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12 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 공개···한국으로 완성한 단 하나의 페라리
페라리, 한국적인 요소로 꾸민 모델 공개 국내 작가 5명과 협업 통해 한국 테마 완성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페라리”
[녹색경제신문 = 이현성 기자] 페라리가 ‘한국적’이란 단어의 의미를 찾아 나섰다. 이를 위해 국내 예술 작가 5명과 머리를 맞댔다. 결과물, 12 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는 과연 한국보다 더 한국적이다.
19일 페라리가 한국 시장을 위해 특별 제작한 단 하나의 페라리를 선보였다. 페라리는 한국적이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는 동시에, 페라리와 한국이 지닌 공통 분모를 찾아 떠났다. 페라리는 전통과 혁신에서 한국과 교차점을 떠올렸다. 전통에서 영감을 얻고, 혁신으로 추진력을 만들어낸 역사가 서로 닮아 있다고 판단했다.
가장 한국적인 차를 만들기 위한 밑바탕은 페라리의 플래그십 12 칠린드리로 선택했다. 1947년 처음 세상에 등장한 뒤 오늘날까지 역사를 잇고 있는 12기통 엔진은 페라리의 전통이자 혁신인 까닭이다. 페라리는 각각의 실린더에서 발생한 에너지가 하나의 흐름으로 수렴되며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12기통 엔진은 다양한 문화를 끌어안고 다시 조합하며 발전한 K-콘텐츠와도 맞닿아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페라리의 개인맞춤 프로그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각각의 요소를 개인의 입맛대로 꾸미는 것을 넘어, 다시 창조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이번 프로젝트 역시 최상위 퍼스널라이제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장인정신의 정수를 담아냈다. 다만 이탈리아 장인의 손길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 고유의 유산을 대표하는 젊은 예술가 5명과 손을 맞잡았다.
페라리가 생각하는 한국은 ‘윤슬’이라는 이름의 외장 컬러에서 출발한다. 페라리는 고려청자에서 영감을 얻어 주변 환경과 보는 각도에 따라 빛깔을 달리하는 독특한 페인트를 개발했다. 비색은 청과 녹 사이에 머무는데, 페라리는 이 모호함을 조명했다. 수많은 빛깔로 물든 도시의 화려함, 산과 바다를 품은 자연의 아름다움, 또 상황에 따라 변화하면서도 정체성을 지키며 유려하게 빛나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외장 컬러를 통해 표현했다.
윤슬 페인트로 칠한 보닛 위에는 사운드 작가 그레이코드와 지인의 작품이 올려져 있다. 이들은 페라리 V12 엔진의 소리를 시각적 경험으로 환원했다. V12 엔진의 음향적 특성을 분석하고 이를 음원으로 만든 뒤, 악보로써 V12 엔진 소리를 시각적으로 나타냈다. 이들이 그리는 악보는 전통적인 표기법을 따르지 않는다. 음향적 풍경을 포착하는 경험을 선사하는 한 폭의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페라리는 윤슬 페인트 위에서 다채로운 표정을 짓는 모습이 한국 사회의 유연성을 닮았다고 설명했다.
김현희 작가는 한국 전통 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특히 흰색 반투명 재료를 이용해 어둡고 짙은 색의 조선시대 가구에 반전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흰색 반투명 소재는 양쪽 펜더의 페라리 배지와 꽁무니 끝에 자리한 도약하는 말, 실내 센터콘솔에 녹아들었다. 페라리가 엠블럼 소재와 컬러에 변주를 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김현희 작가는 문자도의 형식을 빌려 시트 뒤편에 헌정 플레이트를 제작했다. 구름 모양으로 형상화된 숫자 ’12’는 열두개 실린더를 가로지르는 바람을 상징하고, 바로 아래 ‘한’을 결합해 한국의 민족정신을 불어넣었다.
‘백의민족’을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이번 프로젝트에는 하얀색이 자주 등장한다. 패들 시프터와 브레이크 캘리퍼는 이태현 작가의 손을 통해 페라리 역사상 처음으로 흰색으로 마감됐다. 이태현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작업은 옻칠이다. 옻칠은 다루기 매우 까다롭지만, 겹겹이 쌓일수록 탁월한 내구성을 발휘한다. 열과 마찰, 침투를 견디는 옻칠은 세대를 건너 이어진 한국의 생존 서사를 품는다. 페라리 V12 엔진도 이와 흐름을 같이 한다. 페라리는 지난 80년간 미세한 조정과 축적의 연속을 거듭한 V12 엔진의 역사는 옻칠의 연마 과정과 닮아 있다고 설명했다.
정다혜 작가는 말총을 이용한 조형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는 말총 단 하나의 재료에 시간을 더해 예술로 승화한다. 그녀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핵심 가치는 강인함이다. 가는 말총을 엮어 구조물로 일으켜 세운 모습은 마치 연대를 통해 유지되어 온 한국 사회의 지속성을 들여다 보는 듯하다.
페라리는 오랜 시간 축적한 지속성과 응집력의 가치에 공감하여 말총 작품 특유의 직조 패턴을 차체 안팎 곳곳에 새겨 넣었다. 이날 공개 행사에 참석한 페라리 최고 디자인 책임자 플라비오 만조니는 그녀의 패턴으로 장식한 글라스루프가 일품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만조니는 주행 중 그림자로 존재를 은은하고도 끊임없이 드러내는 모습이 매력적이라고 소개했다.
페라리는 12 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 제작에 2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그런데 결과물은 2년 만에 완성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깊이가 있다. 페라리가 한국에서 보낸 지난 20여 년간의 시간이 모두 깃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페라리는 2025년 10월 2일 페라리코리아 공식 출범을 알렸다. 페라리의 국내 사업을 총괄하던 FMK와 손잡고 한국에 더 깊이 파고 들고자 한다.
어쩌면 페라리가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한 건 이 시간을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페라리는 한국과 많은 점에서 닮아 있고,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 그리고 이제 진짜 함께라는 사실을 공고히 밝히기 위해 12 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를 준비했을 수도 있다. 의도가 있든 없든 이 사실 하나는 확실하다. 12 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는 페라리코리아 출범 첫해를 기념하고, 오랜 시간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웠다.