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입지 논쟁, ‘이전’은 정치 구호... 논점은 ‘분산’으로 이동

전면 이전은 비현실적…매몰비용·공급망 붕괴·정책 신뢰도 추락 ‘삼중 리스크’ 현실적 논의는 후공정 배치…전공정은 고정, 분산의 실체는 컨벤셔널 패키징

2026-01-30     김지윤 기자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산업계에서는 이 논의 자체를 현실성 없는 정치적 구호로 인식하고 있다. 다만 향후 추가 건설될 시설을 지방권에 배치하자는 의견은 실제 실현 가능성이 있어, 논쟁의 축이 '이전'에서 '분산'으로 이동하는 양상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계획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이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미 토지 보상이 약 20% 이상 진행됐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부지 계약 및 기초 공사를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전 시 발생하는 매몰비용만 수십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이미 글로벌 장비업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의 공급망 구조가 용인 입지를 기준으로 설계된 상황에서 계획을 변경하는 것은 산업의 기틀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이 달 서울행정법원은 환경단체 등이 제기한 '용인 첨단시스템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계획 승인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기업의 전력 공급 및 기후 변화 대응 계획에 정당성이 있다고 판단하며 용인 클러스터의 원안을 번복할 수 있는 정당성이 모두 사라진 상태다.

산업계 관계자는 “용인클러스터 이전은 사실상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권의 수싸움일 뿐 실제로 이전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며 “정치권에서도 이를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디어의 주목을 이끌고 표심을 사기 위해 '이전'이라는 자극적인 키워드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했다.

'분산' 거론하는 정치권, 결국 후공정 시설 옮기자는 이야기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정치권 일부 인사들은 논점을 ‘분산’으로 전환하고 있다. 안호영 의원, 이병훈 의원 등 여권 인사들은 “수도권 일극집중이 아닌 분산형 반도체 산업 구조가 국가 경쟁력과 생존 전략”이라는 표현으로, 향후 추가 시설에 대한 분산 배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산업 구조를 들여다보면 ‘분산’ 논의의 대상은 결국 패키징과 테스트로 이뤄지는 후공정 시설로 좁혀진다.

현재 용인에 계획된 10기의 팹(삼성전자 6기, SK하이닉스 4기)은 전력과 용수 인프라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웨이퍼 가공(전공정)' 전문 시설이다. 업계에서는 이 10기의 전공정 팹에서 쏟아져 나올 엄청난 물량의 웨이퍼를 최종 제품(HBM 등)으로 완성하기 위해, 별도의 대규모 패키징•테스트(후공정) 시설 증설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충남 천안과 온양을 최첨단 후공정의 메카로 낙점했다. 삼성은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삼성디스플레이 천안캠퍼스 내 일부 공장과 부지를 활용해 HBM(고대역폭 메모리) 전용 패키징 라인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약 19조 원을 투입해 청주 테크노폴리스에 건립하는 ‘P&T7(패키징&테스트)’ 팹을 증설한다. 해당 시설은 단일 후공정 팹으로는 역대급 규모로, 용인 원삼에서 생산된 차세대 DRAM을 가공하는 ‘HBM 전용 기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용인 클러스터 풀가동되면 후공정 시설 추가 필요

경기지방고용노동청은

하지만 삼성과 하이닉스가 계획한 천안과 청주의 인프라마저 용인의 물량을 전부 감당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존 레거시 DRAM은 팹의 10~20%의 면적만 후공정에 할당해도 충분했지만 최근 대세가 된 HBM은 후공정 비중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윤창민 인하대학교 고분자공학과 교수는 "지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후공정 시설을 증설하고 있지만 용인 단지가 완공된 후 물량이 쏟아져 나오면 추가 증설 이야기는 충분히 나올 수 있다"며 "지금도 실제로 회사 내부에서는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여러 입지를 후보군에 올려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향후 후공정의 핵심이 되는 HBM 패키징에 대해서는 전공정 팹과 가까이 있는 것이 기술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호남권 등 지방 이전이 기업 경쟁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윤 교수는 이어 "DRAM, LPDDR처럼 PCB를 쓰는 컨벤셔널 패키징 제품들은 전공정 팹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큰 문제가 없지만 최근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HBM은 어드밴스드 패키징이 필요한데 이는 팹과 이른바 '원라인'으로 돌아가는 것이 효율적"이라며 "이러한 이유로 삼성전자의 경우 최종단의 제품 조립은 천안에서 하지만 그 전단의 패키징 공정은 다시 팹 인근으로 옮겨졌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각 지역에서 주장하는 것 처럼 반도체 산업을 지방으로 분산할 경우 전공정 팹이나 어드밴스드 패키징이 아닌 컨벤셔널 패키징 시설이 옮겨가는 것이 가장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로 분석된다. 

컨벤셔널 패키징은 상대적으로 전문 인력을 덜 요구하고 작업자 숙련도를 표준화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에서 우려하는 인력난 리스크도 적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다만 이 경우도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이뤄지는 것일 뿐, 기업의 니즈와는 별개의 문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구조는 결국 한 공간에 모여 있는 것”이라며 “분산은 선택이 아니라 외부 조건에 의해 강제될 때 발생하는 구조일 뿐, 경쟁력 관점에서 선호되는 모델은 아니”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