒤늦게 공급망에 진입했던 전례를 감안하면 순식간에 '갭'을 없앴다는 평가다. 

그 중심에는 삼성의 '1c(10나노급 6세대) 승부수'가 있다. 1c의 D램 공정 적용 성공은 시장 판도에 반전을 가져 온 요소로 꼽힌다. 서사적 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1983년 글로벌 D램 판도를 순식간에 바꾼 64K D램 개발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과감한 테크 베팅의 DNA가 재발현됐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HBM 시장에서 삼성의 복귀가 대규모 생산능력을 앞세운 가격·공급 전략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경쟁사들이 HBM4에 1b 공정을 적용하는 동안 삼성은 선제적으로 차세대 공정 1c를 HBM4에 도입했다. 물량 중심이 아닌 기술 기반 차별화 전략에 무게를 실은 셈이다. 복수의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의 HBM 성능 및 수율이 불과 2년 전과 다른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데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삼성은 지속적으로 “개발 초기 단계부터 JEDEC(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 기준을 상회하는 성능 목표를 설정했고, 이에 따라 주요 고객사들의 요구 성능이 높아졌음에도 재설계 없이 샘플을 공급하고 순조롭게 고객 평가를 진행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요구 성능을 상향하는 과정에서 경쟁사들이 설계 수정에 나섰던 것과 달리, 애초 설계 단계에서 요구를 흡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앞서 엔비디아는 차세대 GPU 루빈에 탑재될 HBM4의 목표 성능 수준을 재차 높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공급사들이 기존 설계를 조정하는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가 재설계를 둘러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SK하이닉스가

업계에서는 삼성의 고성능 샘플이 제시되면서 엔비디아가 다른 공급사에도 동일한 성능 기준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구현한 초당 11.7기가비트(Gbps)급 속도를 기준으로,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에 목표 속도를 상향 조정하는 흐름이 나타났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결과적으로 삼성의 1c 기반 설계 전략이 엔비디아향 HBM4 성능 기준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다. SK하이닉스 역시 11.7Gbps 샘플을 공개한 바 있다. 

베이스다이 내재화 역시 삼성의 구조적 이점으로 꼽힌다. 베이스다이는 메모리 다이와 로직 다이 간 신호·전력 전달을 총괄하는 핵심 요소로, HBM4부터는 메모리 성능과 신뢰성에서 베이스다이의 역할이 크게 확대된다. 삼성전자는 자체 파운드리를 통해 베이스다이를 만드는 로직 공정을 수급·제어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베이스다이 생산을 외주 파운드리인 TSMC의 12나노급 공정에 의존한다. HBM 패키징에서 이러한 로직·메모리 조립 공정은 CoWoS(Chip-on-Wafer-on-Substrate) 같은 고난도 패키징 기술을 거쳐야 하는데, 이 단계에서 전 세계적으로 공급 병목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이 영향으로 SiP의 설계 수정(리비전) 일정도 상대적으로 길어졌다는 전언이다.

마이크론의 경우 베이스다이의 로직 공정 적용 시점을 HBM4E 이후로 미루고, HBM4까지는 메모리 공정 기반 설계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즉, 삼성은 베이스다이를 자체 파운드리 로직 공정으로 생산하면서 설계 피드백과 SiP(System-in-Package) 최적화를 보다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는 평가다. CoWoS 등 외부 패키징 의존도가 낮을수록, 고객 요구 사양 변동을 신속히 반영하거나 병목 리스크를 일정 부분 분산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 

엔비디아의 전략적 일정 조정도 삼성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엔비디아는 차세대 GPU 플랫폼 ‘루빈’의 양산 및 본격 출하 시점을 당초 시장 기대보다 다소 늦췄다. 다수의 칩을 결합하는 플랫폼 구조상, 성능 검증과 패키징 안정성을 우선 확보하겠다는 판단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이 기술 검증과 공급 준비를 병행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게 됐고, SK하이닉스와의 ‘동반 진입’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여지가 커졌다는 평가다.

현재 글로벌 메모리 3사의 HBM4 대량 양산 및 출하 일정에 대한 공식적인 최신 입장은 다음과 같다. 삼성의 경우 2월을 못박았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컨퍼런스콜에서 “현재 HBM4 제품을 양산 투입해 생산을 진행 중이며, 주요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2월부터 11.7Gbps 제품을 포함한 HBM4 물량의 출하가 예정돼 있다”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같은 날 컨콜에서 “고객과 협의한 일정에 맞춰 HBM4 양산을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마이크론은 지난해 12월 17일(현지 시각) 컨퍼런스콜에서 “고객 수요에 맞춰 2026년 2분기부터 HBM4 생산량을 본격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11Gbps 이상의 속도를 자랑하는 자사의 HBM4는 2분기 높은 수율로 양산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루빈 플랫폼 초기 물량에 탑재될 HBM4 공급망에 동반 진입하고, 마이크론은 이후 양산 안정화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굳건했던 SK하이닉스 1강 체제가 변모하고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