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고 뺏기는' 전쟁... 대기업 글로벌 인재 영입 사활 걸었다

삼성·현대차, ‘국내 중심’ 공식 깨고 글로벌 빅테크 출신 중용 SK·LG·두산까지 확산… 인재 영입이 곧 기술 경쟁력인 시대

2026-01-20     김지윤 기자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국내 대기업들이 인재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과거 내부 육성과 국내 채용에 무게를 뒀다면, 최근에는 글로벌 빅테크·완성차·AI 기업 출신 인재를 직접 영입하며 기술 경쟁력과 조직 체질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인물의 '한끗차이'가 AI, 반도체, 자율주행, 로보틱스, 모빌리티 전장 등 핵심 산업에서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인재 확보전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흐름에서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이다. 양사는 최근 글로벌 기업 출신 인재를 요직에 전면 배치하며 기업 체질 개선에 무섭게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대기업'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세계 무대에서 정상급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 강도를 높이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유럽과 미국 시장 대응을 위해 고객 서비스 및 대관 전문가를 영입했다. 미국와 유럽은 삼성전자 매출에서 각각 39%, 1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주요 시장으로, 국내 임원이 아닌 현지에 정통한 인사를 배치해 점유율 방어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전략이다. 

우선 1월 1일부로 미국법인(SEA) 고객 서비스(Customer Care) 총괄 부사장에 델(Dell)에서 26년 이상 근무한 크리스 마르케스(Chris Marquez)를 선임한 것이 업계 관심을 끌었다. 마르케스 부사장은 글로벌 고객경험(CX) 조직을 이끌며 서비스 품질과 운영 효율을 개선해온 베테랑으로, 삼성전자는 그의 합류를 통해 스마트폰과 가전을 아우르는 북미 고객 서비스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전망이다.

비슷한 시기에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EU 정책 대응을 총괄해온 제러미 롤리슨(Jeremy Rollison)은 삼성전자 유럽 대관 총괄로 합류했다. 제러미 롤리슨은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EU 디지털 정책, 데이터 보호, 클라우드 규제 대응을 담당한 정책 전문가로, 디지털시장법(DMA) 등 규제가 강화되는 유럽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정책 대응과 대외 협력 전략을 주도한다.

삼성전자가

또한 삼성전자는 올해 초 AMD 출신 GPU 아키텍처 전문가 디파얀 카르마카르(Dipayan Karmakar)를 삼성전자 북미법인(SEA)의 핵심 엔지니어로 영입했다. 삼성전자가 차세대 엑시노스 경쟁력 강화는 물론, 중장기적으로 GPU 등 비메모리 분야에서 기술 자립을 꿰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디파얀 카르마카르는 인텔과 AMD에서 데스크톱·서버·모바일 GPU 및 APU 설계에 참여한 경력을 갖춘 인물이다. 

삼성전자는 2024년 이후 반도체, 제품 디자인, 소프트웨어 등 전분야에서 글로벌 기업 출신의 핵심 인재를 임원급 인사로 등용하며 내부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경영진보다 훌륭한 인재를 수시로 모셔오라"는 이재용 회장의 특명에 따른 것으로, 국적과 경력을 불문한 '무한 인재 경쟁'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차그룹, 로보틱스·자율주행 신사업에 방점

현대차그룹 역시 소프트웨어와 로보틱스를 미래 성장 축으로 설정하고, 최근 핵심 기술 인재 영입을 통해 조직의 구심점을 재정비하고 있다. 특히 테슬라에서 요직을 지낸 인물 두 명을 연달아 영입하며 피지컬 AI분야에서 테슬라의 독주에 제동을 걸고 있다.

먼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자회사 42닷(42dot) 사장에 엔비디아와 테슬라를 거친 박민우 사장을 선임하며 SDV(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전략의 실행력을 강화했다. 박 사장은 엔비디아에서 자율주행 인지·센서 융합 기술 개발을 이끌었고, 테슬라에서는 오토파일럿과 비전 기반 자율주행 구조 고도화에 참여한 인물로, 하드웨어 의존도를 낮춘 E2E(end to end)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실전 경험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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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틱스와 피지컬 AI 분야에서도 글로벌 인재를 전면에 배치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사외이사이자 그룹 자문으로 밀란 코박(Milan Kovac)을 영입하며 로봇 기술 전략을 한층 강화했다. 코박 이사는 테슬라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 개발을 총괄하며 자율주행과 로보틱스를 결합한 시스템 설계를 주도한 인물로, 현실 공간에서 인지·판단·행동이 가능한 피지컬 AI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현대차그룹이 단순한 인재 보강을 넘어, 그룹의 정체성이 '자동차 OEM'에서 '피지컬 AI기업'으로 넘어가는 대전환의 상징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현대차는 지난해부터 ‘글로벌 Ph.D. 리쿠르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세계 유수 대학 출신 박사급 연구자를 공개 모집 중이다. 단발성 인재 영입이 아니라, 장기 연구개발(R&D) 경쟁력을 염두에 둔 구조적 인재 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SK·LG·두산도 '글로벌 인재 모시기' 총력전... 회장님들 직접 나섰다

SK, LG, 두산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 역시 AI, 에너지, 로보틱스 등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해 해외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차그룹처럼 스타 플레이어의 영입으로 화제가 된 것은 아니지만 , 그룹 총수가 직접 면접관으로 나서거나 해외 현지에 거대 연구 거점을 마련하는 등 전례 없는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SK그룹은 반도체와 에너지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해외 전문가 수혈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반도체 주도권을 굳히기 위해 미국과 일본 등 주요 거점에 ‘글로벌 AI 리서치 센터’를 신설하며 현지 우수 인력 유치에 나섰다.

LG그룹은 구광모 회장이 직접 챙기는 'ABC(AI·바이오·클린테크)' 전략에 맞춰 해외 인재 풀을 넓히고 있다. LG는 매년 미국 주요 도시에서 'LG 테크 콘퍼런스'를 개최하며 MIT, 스탠퍼드, 코넬 등 명문대 석·박사급 인재들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LG AI연구원의 최고 AI 과학자(CSAI)들이 직접 기술 로드맵을 공유하며 인재들을 설득하는 방식이라는 점이 차별점이다. 또한, 해외 유망주들이 국내로 들어오지 않고도 현지에서 LG의 인프라를 활용해 연구할 수 있도록 글로벌 인턴십과 현지 랩(Lab) 운영을 대폭 강화하며 ‘인재 리쇼어링(Reshoring)’과 ‘현지화’라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그룹 총수가 직접 채용 전면에 나섰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해외 인재 공개채용의 최종 면접관으로 직접 참여하며 AI·로보틱스 인재 확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두산은 특히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 중심 AI 연구소(HAI)'와 파트너십을 맺고, 현실 공간에서 인지하고 행동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 분야의 핵심 석학들을 영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는 로보틱스 솔루션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해외 인재 영입이 상징적인 수준에 그쳤다면, 이제는 실질적인 기술 격차를 단숨에 좁히기 위한 생존 전략이 됐다"며 "연봉뿐만 아니라 주거 지원, 연구 자율성 보장 등 파격적인 조건이 제시되면서 글로벌 빅테크들과의 인재 확보전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