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C는 아직… 대기업 로보틱스는 B2B로 ‘체력단련’ 중
B2C는 무리, 삼성전자·LG전자 가정용 로봇 상용화는 아직 실증은 늘고 매출은 쌓이지만… 로봇 산업의 긴 준비 운동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국내 로봇 산업의 승부처가 산업현장 중심의 B2B로 모이고 있다. 사업 초기 몇몇 기업들이 B2C 시장을 겨냥한 로봇 상품 개발에 주력했지만, 시장성을 이유로 개인·가정용 로봇 산업은 속도를 조절하는 모양새다.
이같은 흐름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기업은 삼성전자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로봇 전략이 최근 몇 년 사이 뚜렷한 방향 전환을 겪고 있다. 한때 가정용 로봇을 전면에 내세우며 소비자 시장 진입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 중 하나였지만 현재는 레인보우로보틱스를 필두로 산업·B2B 중심의 기술 축적과 미래형 로봇 역량 강화에 무게를 싣는 구조로 재편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2020년 CES에서 공 모양의 이동형 로봇 ‘볼리(Ballie)’를 처음 공개한 이후, 2021년 CES에서는 ‘삼성봇 핸디(Bot Handy)’ 등 가정용 로봇 콘셉트를 연이어 선보였다. 당시 삼성은 로봇을 차세대 소비자 가전의 연장선으로 규정하며, 가정 내에서 사람을 보조하는 ‘라이프스타일 로봇’ 시장 선점을 목표로 소비자용 로봇 개발에 적극 나섰다. 단순 기술 시연을 넘어, 가전·모바일·스마트홈 생태계와의 결합을 전제로 한 상용화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삼성은 2025년을 전후로 볼리의 미국·한국 출시 가능성과 외부 AI 연동 계획을 언급했지만, 결국 상용화 일정은 구체화되지 않았고 업계에서는 볼리 프로젝트가 내부에서 사실상 일시중지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기류 변화는 올해 CES에서 보다 명확해졌다. 삼성전자는 해당 행사에서 볼리를 포함한 가정용 로봇 시연을 전면에 배치하지 않았고, 볼리에 대해서도 ‘곧 출시될 소비자 제품’이 아닌 내부 기술 검증과 확장을 위한 ‘혁신 플랫폼(active innovation platform)’ 성격으로 설명했다. B2C 완제품 로봇이 당장 시장에 투입되기보다는, 기술 축적과 생태계 실험 단계로 후퇴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B2C 로봇 사업이 축소된 가장 큰 이유는 '비용과 효용성'이다. 소비자용 로봇은 시장 개화 단계에도 진입하지 못한 만큼 극소 규모로 생산해야 하는데, AI 구동용 프로세서와 메모리 비용까지 치솟으며 단가가 일반적인 가전 수준을 뛰어넘었다. 그에 반해 로봇의 역할은 가전의 AI 환경을 통솔하는 허브 정도로 현재 스마트폰이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다.
조직 측면에서도 변화가 이어졌다. 삼성은 지난 2025년 초 CEO 직속 조직으로 ‘미래로봇추진단’을 신설하고, 휴머노이드를 포함한 차세대 로봇 기술을 중장기 성장 축으로 명시했다. 기존에 가정용 로봇을 개발하던 내부조직의 갈래를 B2B·산업 및 휴머노이드 중심의 단일 축으로 정리하는 양상이다.
