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적립금 100조 넘겼지만...보험업권, 성장률 '한 자릿수' 그친 이유는?
보험업권,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 104조원...전년 말 대비 7.43%↑ 은행은 15.41%, 증권은 26.54% 증가...보험만 10% 하회 적립금 증가폭 1조원 이상 회사도 삼성·교보생명뿐...은행 6곳·증권 7곳 퇴직연금, 보험사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매력도 낮아... 전략적 우선순위 밀려 업계 "IFRS17 하에서 보장성 상품 대비 수익성 낮고 부채 관리 부담 커"
[녹색경제신문 = 이준성 기자] 보험업계의 퇴직연금 적립금이 지난해 말 기준 100조원을 넘어섰지만 전년 말 대비 증가율은 전 금융업권 가운데 유일하게 한 자릿수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퇴직연금이 보험사 입장에서 부채 관리 부담은 큰 반면 회계상 수익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상품이라는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23일 <녹색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보험업계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말 기준 104조7415억원으로 전년 말(97조4975억원) 대비 7.43%(7조2440억원) 늘었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1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보험업계는 은행권과 증권업계에 이어 전 금융업권 중 마지막으로 퇴직연금 적립금 100조원 고지를 돌파했다.
그러나 적립금 증가율에서는 은행권과 증권업계에 크게 밀린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증권업계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103조9257억원에서 131조5026억원으로 26.54%(27조5769억원) 늘었으며, 은행권의 적립금 역시 225조7684억원에서 260조5580억원으로 15.41%(34조7896억원) 증가했다. 전 금융업권 가운데 보험업계만이 두 자릿수를 밑도는 증가율을 기록한 셈이다.
아울러 이 기간 적립금이 1조원 이상 불어난 보험사도 전체 16개사 중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 2개사에 그쳤다. 삼성생명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2024년 말 50조3264억원에서 지난해 말 54조4252억원으로 4조988억원(8.14%↑) 증가했으며, 교보생명의 적립금은 13조5834억원에서 14조6511억원으로 1조677억원(7.86%↑) 늘었다.
이와 달리 증권업계는 전체 14개사 중 7개사(KB·NH·미래에셋·삼성·신한·한국·현대차), 은행권은 12개 사 중 6개사(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기업)의 적립금이 1조원 이상 증가했다. 보험업계의 퇴직연금 사업 기반이 은행·증권 대비 넓지 않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격차는 두드러진다.
여기에 신한라이프(1928억원·68.76%↓), 롯데손보(1조1266억원·25.53%↓), 미래에셋생명(5조6073억원·2.42%↓) 등 일부 보험사의 경우 적립금이 되려 줄어들기도 했다. 은행권 및 증권업계에서는 전체 26개사 중 오직 iM증권(6782억원·2.99%↓)만이 적립금 감소를 겪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처럼 보험업권의 퇴직연금 적립금 성장이 타 업권 대비 저조한 배경으로는 퇴직연금이 보험사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매력도가 낮은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 거론된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하에서 퇴직연금은 건강보험 등 보장성 상품에 비해 수익성은 떨어지는 반면, 부채 관리 부담은 큰 편이어서 일부 보험사들이 적립금 신규 유치보다는 기존 계약 유지에 무게를 두는 등 보수적인 사업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퇴직연금은 IFRS17 체제에서 보험계약마진(CSM) 창출력이 낮은 상품으로 꼽힌다. 실적배당형 퇴직연금의 경우 보험위험 인수가 거의 없어 CSM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 계약이 대부분이고, 원리금 보장형 또한 보증 리스크 대비 마진이 얕아 손실계약으로 분류되거나 CSM이 미미한 계약이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즉, 보험사들로서는 퇴직연금의 규모를 확대하더라도 이익이나 CSM 개선으로 연결시키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CSM은 2023년 IFRS17 도입에 따라 떠오른 미래 수익성 지표로, 보험사는 CSM을 우선 부채로 인식한 뒤 매년 일정 비율로 상각해 수익에 반영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자산부채종합관리(ALM) 측면에서도 퇴직연금은 (보험사에) 부담 요인"이라며 "특히 원리금 보장형은 금리 및 보증 리스크로 인해 규모가 커질수록 지급여력비율(K-ICS·킥스) 산정 과정에서 요구자본은 늘어나고, 이를 상쇄할 CSM 증가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점이 문제"라고 전했다.
이어 "퇴직연금이 기업 단체영업의 교두보 역할을 하기도 하고, 브랜드 이미지·신뢰도 등에도 영향을 주는 만큼 당장 사업을 접으려는 보험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몇몇 대형사를 제외하면 (퇴직연금이) '포기할 수는 없지만 확대하기도 꺼려지는' 사업임에는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수익률과 운용 상품 수 등이 비교적 부족하다는 점도 보험사들의 퇴직연금 성장이 다른 업권보다 더딘 이유 중 하나지만, 근본적으로는 업권별로 퇴직연금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며 "은행은 퇴직연금을 대규모 장기 자금 유입과 주거래 기업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증권사는 운용자산(AUM) 확대와 운용 보수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사업으로 각각 보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보험업계는 상황이 좀 다르다"며 "보험사 입장에서는 퇴직연금을 장기 지급 의무를 수반하는 부채로 인식해야 하기 때문에 퇴직연금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다른 상품보다 낮아질 수 밖에 없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