LG전자 클로이드는 전략적 쇼케이스... 단기적으로는 B2B 엑츄에이터 사업이 메인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삼성전자가 B2C 로봇 사업에서 한발 물러나자, 상대적으로 LG전자의 행보가 부각됐다. LG전자는 올해 CES에서 가정용 휴머노이드 로봇 ‘클로이드(CLOiD)’를 처음 공개하며, 국내 대기업 가운데 사실상 유일하게 B2C 로봇을 전면에 내세운 기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다만 시장의 평가는 신중하다. 클로이드는 기술적 완성도와 상징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현재 수준의 만듦새와 부품 구성, 생산 규모를 감안하면 실제 판매 가격이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단기간 내 본격적인 상용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가 비용 구조와 효용성 문제로 소비자용 로봇에서 전략을 후퇴시킨 것과 같은 현실적 제약이 LG전자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흐름이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클로이드의 성격을 ‘즉각적인 판매용 제품’이라기보다는 전략적 쇼케이스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LG전자가 클로이드를 통해 실제로는 로봇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 브랜드 ‘악시움(AXIUM)’의 기술력을 강조하고, 이를 B2B 시장에서 확산시키기 위한 상징적 마스코트 역할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즉, 장기적으로는 가정용 로봇 시장 개화를 염두에 두고 기술과 브랜드 인지도를 선제적으로 쌓되, 단기 전략의 무게중심은 악시움을 축으로 한 B2B 로봇 생태계 확장에 두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산업·휴머노이드 중심으로 로봇 전략을 재편한 것과 방향성에서는 다르지만, ‘지금 당장 B2C 수익화는 어렵다’는 현실 인식에서는 궤를 같이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굴러가지만 번다곤 못한다… B2B 로봇도 과도기
B2C 시장 정체와는 별개로 B2B 로봇 시장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상용화 성과를 내고 있다. 전시용 콘셉트나 기술 시연을 넘어, 공장·물류·빌딩·제조 현장에서 로봇이 실제로 투입되고 운영 데이터와 매출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어나는 흐름이다.
이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휴머노이드와 피지컬 AI 분야에서 상징성이 가장 큰 플레이어로 평가받는다. 올해 CES에서 현대차그룹이 선보인 로보틱스 기술은 전세계적인 관심을 모으며 주가 상승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메인 전시였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와 로봇개 스팟 향후 약 2년간 추가적인 실증과정을 거친 후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완성차 공장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와 별개로 비교적 단순 반복적 업무를 수행하는 로봇은 이미 현장에 투입돼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성수동 오피스 빌딩 팩토리얼 성수에서 운영 중인 배달 로봇 ‘DAL-e Delivery’와 주차 로봇이다.
이들은 실제 업무 동선에 투입돼 입주사와 방문객을 대상으로 상시 운영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통해 로봇 주행 안정성, 사용자 반응, 유지·보수 데이터 등을 축적하고 있다. 아직 대규모 매출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상용화 직전 단계에 필요한 운영 경험은 빠르게 쌓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HD현대는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 가장 ‘정통파’에 가까운 성과를 내고 있는 곳으로 평가받는다. HD현대로보틱스는 주요 계열사 공장을 테스트베드로 삼아 실증 속도를 끌어올리는 전략을 택했다. 조선·중공업·건설기계 등 HD현대 그룹의 제조 현장에 산업용 로봇과 공장 자동화(FA) 솔루션을 직접 투입해, 단기간에 안정적인 운영 데이터와 개선 효과를 축적하는 방식이다. 그룹 내부 수요를 기반으로 초기 리스크를 낮추고, 검증된 솔루션을 외부 고객으로 확장하는 구조를 통해 사업 안정성을 빠르게 확보하는 전략이다.
두산로보틱스는 협동로봇(cobot)을 앞세워 적용 산업을 빠르게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규모 제조 현장을 넘어 식음료(F&B)와 물류 산업으로 적용 범위를 확장하며, 비교적 도입 장벽이 낮은 협동로봇을 통해 현장 침투 속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커피 추출, 조리 보조, 포장·팔레타이징 등 반복 작업이 많은 영역에서 레퍼런스를 쌓아가며, 중소·중견 사업자까지 고객 저변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다만 제조현장·B2B 분야에서도 로봇 사업이 수익성까지 이어지기에는 시기상조다. 상장사인 레인보우로보틱스와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3분기까지 각각 약 102억 원, 307억 원 규모의 매출을 냈지만 양사 모두 영업손실을 내며 흑자전환에는 실패했다. 특히 두산로보틱스의 영업적자는 약 153억 원으로 순손실은 약 120억원 대다. HD현대로보틱스 역시 2024년에 약 3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했지만 이후 수익성 개선에는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로봇 사업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것과 별개로 실제 사업 관점에서는 아직 시장 규모 확대와 단가 하락, 반복 수요가 동시에 갖춰지지 않은 과도기 국면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